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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18. 2019

그랜드 부다페스트 말고, 그랜드 바쿠미 호스텔

이토록 멍청하게 아름다운 곳이라니

무려 새벽 두 시 사진. 데이비드가 낮에 더 잘 생겨진다고 우김. 스니커즈는 안 우김


싸기만 해선 안 된다. 비싸면 아예 안 왔겠지만, 가장 싼 방도 이젠 안 간다. 최저가에서 천 원, 이천 원 정도 비싼 방을 고른다. 지금 옮기는 도미토리는 1박에 7천 원이다. 그만큼 강해졌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안심이 되는 예전의 나보다 약간은 강해졌다. 다른 숙소 두 곳을 보고 여기를 골랐다. 첫 번째 숙소는 깨끗하지만 좁았고, 두 번째 숙소는 장기 체류자 하숙집 느낌이 났다. 아무래도 노트북을 끼고 사니까, 앉을 만한 곳도 중요하다. 두 곳 다 앉을만한 공간이 부족했다. 테라스에 테이블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왕 버릴 거면 나나 줘. 친구의 애물단지 같은 걸 가져다 놨다. 테라스는 아침에나 좋지, 땡볕에선 잠시도 앉아있을 수 없다. 주방과 마당에 테이블이 있으면서, 가장 저렴하지는 않아야 한다. M55 호스텔은 그렇게 박민우에게 선택되었다. 영광인 줄 알아라. 이것들아.

커다란 철제문에 M55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55는 주소다. 55번지. 초인종이 없다. 쿵쿵 몇 번 두드린다. 인기척이 없다.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 방 탈출 게임을 돈 써가며 하지 말고, 조지아에서 숙소를 찾아다니면서 공짜로 할 것. 주소는 무용지물이고, 건물은 입구가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동전을 넣어야 올라가고, 아파트 현관엔 아무 숫자도 없다. 집 안에 또 집, 또 집. 여러 채의 집이 벌집처럼 뭉쳐 있다. 그중에 원하는 집을 콕 집어 찾아야 한다. 철컹, 삐죽 나온 걸쇠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민다. 문이 열린다. 여러 숙소를 돌아다니며 쌓은 능력치다. 혓바닥만 1kg가 넘을 것 같은 아메리카 아키타가 컹컹컹 다가온다. 일본 아키타보다 크고, 못생겼다. 같은 아키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름만 같다. 아메리카 아키타가 무릎을 핥는다. 눈코입이 억울한 위치에 절묘하게 달려있다. 주인은 또 어딜 간 거냐고? 여권을 보여주고, 침대를 배정받아야 쉴 수 있다. 마냥 기다린다. 낯선 숙소도 다 내 집 같다. 화도 안 나고, 경계심도 안 생긴다. 아메리카 아키타의 숨소리가 어찌나 큰지, 듣는 재미가 있다. 예쁘게 생긴 여자애가 여권을 달라고 한다. 너무 어린데? 내 여권을 복사하고, 방값을 받아 간다. 짐을 풀고 봉지 라면 두 개를 끓인다. 또 라면이다. 마트에서 라면을 어떻게든 안 사고 싶다. 싸지, 국물이지, 팔도에서 만들었지. 외로우면 얼큰함인가? 뜨끈한 국물을 들이켤 때마다, 오래 살고 싶어진다. 늙어 죽을 때까지 라면 맛에 농락당하고 싶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탐다르. 고등학생이거나 대학교 1학년이지 싶다. 큰 사기그릇에 봉지 라면을 넣고 나를 보며 웃는다. 우리 같은 거 먹네. 뜨거운 물을 붓는다. 봉지 라면을 컵라면처럼 먹는다. 면발이 익든, 말든 적당히 흐물흐물해지면 라면이지. 그따위 자세로, 무슨 라면을 먹겠다고. 라면을 먹고는 훌라후프를 돌린다. 날씬한데, 딴에는 불만인가 보다. 검은색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마트를 다녀왔는데, 훌라후프를 하다가 나를 빤히 본다. 다른 사람인 줄 안 것이다. 멍청하긴!


-나도 마스크 갖고 싶어요. 너무 멋있어요.


그래서 안 쓰는 거 하나 줬다. 구찌 동전 지갑이라도 받은 표정이다. 조금 있다가 덩치 남자가 등장. 이름은 데이비드. 사촌 오빠다. 온 가족이 모두 매달려서 숙소를 한다. 어엿하고 작은 호텔 한 채가 m55 호스텔과 붙어 있다. 그것도 이 집 거. 2층은 한참 공사 중이다. 드릴로 벽을 뚫는 소리가 거슬린다. 2층도 곧 호스텔이 될 것이다. 데이비드는 소고기 통조림과 사료를 반반씩 섞어서 바닥에 놓는다. 아키타의 붉은 혓바닥이 추르릅 추르릅 사료와 고기를 빨아들인다. 스팸 냄새가 훅 풍긴다. 빨래는 5라리(2천 원). 방 값이 18라리(7천4백 원)인 것에 비하면 비싼 느낌이지만 불만 없다. 무려 삼성 세탁기다. 삼성이나 LG 제품을 쓰는 집은 좀 사는 집이다. 온통 러시아 말이라, 데이비드가 세탁기를  돌려준다. 빨래를 널고 나가도 나가야지. 노트북을 편다. 독일 여자 한 명,  중국 남자 두 명. 아제르바이잔에서 왔다는 남자 두 명. 나머지는 러시아 여행자들. 무뚝뚝하고 근본 없는 러시아 여행자들과 있으면 신경 쓸 게 없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거나, 아예 영어를 못 하거나. 러시아 여행자들의  특징인데, 익숙해지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러시아에 가고 싶다. 친절함은 1도 없을  테지만, 평생 어울리고 싶은 이들이  살 것 같다. 아제르바이잔 청년이 떠나면서 과자 봉지를 싱크대에 놓고 갔다. 누가 다 집어갈까 봐 두 개 먹었다. 탐다르도 훌라후프를 하다 말고 과자를 집는다. 다시 훌라후프를 한다. 빨래가 끝났겠어. 역시나 바구니에 담겨있다. 남의 빨래 손대는 게 꺼려질 만도 한데... 빨래를 넌다. 빨래에 물기가 하나도 없다. 물 빨래만으로 건조까지 한 번에 되는 신제품인가? 온기가 전혀 없다. 그러니까 건조기를  돌린 것도 아니다. 탈수만으로도 물기를 99% 털어내다니. 삼성 전자는 얼마나 더 대단해지려고 이러지? 드론 자동차도 이미  만들어 놓고 시침 떼고 있을 거야. 빨래를 일곱 개째 널고는 깨달았다. 세탁기가 안 돌아갔다. 아예  안 돌아갔다. 셔츠의 땟국물을 보며 확신했다. 데이비드가 당황하더니 다시 빨래를 세탁기에 넣는다. 아키타와 데이비드 중 누가 더 멍청할까? 누가 더 비싼 한 끼를 먹을까? 데이비드가 세탁기에 꼭 붙어 있다. 굉장히 미안한 표정인데, 온통 진심이어서 보기에 좋다. 아침에 떨어져 나간 변기 뚜껑이 이제는 짱짱하게 붙어 있다. 뚜껑이 끝까지  안 올라가서,  꼽추 자세로 똥을 누어야 한다. 어째 똥은 더 잘 나오는 것도 같다. 열다섯 막내는 이름을 물었더니, 에드워드입니다. 열다섯 살입니다. 자판기처럼 나이까지 답한다. 까만색 고양이 스니커즈가 허벅지에 올라와서는 머리통으로  내 배를 밀쳐낸다. 발톱을 살점에 감추고, 배려와, 살점만으로 끼를 떤다. 개도, 고양이도, 이 집식구들도 교실 맨 뒷줄에서 잠만 자게 생겼다.


변기 물을 내리시오. 설거지를 제때 하세요. 밤 열 시 이후엔 조용히. 흔하디  흔한 잔소리 문구가 단 하나도 안 붙어 있다. 별의별 진상 손님이 드나드는 호스텔에서, 훌라후프를 돌리고, 세탁기는 또 못 돌린다. 고양이에겐 스니커즈란 근사한 이름을 붙여놓고, 숙소 이름은 m55로 퉁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떠오른다. 다들 멍청하게 아름답다.


침대마다 커튼이  달렸다. 대신 사물함이 없다. 여권과 귀중품을 늘 짊어지고 다니거나, 여행자, 청소부, 직원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일단 이틀을 묵는다. 이틀 후에도 도저히 못 옮길 것 같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웃음만 나는 곳이다. 테이블을 놔줘서 고맙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큰 영광이다.


PS 매일 글을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천천히, 끝까지 닿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우주입니다. 우주에 닿고자 합니다. 꿈이 크지요? 매일 한 권의 책이 더 팔리면 그걸로 족해요.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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