워라벨.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 일도 좋지만, 여가도 챙겨라. 이런 뜻이겠죠? 일만 하다가 죽으려고 태어난 거 아니니까요. 일도 좋지만, 여가는 더 중요하다. 이젠 상식이 됐죠. 법정 노동 시간이 52시간인가요? 자발적으로 더 일을 하고 싶어도 52시간을 초과하면 불법이라는 거죠? 52시간을 넘기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사의 벌금을 내야 한다면서요?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노동 시간을 강제적으로 제한한다는 건,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내가 내 몸 알아서 굴리겠다는데, 누가 나를 막아? 분명 그런 시대에서 살았는데 말이죠. 사서 하는 고생이 젊음의 특권이었는데요. 삶의 질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적인 가치가 됐어요. 노동보다는, 노동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일주일에 백 시간을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영상이에요. 하루 최소 14시간을 노동과 자기 계발에 쓰라네요. 미친 거 아닌가요? 자신의 한계를 넘어본 사람만이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 그놈의 성공, 성공, 성공. 성공이 밥 먹여 주는 건 맞지만, 대신 제명에 못 죽는 것도 알아야죠. 하루 한두 시간 빼고, 일만 하라는 거잖아요. 그렇게 일만 하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부모님 세대가 되라고요? 윗세대의 삶이 좋아 보였다면, 52시간 법이 왜 나왔겠어요? 반성을 모르면, 역사는 퇴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 자발적인 몰입도 이젠 불가능한 건가? 더 잘하고 싶고, 내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싶어도 일단 사무실에서 나와야 하는 거죠? 실험실에 혼자 남으면, 욕먹는 시대가 된 거죠? 함부로 '회식'을 입에 올리면, 퇴물 꼰대 소리 각오해야 하는 거 맞죠? 근무 교대 시간에 십 분만 늦으면, 칼부림 각오하라는 말이 농담 아닌 시대인 것도 맞죠? 아르헨티나에서 조카가 할머니, 할아버지 보려고 한국에 왔을 때요. 초등학생 손주가 마냥 예쁠 텐데도, 어머니는 성당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유를 그리워하시더군요. 요즘 젊은 엄마들은 어떻겠어요? 젊을 때는 여행이다, 친구다. 자신만의 시간이 얼마나 달콤했나요? 육아로 그동안 누릴 수 있었던 자유가 송두리째 사라져요.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육아의 고통은, 누렸던 자유의 박탈에서 오는 게 가장 크지 않을까요?
노동보다는 개인의 여가가 중요하다. 백번 동의해요. 52시간으로 끊으면, 부작용보다는 장점이 더 많을 거예요.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사회 전체의 여유가 될 테니까요. 화난 세상이 그나마 숨통이 트일 테죠. 숨 쉴 틈 없이 일만 하는 사회보다는, 그래도 웃을 여유가 더 있지 않겠어요? 여유 시간을 어떻게 쓰나 생각해 봐요. 여유 시간을 어떻게 쓰든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래도 한 번 생각해보자고요. 저 같은 경우엔, 인터넷을 끼고 살아요. 유튜브, 커뮤니티, SNS 정도를 해요. 아, 넷플릭스도 봐요. 볼 때는 모르겠는데,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아요. 중독인 것 같고, 조종당하는 느낌까지 들어요. 딱히 확인할 게 없어도, SNS를 클릭해요. 보고 싶은 게 없어도,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놔요. 추천 영상을 연달아 봐요. SNS 좋아요 개수를 세고 있어요. 내 자유 시간이 풍요로운가? 전혀요. 끊을 수만 있다면 끊고 싶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백 시간 미쳐보라는 영상이 꽤나 솔깃해요. 자발적으로 미쳐보고 싶어요. 중독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자유 시간이 많아도, 자극의 노예로만 사는 것 같아서요. 삶의 질이 좋아졌다기보다는, 중독만 심해졌어요. 꼭 백 시간이 아니어도, 조금은 생산적인, 뒷맛 개운한 몰입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게 진짜 워라벨 아닐까요? 진짜 휴식이 뭔지도 모르면서, 인터넷에만 매달리는 제가 한심해요. 여러분의 쾌락은 건강한가요? 백 시간까지는 아니어도, 60시간 정도 미쳐보고 싶어요. 내가 살아있다는 쾌감은, 몰입할 때 제대로 느낄 수 있었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매일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일을 잃어 버리는 사람이죠.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하루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우리는 수백, 수천 개의 인생을 살 수 있아요. 이왕이면 재밌게 살아요. 설레면서 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