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는요. 요즘 베스트셀러 1위인 책을 앞부분만 봐요. 공짜로 볼 수 있더라고요. 다들 좋게 보셨더라고요. 아, 세상이 긴 글을 싫어하는구나. 장황한 글로 헛짓거리를 하고 있나? 내 블로그 추리면 이런 책 여러 권인데... 저의 열심이 억울해요.
억울?
우리의 절망은 어디서 올까요? 내가 잘 살고 있나? 기준은 뭘까요? 비슷한 친구들, 비슷한 직업군과 비교하게 돼요. 혹시라도 내가 잘못 살고 있나? 엄청난 글? 너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네가 가난한 거지. 흔들려요. 세상에 화가 나죠. 마치 내가 뭐라도 되는 양. 베풀고 있는 양. 사실은 저를 위해 쓰는 건데도요. 뭐라도 하는 느낌이 들어야 안 불안해서 써요.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쌓고 있다. 그 믿음으로 써요. 앞부분만 읽고 어찌 알겠나요? 그 책을 끝까지 읽지도 않고, 함부로 평가하는 거죠. 불안, 분노. 그 지점에서 유익한 성분들이 나와요. 글쟁이에게 유익한 성분요. 이 어리석은 질투가 무익하지만은 않아요. 오체투지. 이런 말을 글 말미에 쓰잖아요. 동티베트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땅바닥에 두 무릎, 두 팔, 머리를 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요. 깨달음을 위해, 부처를 만나기 위해,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업을 씻기 위해서요. 누구나 쉽다면, 할만하다면 오체투지가 아니죠. 송두리째 바치고, 결과는 맡겨야죠. 순리에, 우주의 질서에. 저는 가소로운 사람이군요. 이제 몇 달 쓰고 생색내고 싶어 해요. 저는 약아빠진, 나약한 사람입니다.
내일은 죽는다.
내일 저는 죽을 거예요. 오늘의 제가 죽는 거죠. 오늘의 저는 내일 없어요. 저를 위로하는 방식이에요. 새로운 제가 태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불안도, 시기도, 질투도 다시 생각해야죠. 오늘까지만 살아도 그게 탐이 나니? 아르메니아 예레반이야. 3백 원 대왕 슈크림 빵에 흰 우유를 먹었던 날이잖아. 어릴 적 서울우유 병 우유보다 더 맛있는 우유였잖아. 지금도 손이 떨릴 정도로 맛있었잖아. 잠깐씩 쓸데없는 욕망이 괴롭혀요. 정말 쓸데없죠. 성공이 만능 봉 아닌걸요. 행복을 구성하는 수백 가지 중 하나인데요. 서울대, 1등, 강남 아파트, 몇 억의 통장. 이런 부분적 사실에 행복의 전권을 주다니요. 저의 건방짐은 곧 허물어질 거예요.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들이 빛을 못 보고 있어요. 배곯으며 글을 써요. 그림을 그리고, 곡을 쓰죠. 거기까지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드네요. 보이는 곳에 환장하면, 보이지 않는 곳을 못 봐요. 분명히 존재하고, 엄연히 반짝이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고로쇠 수액 같은 글만 차분히 쌓는 사람들을 제가 몰라봤어요.
오체투지는 계속됩니다.
제가 가진 것이 이것뿐이 없어서, 이걸로 맨바닥을 긁겠습니다. 다 비워질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내게 허락된 결과가 이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