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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10. 2019

호스텔 섹스머신 사장 에이샷(19금 주의)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상한 채식주의자

미안하다. 에이샷 수염 좀 깎고 출근하지 그랬어?

1

-신발 오케이. 그냥 세탁기에 넣으세요.


세탁기에 신발을 넣어도 된다고 했다. 비에 쫄딱 젖은 신발을 어쩌지? 심란하던 참이었다.


-고기는 안 먹어요. 17년 됐어요.


방값은 하루 2천 드람(4천8백 원). 5천 원도 안 한다. 에어컨이 있고, 세탁기가 있고, 불쏘시개 없이 켜지는 가스레인지가 있다. 캡슐형 도미토리는 널찍하다. 과장 좀 보태면 독방 크기다. 실제로 종로 원룸 고시텔 중 이보다 작은 곳도 많을 것이다. 활짝 웃을 때 치열이 거의 다 노출된다. 대부분이 잘 생겼다. 인상 좋다 할 얼굴. 딸이 데리고 온 남편감이 이렇게 생겼다면 대부분의 부모가  흡족할 것이다. 서른일곱 노총각, 이름은 에이샷. 아르마니에선 안 먹히는 얼굴인가 보지, 뭐.  


2

-뭐라고? 지금 자고 있다고?


새벽 다섯 시에 쿵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얼마 전 내가 일기에 썼던). 잠귀가 밝은 내가 문을 열어줬다. 아르메니아 남자, 러시아 여자. 사장이었다면 당연히 재웠겠지. 사장의 마음이 되어 일단 빈 침대에서 자라고 했다. 찜찜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장놈이 발끈한다.


-숙소를 열고 제일 스트레스받은 날이야. 도둑이었다고 생각해 봐. 숙소 귀중품이 다 없어질 수도 있었다고.


졸지에 눈치 없는 진상이 됐다. 그럼 24시간 지키고 있든가? 내 선의는 존중받지 못했다.


-커피 마실래?


사장 에이샷은 자기 서랍을 열고 커피병을 흔들었다. 주방에 있는 것보다 약간 더 비싼 인스턴트 커피.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안 마신 지 꽤 됐다.


-그래, 한 잔 줘


화해의 커피였다. 너나 나나 삐걱대는 분위기는 싫다. 즉, 이 새끼는 내게 짜증을 낸 것이고, 난 그걸 알고도 인스턴트커피 한 잔에 다 괜찮아진 사람이 됐다.


3


-채소만 넣은 수프야, 먹을래?

-아니

-고기 안 들어갔어.

-그냥, 안 먹을래.


맛이라도 한 번 보든가, 돼먹지 못한 놈. 채식주의자라서 까칠한 거야? 내가 끓인 양배추 수프는 진짜 맛있다. 하긴 이 고기, 저 고기 담긴 냄비에 끓인 국물이다. 뒤늦게 이해했다. 당시엔 약간 모멸감을 느꼈다.


4


-아무래도 베드벅스인 것 같아.

-그냥 모기야.


진물이 흐르는 물집, 밤새 긁었다. 물집 사진을 보냈더니, 모기라고 했다. 긁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집은 어때, 괜찮아? 한 번은 물어봐줄 줄 알았다. 내 얼굴을 보고도 눈인사만 하고 끝. 하, 정말 장사 못 하는 새끼. 치료비라도 물어달랄까 봐? 풀떼기만 먹으니까, 비겁함이 잡초처럼 우거지는 거야.  


5


-민우, 어제는 왜 이렇게 늦었어? 기다렸잖아.


응? 나를? 에이샷이 환한 얼굴로 반긴다.


-같이 있던 아가씨가 내 이야기 안 해?


이틀 전 루신, 유노나와 나는 영상을 촬영 중이었다. 대로변에서 예레반의 첫인상을 이야기하고,  뭔가를 먹고, 꺄아아, 맛있어. 호들갑을 떨었다. 갑자기 에이샷이 나타났다. 머리를 깎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녀도 내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했지? 내게 호감 있는 거지? 왜, 그녀랑 커피 마시러 오라고 했잖아? 그녀가 정말 내 이야기 안 해?


홍조를 띠면서 다리를 떨었다. 훅 달아올라서 루신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칭찬 한 마디에 모든 가능성을 걸다니. 채식을 하면 지능은 낮아진다.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어.

-그럼 그냥 차만 마시러 오라고 해. 친구로서

-너, 여자 정말 밝히는구나? 숙소에 오는 여자들한테도 이런 식이야?

-그러면 안돼? 러시아에서 온 여자들이랑 제일 많이 잤어. 러시아 여자들은 코카서스 남자들을 좋아해.

-채식주의자도 성욕이 이렇게 강한 줄 몰랐어.

-무슨 소리야? 섹스는 코끼리가 최고야.

-나 글 쓰는 사람이야. 손님들 오면 작업 걸고, 껄떡대고, 자는 거 다 쓸 수도 있어.

-괜찮아. 다 써도 돼.


한 남자는 숙소를 운영한다. 혼자 오는 여자 손님은 목표물이 된다.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한다. 잘 풀리면 그날로 잔다. 숙소에 빈 침대는 많다. 내가 여자라면 여기선 안 잔다. 육체적으로 약한 여자에게, 성욕이 강한 남자는 불편하다.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에이샷의 접근 방식은 대단히 직선적이다. 돌려 말하지 않는다. 한 잔 하러 갈래? 오늘 밤 같이  있을까? 수컷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편다. 모든 교태는 수컷의 의무. 아르메니아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 늘 부모와 함께다. 언제나 부모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다른 나라 아이들보다 팔 길이가 1cm는 더 길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크면 천하의 사랑꾼이 된다. 어떤 사랑도 사랑이면 괜찮다. 폭력과 반칙이 없다면, 섹스는 가장 아름다운 놀이다.  


6


에이샷은 하루 두 끼를 먹는다. 토마토, 오이, 잎채소에 약간의 치즈를 곁들인다. 피부가 굉장히 좋고, 체취도 없다. 며칠을 같은 셔츠를 입고 출근했는데도 뽀송뽀송하다. 우리나라 나이로는 서른아홉인데 한 번 섹스시 여러 번의 사정이 가능하다. 굳이 여러 번의 사정을 강조한 이유는, 그의 건강이 놀라워서다. 소련 시절 몸 아픈 사람은 조지아, 아르메니아로 왔다. 아픈 사람이 나아서 돌아간다. 다소 까칠하고, 다소 멍청하고, 이토록 건강하다면 채식은 굉장한 이득이다. 아르메니아의 깨끗한 채소는 차라리 약초가 아닐까? 풀떼기만 먹어야 하나? 흔들리는 중이다.


7


공화국 광장에서 분수쇼를 보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마지막 밤이지 싶다. 그래서 분수쇼를 한 번 더 봤다. 열한 시가 다 된 시간. 에이샷이 나를 기다린다.


-퇴근 안 했어?

-응, 너 보고 가려고.  

-왜?

-왜라니? 우리 꼭 다시 보자. 여기가 아니라도. 네가 머무는 태국에서 봐도 좋고.

-나, 정말 너에 대해서 다 쓸 거야. 아니면 아예 안 쓰든지.

-뭐든 다 써. 네가 보고, 네가 해석한 걸 쓸 자유가 있어. 난 네가 쓰는 그 어떤 모습도 좋아할 거야. 너는 작가잖아.  

-호스텔 섹스 머신 사장. 이렇게 쓰면 여자들은 여기 안 올 거야.

-괜찮아. 그래도 돼. 민우, 건강하게 여행 잘 마쳐. 그리고 책으로 나오면 꼭 연락 줘. 한국말로만 쓰였더라도 갖고 싶어.


아, 이 미친 새끼. 채식주의자는 굉장히 머리가 좋다. 닳고 닳은 나를 한 번에 무너뜨렸다. 글을 쓰기 위해 꼬치꼬치 물었다. 그게 어느 지점을 넘어갔다. 그걸 물어봐 준 사람이 없었을 테고, 그걸 쏟는 쾌감이 로 컸을 수도 있다. 루신에게 반해서 시작된 기묘한 반전이다. 베드벅스에 대한 에이샷의 대응은 실망스럽지만,  내 몸의 물집은 사라졌다. 내 침대에서 이틀을 잤다. 베드벅스의 정체는 유보한다. 예레반에 다시 온다면 sleep studio 호스텔이다. 창가 3층, 내 자리를 택할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이 호스텔 때문에 예레반에 올 수도 있다. 이토록 울컥한 이별이라니. 에이샷의 안녕이 자주 궁금할 것이다.   


  PS 매일 여행기를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이에요. 많은 사람에게 닿고 싶어요. 독자가 제게는 우주인 셈입니다. 매일 글 하나를 쓰면, 책 한 권이 더 팔릴 거라 믿으면서 써요. 요즘엔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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