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VS 태국인, 치앙마이 여행 배틀

치앙마이 맛집 열전

by 박민우



1 Round 호시하나 빌리지(Hoshihana village)




택시로 시내에서 26분 거리.


태국 형님 심드렁의 이유. 일단 고향이 수코타이. 고향이나 여기나, 특별한 차이를 못 느낌. 밥 값이 비쌈. 단품으로 나오는 요리가 만 원 안팎. 굉장히 정갈하고, 공이 들어간 느낌이지만 현지 식당의 열 배라니? 치앙마이 여행 끝날 때까지, 여기 밥값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 쪼잔하기는. 가격도 다 마케팅. 이유 있는 가격이면, 비쌀 수도 있지. 아, 물론, 밥값은 내가 안 냈다.


나? 나는 절대 심드렁할 수가 없다. 일본 영화 수영장(Pool 2009년)을 봐 버렸다. 호시하나 빌리지는 영화의 촬영 장소. 아니, 이 영화의 주인공. 시한부 엄마가 운영하는 치앙마이 숙소로 딸이 찾아간다. 예상되는 구구절절 눈물바다 없다. 그냥, 그냥 치앙마이를 여행하고, 숙소에 딸린 수영장을 청소한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기승전결을 기대한 이들은 벌컥 화를 내기 좋은 영화다. 나는 화 하나도 안 나던데. 그냥, 그냥, 그냥인 영화. 영화를 보고 벌컥 화를 낸 사람도 호시하나 빌리지는 와보고 싶어질 걸? 호시하나 빌리지는 처키처럼 소름 돋고, 처키처럼 감동적이다. 비유가 왜 이따위냐니? 적절하고, 절절하구먼.


2 Round 카오 소이 메사이(Khao soi mae sai)



카오 소이는 태국 북쪽 지방과 라오스 대표 음식. 엄청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가는데, 결국 달달한 코코넛 청국장 맛이 난다. 한국 사람 50%는 먹을만하네, 30%는 내 입맛 아님, 20%는 오오, 인생 국수. 그런 맛이다. 50% 중에는 먹을 만 하지만 딴 거 먹고 싶다가 80% 정도 될 것이다. 곁들여 나오는 우거지 피클, 샬럿, 라임을 곁들이면 훨씬 상큼해진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카레나 코코넛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다가가기 쉽다. 미각이나 감수성이 천하 동안인 나는 당연히 환장한다. 카오 소이 메사이(Khao soi mae sai)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카오 소이 맛집이다. 내가 가자고 했다. 태국 사람에게 태국 음식점을 추천하는 것도 나나 되니까 한다. 탁월한 정보력, 진짜 정보를 파악하는 눈, 맛에 대한 열정. 이 지점에서 코끝이 상당히 찡해진다. 프랑스 사람에게 와인을 추천하고, 영국 사람에게 더 맛없는 음식을 알려줄 수 있다. 나나 되니까다. 어허, 이 태국 양반 뭐 하는 짓거리인가요? 카 오소이를 안 먹겠다니요? 남냐오라고, 다크한 국물 쌀국수를 드시겠다? 아니 형님, 가게 이름이 아예 카오 소이 매싸이에요. 양평 해장국집 돈가스 먹는 소리를 왜 하고 계세요? 그래요. 나도 카오 쏘이 안 시켰어요. 속이 부대끼니까요. 쌀국수 시킬 수도 있죠. 에그 누들에 튀김면까지 올라가는 묵직한 카 오소이가 안 내킬 수도 있죠. 내 입 안 대고, 맛집 평가 좀 하면 안 돼요? 한 숟가락만 떠먹어볼게요. 아, 이 양반 고집 보소. 결국 카오 소이는 맛도 못 보고 말았네요. 누구 잘못도 아니죠. 오로지 형님 잘못이죠. 똥고집으로 강남에 알박기 하시면, 일원동 33평 아파트 하나는 거저 장만하시겠어요. 떼부자 되시겠어요.


PS 내가 선택한 소고기 쌀국수는 훌륭했다. 고기는 마냥 부드럽지 않지만, 육수는 완벽. 카오 쏘이도 맛있었을 것이다.


3 Round 카오 소이 사머짜이(Khao soi samer jai)


Khao soi samer jai. 여기도 가게 이름에 카오 소이가 들어가네요? 일종의 배틀인가요? 본인이 태국 사람이니까, 더 잘 안다. 이건가요? 구글 시대라고요. 형님. 구글맵 키고 식당 검색해 보세요. 손님들 평점이 성적표라고요. 여기는 점수가 4.0이잖아요. 4.5점짜리는 거들떠도 안 보고, 4.0점짜리가 진짜 맛집일 거라니요? 꼰대는 굳어서 꼰대예요. 태국 꼰대들이나 가나 보죠. 특유의 여유만만 표정, 짜증 나지만 참겠습니다.


흠, 사람이 엄청 많네요? 외국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저 포함 다섯 명도 안 되는군요. 나머지 백오십 명은 태국 사람이로군요. 규모가 좀 되는 식당이군요. 메뉴도 카오 소이만 있는 게 아니네요? 뭐 하나 대박 나면 줄줄이 새끼 치는 거, 태국 사람들 특징이죠. 저도 카오 소이 안 시킬래요. 복수라뇨? 유치한 사람 아니라고요. 갱항레(Gaeng hang le, gaeng hang lay) 요거 한 번 시켜 볼래요. 돼지고기가 들어간 태국 북부 스타일 커리요. 마사만 커리랑 비슷할 것 같아요.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마사만 커리 맛만 나도 좋겠어요. 마사만 커리에 밥 비벼먹으면, 혈관이 급 팽창하고, 피부의 모든 돌기들이 오종종 솟죠. 그리고 곧장 가라앉죠. 모든 감각의 평화가 득도하지 않고 찾아오죠. 유칼립투스를 과식한 코알라처럼 노골노골, 다 귀찮고, 다 괜찮아지죠.


아, 저는 얼마나 현명한가요? 제 예상이 맞았어요. 달달하고, 풍요로운 제육볶음 맛이로군요. 타마린드가 들어가서 새콤하기까지 해요. 한국 사람 입맛엔 달아요. 시큼하니까 상한 건가? 의심부터 하겠죠. 저는 왜 이렇게 맛있죠? 태국 사람들이 한국의 제육볶음을 먹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짜고, 쓰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카카오 성분 70% 초콜릿을 먹는 기분 아닐까요? 제가 너무 태국 맛에 길들여졌나요? 인생 음식을 하나 더 발견한 날이네요. 형님 말 개무시했다면, 이 맛을 몰랐겠죠? 몰랐던 음식 하나로, 새로 태어난 것 같아요. 인생을 두 배로 사는 것 같아요. 그깟 구글, 그깟 인공지능이로군요. 묵묵히 먹고, 꾸준히 찾아오는 치앙마이 사람들이 현자로군요. 늘 어리석은 저를 여유롭게 개망신 주시네요? 작정하신 건 아니죠? 좀 얄미워지려고 하네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형님 덕분에 기억에 남지 않고, 기억에 스미는 날이 되었어요. 이런 순간 때문에 여행의 바다로 뛰어들 용기가 생겨요. 여행에 파묻히게 되죠. 삶은 왜 이리 짧은가요? 왜 노래는 2절뿐일까요?


PS 카오 소이도 훌륭합니다. 형님 거 한 젓가락 먹어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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