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지아가 아프기 시작했다.

왜 내 마음을 이런 식으로 흔드니?

by 박민우
조지아 뒷골목을 스케치하는 건축학과 학생들


나는 관심종자다. 관심이 늘 고프다. 나는 낯을 가린다. 낯선 사람과 1대 1이면 더 긴장한다. 5분 정도 지나면 편해진다. 그 5분을 두려워한다. 관심도 받고 싶고, 외롭고도 싶다.


-작가님, 저는 여행 가이드 일을 해요. 조지아에 와 있어요. 식사대접을 하고 싶어요.


진짜 숨기고 싶었던 건데, 못 생겨서 누굴 못 만난다. 최근엔 더 못생기고, 늙어서 피한다. 작가로서 신비주의고 나발이고, 일주일마다 피부과 관리받으면 내 대인 기피증은 사라진다. 지구에서 조지아, 조지에서 트빌리시. 같은 시간, 같은 공간.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못 생긴 나라도 어떻게든 만나야겠다. 그런 힘이 느껴진다. 나에게도 이유가 있다. 만나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평소의 나처럼 도망가면 안 되지.


-죄송하게 됐어요. 아르메니아로 가게 됐어요.


또 도망가는 꼴이 됐다. 조지아가, 트빌리시가 좀 실망스러웠어야지. 만나기 싫어 피하는 걸로 오해하면 안 되는데. 약간의 도망 욕구도 솔직히 있었다. 조지아 사람들이 무뚝뚝하게 굴 때마다 거울을 봤는데, 확실히 못 생겼다. 인종 차별이 아니라 외모 차별이구나. 자신감이 사라졌다. 누굴 만나서 발랄해질 자신이 없다. 약속도 피하고, 조지아도 피하자. 아르메니아로 서둘러 가야 할 이유였다. 그런데, 제길. 에어비엔비로 예약한 집주인이 먹통이 됐다. 집을 어떻게 찾아가라는 거야? 한 시간, 두 시간. 이 집이 날아가면 나는 일대일로 만나 밥을 먹어야 한다. 나를 구박하는 트빌리시 뙤약볕을 걸어야 한다. 긴박감을 느낀다.


-저, 트빌리시에서 더 머물게 됐어요. 맛있는 거 사 주세요. ㅎㅎ


에어비엔비를 취소하자마자 메시지부터 보냈다. 데이터 자판기의 만행으로 한 달 무제한 데이터가 생겨버렸다. 아르메니아 집이 사라졌다. 트빌리시에 더 머물라는 계시일까? 땀을 흠뻑 흘린 손자를 떨리는 손으로 구석구석 닦아주는 할아버지를 봤다. 한 밤 아몬드 버터 같은 바람을 걸었다. 5라리(2,160원) 케밥이 제일 작은 거라더니 팔뚝만 한 걸 줬다. 더럽게 짜고, 닭고기는 씹을 때마다 터져 나왔다. 케밥 주인은 생글생글 웃기까지 했다. 미쳤거나, 아빠가 태국 사람이거나, 친절한 조지아인이거나다. 친절한 조지아인? 그게 가능해? 맹렬하고, 성실한 자세로 조지아를 미워하려는데 곳곳에서 어깃장을 놨다. 일단은 좀 더 있어 봐? 취소했던 저녁 약속부터 복구하기로 한다. 허허. 보연 씨 나를 그렇게 만나고 싶소? 나를 트빌리시에 붙잡아둔 거, 당신 초능력이오? 내 책 백만 권도 팔아 주시오. 그 정도 초능력이면, 책 파는데 쓰셔야지요.


-작가님, 이번에 경비가 많이 남았어요. 작가님 가고 싶은 식당 있으세요?

-그, 그럼 둘이 십만 원 정도 하는 식당 가도 되나요?

-그 이상도 괜찮아요.


조지아 국민 소득은 1인당 3천 달러다. 한 달에 삼십만 원이 채 안 된다. 우리나라가 1인당 열 배는 더 번다. 좀 경우 없는 계산이긴 하지만, 백만 원 식사권이 생긴 셈이다. 경건해진다. 최선을 다해 잘생겨지고 싶다. 트빌리시는 온천이 유명하다. 따로 개인 욕실을 빌리면 만 원 정도 든다. 조지아 할아버지, 아저씨와 동등하게 다 까고 목욕하면 5라리다(No5 sulfur bath). 2천 원을 내고 들어가면 모든 시선이 내게 온다. 나는 관심종자니까 모른 척, 자연스러운 척 벗는다. 팬티를 벗을 때 약간 긴장되기는 하지만, 몇 초 정도다. 팬티까지 사물함에 넣으면 내 자유의지가 10% 향상된다. 실내로 들어가면 할아버지와 조기 축구를 막 끝낸 게 확실시되는 아저씨들이 샤워를 멈추고 앉는다. 바른 자세로 두 손 모으고 앉는다. 계란 방귀 냄새가 은은한데, 유황 냄새다. 밸브를 돌리면 파이프에서 졸졸졸 물이 나온다. 파이프 찔끔 물로 몸을 씻는다. 목욕을 잊고 관람에 눈이 먼 조지아인 눈동자 수십 개에 온 몸이 따끔따끔하다. 나는 관심종자니까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지만,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 긴장감은 3분을 못 버티고, 다들 목욕으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동아시아인의 몸을 최초로 보았을 것이다. 별 거 없다는 안도감이 표정에서 보인다. 나도 마찬가지다. 백인이라고 압도적(?)이지 않다. 백만 원의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때까지 벗길까 ? 한 손으로 칠판 닦듯 때 미는 세신사를 보고, 마음 접는다. 분당 미금역 코오롱 사우나 세신사가 최고지. 힘 하나 안 들이고, 피부의 모든 각질을 벗겨낸다. 온천욕을 끝내고 거울을 본다. 여전히 못 생겼다. 목욕탕만 다녀오면 뽀얘지고, 어려지는 것도 서른 까지다. 이발소를 찾는다. 남자만 깍는 곳이 쌀 것 같다. 주변에 안 보인다. 숙소 바로 앞에 미용실이 있다. 비싸면 또 얼마나 비싸겠어? 그래도 모르니 가격부터 묻는다.


-5라리요.


싸면 무조건 좋은 줄 알았다. 2천 원이라니. 하루 열 명을 깎아도 2만 원. 2만 원이면 런던에서 머리통 3분의 1을 깎을 수 있다(혹은 5분의 1). 잔돈을 거슬러 주려고 박스를 연다. 5라리 지폐 예닐곱장이 말라 비틀어져서는 뒹군다. 뭐가 비싸네, 안 비싸네. 따지기만 하던 내가 얼어 버린다. 최소한의 여유와 하루 일과의 보람을 집으로 가져갈 수 없다. 종일 열심히 일해도 케밥 하나를 맘 놓고 못 먹는다. 1.5라리를 팁으로 드린다. 5라리 지폐도 있었지만, 내 마음 크기는 1.5라리다. 이들의 무뚝뚝함보다, 이들이 이룬 질서와 자제가 더 놀랍다. 화내지 않고, 탐내지 않으며 자신의 가난을 곁에 둔다. 요즘 사람들은 질질 짜는 거 싫어한다. 억지 감동 질색한다. 요즘 사람 사랑 받기는 틀린 것 같다. 나는 약간 눈물이 나려고 한다. 버스 카드를 찍을 때, 잔액이 없는 사람만 다섯 명을 봤다. 구걸을 하는 거지의 바구니는 또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떤 나라보다 많은 사람들이 잠깐 멈추고 주머니를 뒤진다. 성당을 지나칠 때마다 성호를 긋고, 꽃을 무릎 위에 올리고 꾸벅꾸벅 존다. 5라리에 머리를 깎고, 내 마음은 불편해졌다. 얼굴은 약간 잘 생겨졌는데, 삼십 분 사이에 팔자 주름이 더 깊어졌다. 나는 코끝이 맵다.


그래도 나는 뻔뻔하게 설렌다. 조지아 사람 대부분은 평생 발도 못 붙일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최고급 와인을 마실 것이다. 동정도 하지만, 안 바르던 스킨이라도 발라야겠다. 10%만 더 잘생겨졌으면 좋겠다. 금세 내 고민, 내 얼굴로 돌아왔다. 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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