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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12. 2021

내 슬픈 식탐의 기원

먹는 것만 보면 매달리던 제가 그립습니다

16년 전 토레스 델 파이네, 이때는 종일 배가 고팠어요 

-너 먹을 때 음식에서 눈을 안 떼는 거 알아?


친구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치욕스러운 거예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러고 말면 되는데, 큰 비밀을 들킨 것 같아 화가 다 나더라고요. 어른이 되어서도 그 버릇을 못 고친 건가? 식탐이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는 모르겠어요. 한참 클 때는 누구나 먹는 게 중요하잖아요. 저도 중3, 고1 때는 라면 세 개 끓여서 밥까지 말아먹었어요. 허기가 두려운 나이였죠. 걷다가 배가 고파서, 한 걸음 옮기는 게 막막해진 적 있나요? 전 있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허기가 느닷없이 찾아 오더라고요. 그러니 점심시간까지 기다리는 것도 큰 고문이죠. 2교시만 끝나면 뭐라도 먹어야 했죠. 도시락을 까먹고, 점심시간에는 매점으로 달려가요. 


저는 형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까지 있었어요. 제 소원은 늘 정확한 반반이었죠. 그 당연한 권리가 왜 그렇게 힘든 걸까요? 겉으로는 어머니도 합리적인 분이셨어요. 뭐든 반반씩 나눠서 주셨으니까요. 그게 끝까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확인을 하셨어야죠. 어머니, 아버지가 없는 밥상은 무법천지였어요. 늘 빼앗기고, 반항하고, 얻어터졌죠. 싸움이 되면, 어머니는 형과, 저를 같이 혼내셨어요. 억울하다고 울면 뭐하냐고요? 결국 어머니에게 매 한 번 더 맞게 되는데요. 저만 밥을 늦게 먹는 날이었어요. 그 귀한 고기반찬이 있더라고요. 이미 저녁을 먹은 형이 제 옆에 앉아요. 그리고 고기를 한 점씩 집어 먹어요. 형이 먹은 고기가, 내 몫보다 훨씬 많았을 텐데, 왜 또 뺏어 먹냐고요? 어머니, 제발 형 좀 말려 주세요. 그만 먹으라고 짜증을 내지만, 어머니는 안 말리시더라고요. 아들 입에 들어가는 게, 그냥 다 이뻐 보이셨던 거죠. 착취에 저항하지만, 막아주고,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그 서러움이 얼마나 컸는지, 밥상머리에서 엉엉 울었어요. 서럽기도 했지만, 참 구차하더라고요. 돼지고기 몇 점에 뜨거운 눈물까지 흘려야 한다는 게, 그런 눈물을 쏟게 한 형이 여전히 고기를 주워 먹고 있다는 게 참 화나고, 서글펐어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성인이 되었는데도, 내 과거를 완벽하게는 못 숨기나 봐요. 음식을 씹고, 삼킬 때도 계속 접시 위의 음식을 뚫어져라 본다잖아요. 그러고 보니 위장병도 다 식탐에서 나온 거예요. 배가 심하게 불러야 심리적인 안정감이 와요. 속이 부대껴야 제대로 먹은 것 같아요. 나이 먹고, 소화력은 약해지는데도 그 버릇이 잘 안 고쳐져요. 어릴 때 외아들로 자랐다면, 뺏기는 두려움 없이 양껏 먹었다면, 식탐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죠. 칠레에서 트레킹을 할 때, 일본인 네 명과 함께였어요. 종일 걸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스파게티 두 봉지를 끓이자니까, 일본 친구들이 사색이 되는 거예요. 보통 스파게티 한 봉지가 500그람이고, 백 그람을 1인분으로 치죠. 다섯 명이서 십 인분 양을 끓이는 건 과하다 이거죠. 두 봉지 다 먹을 수 있다고 아무리 우기면 뭐해요?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린다면서, 크게 양보해서 한 봉지 반을 끓이자는 거예요. 그 한 봉지 반을 얼마나 허겁지겁들 먹던지. 1인 분씩만 딱 먹고 떨어질 것처럼 정색을 하더니, 그냥 다 똑같은 돼지들이던데요? 양념까지 긁어가면서 누구 하나 중간에 숟가락을 안 내려놓더라고요. 그게 너무 꼴 보기 싫어서 자리를 떴어요. 그때는 담배를 피웠거든요. 열 받을 때 담배 한 모금이 얼마나 또 맛있나 몰라요. 배불리 먹고 싶은데, 저 멍청한 것들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제 반일감정이 인생 최고치를 찍었죠. 겁도 많고, 이기적이라서 식민지 시절 태어났어도, 독립운동은 꿈도 못 꿨을 거야. 평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스파게티 반 봉지를 더 못 끓이게 똘똘 뭉쳐서 달려드는 걸 보니, 독립운동 가능하겠더라고요. 저것들이 내 위에서 군림하는 꼴을 상상하니까 피가 거꾸로 솟더라니까요. 한국인끼리 왔다면 무조건 두 봉지 끓였을 거예요. 허기에 대한 공포가 그런 식으로 또 들통이 나더라고요. 


그런 식탐이 그립네요. 이젠 그런 배고픔도, 어떤 걸 꼭 먹고 싶다는 간절함도 없어요. 있으면 먹지만, 감격하면서 먹지는 않아요. 그런 배고픔의 감정이 그리워서, 또 산을 타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해요. 노동한 만큼, 사냥한 만큼 먹을 수 있었던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무기력하고, 노쇠한 위장이 팔딱팔딱 움직일까요? 배고픔이라는 게, 서러운 감정이면서도, 얼마나 살고 싶은지, 젊은지를 알려주는 신호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운동이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밥만 먹고, 앉아서 글만 쓰니 이런 부작용도 생기나 봐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문자가 나오고, 종이가 발명되고, 컴퓨터가 세상에 등장했어요. 덕분에 쉽게 글을 써요.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입니다. 수만 년 역사 속에서 피어난 문명 덕에 씁니다. 삽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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