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치 좀 보며 다닙시다. 저도 조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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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곱 시 사십 분. 드라이기 소리에 눈을 떠요. 문을 쾅, 발걸음이 쿵쾅쿵쾅. 층간 소음으로 살인 충동 난다는 글이나 뉴스를 보면서도 공감 못하는 1인 여기 있어요. 웬만하면 쿨쿨 자거든요. 그러니까 도미토리 생활을 하죠. 쿠타이시에서는 덩치 러시아인이 코를 좀 골았나 봐요. 다들 한 소리 하더라고요. 너무 기쁜 거예요. 전 안 골았다는 얘기잖아요. 전 세상모르고 잤어요. 곰처럼 생긴 그 남자가 그렇게까지 코를 심하게 골았군요. 그런 제가 오늘은 번쩍 눈이 떠졌어요. 욕실을 굳이 열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더군요. 저는 공사 중인 줄 알았어요. 전기톱으로 나무 베는 줄 알았다니까요. 중국어가 나오는 동영상을 또 크게 틀어요. 중국 가족이 옆방에 새로 들어왔나 봐요. 중국 사람들! 저처럼 중국에 호감인 사람 없다는 거 아셔야 해요. 쓰촨 성 청두는 살고 싶은 도시이기도 해요. 그런 제가 방문을 열고는요. 드라이를 하려면 문은 좀 닫으라고, 영어로 화끈하게 꾸짖어요. 갑자기 등장한 저 때문에 당황들 하셨네요. 큰 딸과, 부모. 이렇게 셋이 여행 중인가 봐요. 큰 딸이 드라이기의 주범. 저도 제 스스로의 행동력에 놀랐어요. 다시 방으로 들어오고요. 그들은 또 새롭게 쿵쾅쿵쾅. 처음보다 소리가 약간 작아졌지만 여전히 부산스러워요. 안 그럴 수도 있는데 말이죠. 말 나온 김에 중국인 험담 좀 더 할게요. 청두의 도미토리에서 꼭두새벽에 일어난 중국 여자가 불을 켜더라고요. 다들 자고 있는데요. 짐을 싸기 시작하더라고요. 남들이 자건 말건요. 나는 짐을 싸겠다. 이것만 생각하더군요. 아, 이게 쏘시오 패스구나. 그 상황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 당당함을 보셔야 해요. 모든 사람들이 깨서는 뒤척뒤척, 끙끙 불쾌한 티를 내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저는 그때 2층 침대였는데요. 고개를 일부러 기린처럼 내 밀고는요. 귀신처럼 여자애를 봤어요. 공감능력이 떨어지니까, 좀 더 큰 자극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다행히 눈이 마주치고, 그녀가 약간 소름 돋아하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기린처럼 고개를 내밀고 봤어요. 그랬더니 소리가 잦아들고, 일단 짐을 들고나가더라고요. 저는 사디즘 있어요. 제가 괴로운 만큼 돌려주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실현되면 쾌감을 느껴요. 중국 친구들이 몰라서 그래요. 헤아리는 능력이 떨어져요. 그만큼 남에게도 관대하긴 해요. 웬만한 것들은 넘어가요.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고요. 남들이 그런 행동을 상당히 싫어한다는 걸 알기만 해도, 달라질 거예요. 개선될 거예요. 중국인은 남 눈치 좀 봐야 해요. 한국사람들과 은근 합이 잘 맞을 수 있어요. 조금씩만 서로를 이해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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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제 방이 없어졌어요. 이럴 수도 있군요. 제가 묵는 게스트 하우스는 Guledani라고 해요. 부킹닷컴에서 1인당 하루 만 원 정도예요. 이 가격에, 성수기 조지아 최고의 관광지에서 독방이라뇨? 흠잡을 게 거의 없는 숙소예요. 예약하고 나면 부킹닷컴에 주소가 나와요. 꼭 그걸로 찾으세요. 이름 검색해서 구글맵으로 찾으면 개고생 하십니다. 위치가 잘못 찍힌 거죠. 이 숙소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일곱. 방이 일곱 개거든요. 여덟 개일 수도 있어요. 방마다 침대가 두 개씩이고요. 대부분이 오늘 다 떠났어요. 매일 꽉꽉 차는 숙소라면 당연히 미리 연장을 했겠죠. 나갈 때 머문 만큼 방값 내면 되겠지 했죠. 주인도 따로 묻지도 않았고요. 나가라는 거예요. 단체 손님이 집을 통으로 전세 냈나 봐요. 까칠하게 나가라는 건 아니었고요. 매우 친절했어요. 다행히 옆집도 숙소래요. 휴, 한 시름 놨어요. 옆집 숙소 Nelly 게스트 하우스도 괜찮네요. 깨끗하고, 인터넷도 빠르고요. 오히려 더 조용하고요. 주방에서 식사를 하는 한국인 가족과 맞닥뜨려요. 한국인 같지만, 중국인일 수도 있겠다. 확신이 없었어요.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는, 목만 까딱해요.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했죠. 숙소에서 준비한 식사를 드시고 계시더군요. 누군 비싼 밥 먹고, 누군 라면 끓이고. 청승맞은 것 같아서요. 일단 나와요. 숙소 복도에 노트북을 하는데요. 식사가 끝난 가족이 방으로 들어가네요. 저를 지나쳐서요, 복도 끝 방을 열어요.
-열쇠로 잘 잠갔지?
딸이 그것부터 확인하더라고요. 저, 한국인이에요. 도둑 아니고요. 이렇게 말해야 할까요? 가족끼리 여행 오셨나 봐요? 이래야 할까요? 제가 수염도 무성하고, 머리도 이틀 째 안 감고.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왜, 당신이 하필 한국인이요? 이럴 까봐요. 제가 그냥 부끄러워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냥 도둑처럼 보이지만, 도둑이 아닌 상태로 지내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내일 저녁은 여기서 시켜 먹으려고요. 주인아주머니가 한국 손님들 먹고 남은 요리를 먹으라고 주시네요. 직접 만든 빵을 남은 수프에 꼭꼭 찍어 먹는데, 스펀지처럼 쫙쫙 빨아들이고는 여전히 쫄깃한 빵에 놀랐네요. 당당히 돈 내고 먹으렵니다. 내일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인사하려고요. 수염도 좀 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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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하면서 웨하스나 감자칩은 거의 매일 먹어요. 오독오독 씹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싸기도 싸잖아요. 한 끼를 감자칩으로 곧잘 때워요. 웨하스는 무게로 파는 걸 사요. 더 싸요. 따로 포장 없는 과자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무게로 팔아요. 나름 합리젹이죠. 메스티아는 뭐든 비싸요. 아예 딴 세상 물가라고 보시면 돼요. 과자만 봐도 두 배 이상 비싸요. 그래서 조금 먹어요. 제 몸엔 오히려 좋은 거니까, 큰 불만은 없어요. 과자를 샀더니요. 또 잔돈이 없대요. 궁금했어요. 어떻게 할 지. 내심 안 팔아. 이럴 줄 알았어요. 1kg에 7.5라리(3천 원)인데요. 갑자기 저울을 8.5라리로 맞추네요. 네가 잔돈을 미리 준비했어야지. 내가 거슬러줄 수 있는 잔돈에 맞춰서 돈을 더 받겠다. 우리라면요. 과자라도 몇 개 더 넣어주잖아요. 내 눈치만 슬금슬금 보면서 그렇게 눈금 조작을 하더라고요. 요즘 한국 젊은 친구들이 이런 거 딱 싫어하잖아요. 조지아도 좀 눈치 좀 봐야겠어요. 내 눈치 보는 거 말고, 세상 돌아가는 눈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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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란치 발리(구글맵에 한글로 쳐도 나와요)란 식당을 갔어요. 메스티아 맛집으로 소문 자자한 곳이죠. 저는 구운 버섯에 치즈가 올라간 걸 먹었어요. 버섯 구이. 이게 또 조지아 대표 음식이기도 해요. 딱 예상한 그 맛이긴 한데, 버섯만 구운 음식을 먹을 기회가 딱히 없어서인지 꽤 별미긴 해요. 치즈 올린 건 처음인데 너무 짜요. 치즈 안 올라간 걸로 드셔요. 카르초(kharcho)라는 음식도 시켰어요. 수프에 밥알이 들어간 건데요. 둘 다 그냥저냥이었어요. 다른 메뉴를 시켰으면 훨씬 괜찮았을 것 같아요. 팬에 구운 돼지고기를 많이들 추천하더라고요. 제가 음식 먹기 전에 들어온 여자 손님 둘은요. 물만 마시고 있네요. 손님도 딱 우리뿐이에요. 제가 음식 먹고, 사진 찍고 있는데도요. 안 나와요. 음식이요. 이십 분? 아니 삼십 분? 주문한 음식을 하기는 하는 걸까요? 정말 조지아 사람들 왜 이럴까요? 메스티아 최고 맛집이란 곳조차 이 지경이군요. 결국 두 여자가 못 참고 일어서요. 나가요. 돈만 계산하고요. 평화롭게요. 평화롭게 나가고 나서 깨달아요. 물 한 병만 시켰구나. 그리고 그걸 둘이 마셨구나. 대범함일까요? 진상일까요? 이 식당이 유명해요. 전망도 좋아요. 최소한 자릿값은 내야지. 그들이 지불한 돈은 2,3라리 정도. 천 원이 될랑 말랑. 어떠세요? 그거라도 낸 게 어디야인가요?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인가요? 둘 다 유럽 사람이었어요. 1유로 안 되는 돈으로 둘이서 그렇게 풍경을 즐기고 나간 거네요. 제 눈엔 진상이지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제가 해석한 상황이 이렇게까지 어긋났네요. 속상해요. 제가 생각하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도 다 틀리겠죠? 어리석음을 깨달았으니 오늘은 차라리 다행이죠. 내내 쥐뿔도 모르면서, 나의 시각과 편견을 믿고, 꾸짖고, 용서하겠죠? 책까지 내겠죠? 그나저나 어제, 오늘 메스티아의 날씨는 파랗고, 또렷하네요. 어리석은 게 아니라 천진한 거 아닐까요? 이 멋진 메스티아의 품에서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저, 메스티아에 반했어요. 반해버리고 말았어요. 반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은 내일 이야기할게요. 코카서스의 황홀이 그렇게 또 다가오다니요. 이 요망한 조지아가 저를 들었다 놨다.
To be continued
PS 매일 글을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입니다. 글로 세상과 연결을 꿈꿔요. 같이 호흡하고, 공감해요. 같이 조금씩 나아지고, 깨닫고 하자고요. 매일 한 권의 책이 더 팔리면 족합니다. 지금은 '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방콕 여행 필수품입니다. 제가 썼지만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