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지옥은 미로지 - 공포의 집 찾기

집 찾기 전에 화병에 먼저 죽기

by 박민우
증거 이미지. 나는 그녀가 콕 찍은 그곳에서 완전한 미아가 됐다.

-2천 드람이요.
-2천 드람?
-캐리어 천, 사람 천. 2천 드람(드람은 아르메니아 화폐 단위다)

사기를 치려면 연습 좀 하고 오든가. 개소리를 뭘 이리 정성껏 하시나? 택시 기사 양반, 이 귀한 몸을 짐 값이랑 퉁쳐?

-천 드람(2,400원) 받아요.

순순히 받는다. 나를 물로 봤구나.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승합차로 다섯 시간 사십 분 걸렸다. 오후 한 시 40분.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Yerevan). 코카서스 세 나라 중 세 번째 나라. 감동을 하든, 하품을 하든 숙소부터다. 심카드부터 바꾼다. 아르메니아 돈이 없다. 은행이나, 환전소가 안 보인다. 물어, 물어 구멍가게로 간다. 환전이 가능하단다. 20달러만 바꾼다. 길 건너편 Beeline으로 들어간다. Beeline은 러시아 통신회사. 조지아에서도 Beeline을 썼다. 나라가 달라지면 무조건 새 심카드여야 한다. 심카드를 바꾸고, 7기가 바이트 데이터를 산다. 8천 원. 8천 원이면 한 달 원 없이 데이터를 쓴다. 듣고 있나, SK? 얀덱스 어플을 깐다. 아르메니아의 택시 애플리케이션이다. 택시를 부른다. 가만?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했던가? 취소, 취소 메뉴를 누른다. 취소가 안 된다. 먹통이 된다. 아예 어플을 지운다. 전화가 온다. 그럴 리가? 전화를 받는다. 작은 목소리로 떠듬떠듬. 어플을 지워도, 어플이 돌아간다. 시체가 말을 하는 거나 같잖아? 무서워서 끊는다. 다시 온다. 마침 다른 택시 기사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내 전화를 건넨다. 내 폰을 들고 자기 택시로 간다. 저대로 차를 몰고 가면, 나는 끝장이다. 소음 없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꽤 오래 통화를 나눈다. 기다리라고 한다. 의문의 택시가 온다. 탄다. 근성의 사내. 나를 붙잡기 위해, 어플까지 지운 나를 물고 늘어졌다. 세 번이나 통화를 시도했다. 근성의 남자는 2천 드람을 달란다. 어플에서 제시한 액수는 700 드람이었다. 천 드람 받고, 어서 꺼지시오. 천 드람을 준다. 천 드람을 아낀 기분이다.

25동 아파트를 찾으시오.

이번 방 찾기 숙제다. 구글맵이 있다. 못할 게 없지. 스마트폰 구글맵이 가라는 대로 간다. 30분을 헤맨다. 처음 택시 자리다.

-구글맵에서 25동 아파트를 5동 아파트에 표시할 때가 있어요.

아니, 또 외계인 말을 지껄이고 그러세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집주인의 새 메시지에 갈피를 더 못 잡겠다.

-25동 아파트가 어디인가요?

다급한 내가 아무나 잡고 묻는다. 사람들이 몰려든다. 회의를 한다.

-여기는 아니에요. 여기는 50동이에요.
-25동은요?
-모르겠어요.

나를 도와주려는 청년 다섯이 모른다고 했다. 내게 천천히 다가온 꼬마 남자애가 모른다고 했다. 나를 너무너무 도와주고 싶은 할머니, 할아버지, 청년 총 세 명이 또 모른다고 했다. 또 한 청년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쯤이요.

확신 없는 손가락이다. 옛 소련의 아파트들은 동 번호를 코딱지만 하게 숨겨놨다. 대단한 관찰력으로 찾아내야 한다. 후우우, 하아아. 심호흡을 한다. 흥분 그만. 절망 그만. 어떻게든 찾아내게 되어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거의 다 왔다. 코 앞이다. 그녀가 캡처해서 보낸 구글맵 사진을 뚫어져라 본다. Gyros 식당 근처다. 식당부터 찾는다. 그녀가 지도에 콕 찍은 곳에 내가 선다. 50동 아파트 자리다. 뫼비우스 띠에 갇혔다. 나는 오늘 이 집을 못 찾을지도 모른다. 갤럭시 노트 배터리 7%. 7% 남았다. 10분 안에 찾아야 한다. MAPSME 어플을 켠다. MAPSME가 구글맵보다 정확할 때가 많다. 구글맵에선 없던 단지 번호가 주르륵 뜬다. 25동은 그러니까, 길 건너, 수많은 20 동대 아파트들 사이에 숨어있다. 다시 10분, 아니 15분을 걸어야 한다.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러운 15분. 드디어 20 동대 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25동이 어디죠?

마침 세차를 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 손가락으로 두 개, 다섯 개. 25동.

-바로 옆이요.

휴, 다 왔다. 제대로 찾았다. 번호를 찾는다. 29다. 29동이다.

배터리 5%. 절망도 할 때 해야지. 지금은 무조건 찾아야 한다. 다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작은 마트로 들어간다. 이번엔 집주인이 에어비엔비에 남긴 주소를 보여준다. 러시아말로 적힌 주소다. 옛 소련의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러시아어를 한다.

-택시를 타셔야 해요.
-노오오오

노오오 비명을 지르고, 계산대 여자를 노려본다. 나를 도와주려는 거 안다. 그래도 내 앞에서 그딴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무슨 택시를 또 타냐고요. 갤럭시폰이 까매진다. 꺼진다. 4%, 3%, 2%, 1% 단계를 무시하고, 그냥 0이 된다. 나도 폰처럼 까매지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전화받으세요.

편의점 남자가 자기 전화를 들이민다.

-친구가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제게 전화를 했어요. 어디를 찾고 계세요?

영어다.

-25동이요. 이 아파트 안에 25라고 쓰인 아파트가 있죠? 아르메니아 아파트들도 번호가 있는 거 맞죠?
-그럼요. 전화기 주인을 다시 바꿔 주세요.

마트 남자가 끄덕끄덕, 전화 속 여자의 말을 경청한다. 전화를 끊고, 계산대 여자와 상의한다. 마트 남자가 따라오라고 한다.

-충전을 좀 할 수 있을까요?

폰이 어쨌든 있어야 한다. 아파트를 찾는다고 해도, 들어갈 방법을 모른다. 집주인이 말해줬나? 그런 것도 같다. 지금은 기억을 못 한다. 나는 거덜 났다. 기꺼이 충전을 허락한다. 단지 안 중학생들이 열 명 가까이 몰려든다. 아시아 남자가 우리 단지에 왔어. 나만 힐끗 보고는 웃거나, 도망친다. 한 여자애는, 아무래도 나 때문에 일부러 과자를 사는 것 같다. 사라졌던 아이들이 다시 등장해서 또 웃는다. 또 사라진다. 편의점 남자가 자두 하나를 내게 건넨다. 주머니에 일단 넣는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요.

10% 충전을 끝내고, 환타 값을 낸다. 목이 얼마나 타던지, 평소에 절대 안 마시는 탄산음료를 한 번에 들이켰다. 역류성 식도염의 불쌍한 내 위장이 콕콕 쓸린다. 짐을 든다. 편의점 남자가 따라나선다. 고맙다.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는 참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집 찾기가 우습다. 지금의 나는 모든 게 다 어렵다. 두렵다. 치매에 걸리면 이런 느낌일까? 사소함이 두려움이 되어, 커진다. 거대해진다. 전화를 하면 되잖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에어비엔비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한다. 안 된다. 다시 메시지를 보낸다.

-제발 전화 좀 받으세요.
-저는 지금 러시아에 있어요.

내 쌍욕을 5분간 집중해서 듣고 싶은 사람이 러시아에 있다. 러시아로 도망갔다. 편의점 남자가 내 전화를 채간다. 아르메니아어로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영어 알파벳으로 아르메니아 말도 가능한 모양이다. 우리는 큰길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도 뭐가 이렇게 어려워? 짐은 두 배로 무거워져 있다. 그리고 다시 기다린다. 오후 두 시에 시작한 집 찾기. 여섯 시 사십 분. 네 시간 사십 분이 흘렀다. 그때 한 여자가 단지에서 걸어 나온다. 마트 남자가 나를 그녀에게 넘긴다. 4층 38번 방에서 나를 기다리던 여자였다. 러시아 집주인이 잠깐 내려가 봐. 이 한 마디를 안 해서, 지옥의 미로를 헤맸다. 아니, 내가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했을 때, 큰길 어딘가에 있으세요. 우리가 찾아갈게요.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 정말 생각 안 났어? 줄곧 방에서 나를 기다렸던 거야? 내가 아파트 입구라고까지 말했다. 그 이후에 마트 남자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큰길로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 그래도 아파트 거실을 지켜야 했니? 여자가 등장했으니 지옥은 끝. 마음의 지옥은 더 활활 타올랐다.

-이 미친 개 젓갈 같은 아르메니아아아아아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라고 생각하면서요. 글 하나를 올리면 책 한 권은 팔리지 않을까? 작은 욕심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를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께 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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