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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15. 2019

에어비엔비로 집찾기 - 빡침주의

도닦지 마시고, 여기 와서 나와 집 찾으십시다. 공중부양 보장

오밤중에 택시를 타고 이런 길로 들어갔죠. 비는 추적추적 아이고오오 빡쳐

이틀 늦겠다고 했다. 예스. 하루 더 늦춰달라고 했다. 답이 없다. 화났나? 단답형으로만 답하더니, 그것마저 귀찮아? 흑해 연안 바투미로 간다. 내게 바다가 의미가 있나? 없다. 넘실넘실 바다가 그냥 그렇다. 기대가 안 돼서 간다. 실망할 일이 없다. 아니다 싶으면 또 짐 싸면 된다. 기대가 없는 지점이 우주의 시작점이다. 좋아할 필요가 없으니, 좋아진다. 건강한 자유가 강박을 퇴치한다. 왜 안 설렐까? 예전엔 안 그랬는데... 자학은 그만. 늘 화들짝이어야 해? 일종의 폭력이다. 강박이고, 구태의연함이다. 팔도 비빔면 두 개에 침샘이 콸콸댈 때가 있으면, 시들해질 때도 있어야지.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벼서 노인 될 때까지 먹으면 인생 승자야? 나의 무기력함을 다르게 보기로 했다. 기특해. 궁디 팡팡.  


또 미니버스다. 진짜 타기 싫다. 이걸로 여섯 시간을 간다. 기차는 아침과 늦은 오후 딱 두 편. 아침 기차를 타면 호텔 조식이 날아간다. 호텔 조식 먹을래? 바투미 갈래? 그깟 도시를  어떻게 바게트, 오믈렛, 말린 살구와 뽀드득 소시지, 종류별 치즈와 요구르트, 오렌지 주스와 비교할 수가 있지? 바투미는 다음에라도 가면 되지만, 안 먹은 크루아상은 다음엔 없다. 오늘 크루아상은 내일이면 다 죽는다.


-웰컴


바투미에 도착하기 세 시간 전에 드디어 답이 왔다. 에어비엔비로 방을 빌려주는 사람이면, 호텔 직원과 다를 게 없다. 이틀을 쌩까면 여행자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50시간 만에 답이 왔다. 포기하고 새 숙소를 찾으려고 했다. 어쨌건 돈은 안 날렸다. 잠깐 감사하다. 자, 이제 어떻게 찾아가나? 어떻게 찾아오란 설명이 없다. 러시아어는 있다. 그게 설명인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전화번호도 없다. 대부분 집주인은 전화번호를 공개한다. 이 집 주인은 오로지  메시지만이다. 그 메시지를 이틀 만에 확인했다.  


-이제 곧 도착해요. 트빌리시에서 미니버스로 가고 있어요.


다시 문자를 보낸다. 그래, 그렇게 계속 씹어보라고. 또 내일 확인하시게?  불친절을 넘어 싸이코패쓰다. 꼭지가 돌고, 쌍욕 거하게 싸지르는 내가 보인다. 후우우. 하아아. 날숨은 길게,  깊게 쉰다. 분노에 마데카솔을 발라준다. 불안해하는 이유가 뭐니? 방 못 찾은 적 한 번이라도 있었어? 박민우 너는 너를 너무  과소평가해. 일단 달려드는 택시 기사들을 물리치자. 스마트폰 어플로 택시를  부르자. 바가지 장착하신 기사님들 두 손 모아 사양합니다. 꺼져들 주세요.


-기차역까지 5라리요.


마르고 늙은 남자가 끝까지 서성댄다. 이렇게 액수를  말하는 기사는 합격. 기차역이 5라리 면 여기는 얼마요? 구글맵  주소를  보여준다.

 

-10라리요.


택시 어플은 6라리 면 간다는데? 최저가가 당연한 가격일까? 최소한의 이익으로 굶어 죽지만 않는 건 아닐까? 10라리. 콜! 갑시다. 폐차 직전 50살쯤 먹은 택시다. 뒷자리에 고1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셋이 쪼르르 탄다. 스마트폰으로 숙소 위치를 보여줄 때 달려들던 아이들이다. 그게 지금 뒷자리에 쪼르르 앉는 이유가 되나? 시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이다. 나만 빼고 한통속이다. 어리고, 비실비실 영양실조여도 넷이면 내가 진다. 칼이라도 들고 있어 봐.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을 자신이 있다. 스마트폰 구글맵을 켠다. 미니버스를 타고 왔던 곳을 정확히 되돌아가고 있다. 여섯 시간 거리를 일곱 시간 반 만에 왔다. 중간중간 내려달라는 사람 다 내려준다. 중간중간 태워달라는 사람 다 태워준다. 그래서 한 시간 반이 더 걸렸다. 에어비엔비 집주인이 터미널 전에 내리세요. 이 한 마디만 해줬어도, 숙소 앞에서 내릴 수 있었다. 아오,개씨베리아 젓갈 같은 인간.


-여기로, 여기로 들어가야죠.


나는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걱정 말라던 택시 기사는 지나치고 만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계속 내게 미안하다고 한다. 일부러 표정을 풀지  않는다. 뒤에 있는 강도 삼총사에게도 무서운 존재였으면 한다. 쫄았냐? 비리비리 삼총사가 내린다. 내게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기사 양반 헤맬까 봐 같이 와준 건가? 구글맵도 있는데 무슨 오지랖이야? 집이 이 근처인데 편하게 오고 싶어서겠지? 착한 애들 의심한 거면, 그래도 안 미안해. 이따위로 집을 찾는 게 정상이야? 미쳐 돌아가는  세상,  왜 나만 경우를 찾아? 기사 양반, 이왕 그렇게 된 거 쭉 직진하세요. 러시아까지 가봅시다. 여기서 유턴을 하시게? 차들이  저리  쌩쌩 오는데?


-쏘리, 쏘리. 그때 전화가 와서


알겠다고요. 저 화 안 났어요. 손짓 발짓 변명 좀 그만하세요. 그럼요. 전화 오는 거 받아야죠. 그런 실수 흔해요. 어르신께 화가 났을까 봐요? 무개념 집 주인 때문이라고 차분히 설명드려요? 구글 번역기 돌려요? 차 갓길에 한 번 더 세우실래요? 화 안 났다고,  짜증 안 났다고 몇 번을 얘기해요?


-로라네 집인가요?


겨우겨우 유턴해서 놓친 골목으로 들어간다. 에어비엔비에 나온 주소다.  문을 두드린다. 비까지 추적추적. 가지가지 한다. 로라, 로라. 로라에 환장한 스토커가 됐다. 로라가 아니고, 남자가 나온다.


-노, 노.  로라네 집은 저어기


로라님. 로라 남편님. 왜 자기 집 번호를 정확히 기재하지 않으세요? 손님들 개고생해야 추억 돋는다고 가족회의 합의 보셨나요? 쌍욕은 영어가 짧아서 못 알아들으시나 봐요?


-로오라, 로오라


택시 기사가 좁은 계단을 오른다. 방금 남자가 설명해 준 집이다. 나는 택시 기사를 쫓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밤 열 시가 다  된 시간이다. 동네 사람들, 나를 욕하시오. 나는 로라를 봐야겠소. 불이 꺼져있다. 칠흑같이 어둡다. 설마 자고 있는 건가? 알아서 오겠지야? 아니면 제발 알아서 오지  마라야? 내가 제대로 찾아올까 봐 조마조마, 불 끄고, 숨죽이고 있는 거야? 섬뜩해해야 하는 거야?k pop 말고 k 지랄. 그래, 개지랄 한 번 보여줘? 여기저기 몰래카메라 설치하고, 유튜브 홍보방송 찍고 그러는 거 아니지? 제발 그런 거라고 해줘. 나도 웃고 말게. 빡치지만, 그건 최소한 유머잖아. 엉뚱하지만, 안 밉잖아. 손님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안락하고, 평화로우면 미워. 미치도록 꼴 보기 싫어. 모든 저주를  동원해서, 당신의 화목함을 망가뜨리고 싶어. 개젓갈 같은 씨이베리아 옆 동네 개돼지 사촌아. 거하게 욕해주고 싶다고오오오!


PS 매일 여행기를 쓰는 이유요? 동 티베트에서 오체 투지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한 달을, 일 년을 머리, 두 팔, 두 다리를  땅에 쓸리며 앞으로 가요. 깨달음을 위해, 자잘한 소망을 위해 가장 낮은 자가 되어 가장 천천히 가요. 저만의 오체투지는 글쓰기입니다. 매일 한 권의 책이  더 팔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요. 요즘엔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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