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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23. 2019

슬픈 이별, 슬픈 엄마.(Feat 자본주의)

아르메니아로 떠나기 전 날 밤

안녕, 마테. 안녕 트빌리시. 건강하자. 우리 이쁜이들

아르메니아를 포기할까?


기대가 되어야 말이지. 꼭 가 봐, 어떻게든 가. 이런 사람이 어째 단 한 명도 없다. 괜찮았어. 가볼 만 해. 고작 그런 말에 짐을 싸야 해? 박민우 정신 차려. 포기도 용기야. 그 포기가 너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거야. 코카서스에 세 나라가 있는 거 누가 몰라?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그렇다고 다 가? 일종의 휩쓸림이라고. 좋은 곳에 뼈를 묻어. 안 간 곳을 아쉬워 말고, 있는 곳을 누리라고. 지혜는, 홀로 남는 거야. 섞여서, 안심하는 건 일종의 마비야. 마테랑 헤어질 수 있어? 심장 폭행이 무슨 소린가 했다가, 마테를 보면서 이해했잖아. 막내가 웃을 때마다 갈비뼈 쪽이 문지른 듯 이상했잖아. 삐걱삐걱 철제 계단도, 촌스러운 방도 마테 때문에 더 좋아졌잖아. 어딜 가든 마테가 눈에 밟힐 텐데? 그러니까 가겠다. 아르메니아를 아예 안 갈 용기가 내겐  없다. 서둘러 다녀오자. 카즈베기, 바투미, 메스티아. 조지아의 나머지 일정을 허겁지겁 끝내자. 다시 트빌리시로 와서 마테랑 놀자. 방이 계속 있을까? 7월은 성수기다. 에어비엔비 첫 개시를 내가 했다. 입소문이 좀 나야 방이 찬다. 위치는 좋지만 이 정도 방은 트빌리시에 많다. 에어컨이 있지만 세탁기가 없고, 주방도 불편하다. 내겐 마냥 사랑스럽지만, 다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안나나는 내가 더 머물기를 기대한다. 더 묵을 거냐고 몇 번을 묻는다. 트빌리시의 마지막 2 주, 최소 2주는 이곳에서 머물겠다. 


-6월 29, 30일, 7월 1일. 일단 사흘을 묵을게요. 짐 좀 맡아줄 수 있나요?


아르메니아를 다녀와서 첫 사흘이다. 곧장 카즈베기로 가도 된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 안나나 표정이 심각해진다. 에어비엔비로 예약 현황을 보고 있다. 영어가 서툰 안나나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한 달을 묵고 싶다는 메시지다. 중국인이다. 한 명의 한국인 여자도 예약 여부를 물어왔다.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작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기쁘다. 나는 다른 곳에서 묵으면 된다. 마테야, 보고 싶을 거야. 인연은 어디서든, 언제든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구르자니 시골집으로 떠나. 아무도 없는데 괜찮겠어?

-난 다른 곳에서 묵을래. 신경 쓰지 마. 


졸지에 내가 더 불쌍해졌다. 


-무슨 소리야? 여기서 묵어야 해. 만약 중국인이 예약을 하면 우리 거실을 써. 우리가 없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얼마든지 묵으라고. 우리랑 구르자니로 가면 안 돼? 가서 와인 마시고, 자두 먹자. 정말 즐거울 거야.  


남편 말카즈는 나를 보내고 싶지 않다.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그 마음이 닿아서, 한결 풀어진다. 거실 쓰겠다. 불편하지만 불편해도 된다. 어차피 도움을  주고 싶었던 거니까. 특혜로 생각하는 투로 말하지만, 그래도 된다. 기본적인 호감을 확인했다. 나머진 부분적인 것들. 


-7월 1일은 가격을 50% 올릴 거예요. 괜찮아요?


안나나는 전에 통역을 맡았던 영어 선생님과 통화를 하다. 전화를 내게 건넨다. 그럼요. 그럼요. 나는 서둘러 답했다. 득달같이 방으로 달려가 달러를 가져왔다. 안나나는 7, 8월 예약으로 꽉 차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거실은 방이 아니지만, 거기에서라도 재워주는 게 어디냐고 생각한다. 인기가 많은 집주인이 됐다. 그런 집주인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너무 서툴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짐을 싼다. 안나나는 4남매를 키운다. 그 돈이 생기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쉽게 포기되는 액수가 아니다. 나의 어머니도 그러셨을 것이다. 아버지들은 안 한다. 치사하고, 거북한 상황은 어머니들 차지다. 500원, 100원을 어머니만 깎는다. 그게 다 새끼에게 간다. 새끼를 먹인다. 그 마음으로 못할 게 없다. 온 세상이 다 내 새끼로 채워진다. 


조지아에 대한 애정이 한 풀 또 꺾였다. 심판자처럼 군다. 천 가지, 만 가지 사람이 있다. 몇을 만나고 그 나라를 평한다. 그게 맞나? 틀리다. 여행자들은 모두 틀리다. 과대 포장하고, 감정적으로 해석한다. '감정적'으로 행복하고 싶어서 왔다. 돈을 쓴다. 비루한 현실은 외면한다. 내 나라에서 잔뜩 보고 산다. 충분히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낭만 달달 오해를 하려고 짐을 싼다. 나 역시 치열하게 오해 중이다. 안나나는 자두를 졸여서 말린, 언뜻 종이처럼 보이는 자두포를 가져왔다. 굉장히 시다. 


-선물이에요. 


10분만 지나면 우리는 달라진다. 10분 전 상황이 보인다. 안나나는 봤다. 내가 웃으며 달러를 건넸지만, 웃음 뒤의 무엇도 봤다. 들켰다. 들킨 상황은 말린 자두가 해결해줄 것이다. 안나나는 믿는다. 좋은 사람에게 감사하고,  서운한 사람에게 따뜻하자. 짐을 싸면서 다짐했다. 조지아가 그리울 것이다. 마테도 보고 싶을 것이다. 3일은 묵을 것이다. 아니, 안 묵을 수도 있다. 짐만 찾으면 된다. 남의 집 거실에서 자고 싶지 않다. 이젠 나도, 나로 돌아왔다. 3일 치 숙박비가 작은 선물이기를... 그래도 뭔가를 사들고 가야지. 네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내 마음은 온기와 냉기가 반반. 그 마음으로 짐을 쌌다. 조지아로 서둘러 올 일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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