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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31. 2019

이건 말도 안 됩니다(정말 미친 풍경 주의)

메스티아에서 리프트를 타면 일어나는 일 - 코카서스 여덟 번째 황홀

- 오빠 리프트 꼭 타세요. 덜컹덜컹 위험해서 재미나요. 


바투미 사는 꼴통 한국인 부부요. 하루가 멀다 하고 메시지를 보내요. 바투미로 오래요. 하던 여행 때려치우고요. 매일 술 퍼먹여서 도망 나온 건데도요. 애들이 이리 눈치가 없다니까요. 그놈의 리프트. 안 그래도 타려고 했어요. 메스타이에서 트레킹을 포기한 이상 스키 리프트는 당연히 타야죠. 꼭대기까지 거저 데려다준다는데요. 기계로 쉽게 데려다주는 거, 자존심 강한 이들은 질색이죠. 전 자존심 안 강하거든요. 겨울에는 스키장인가 봐요(확실하지는 않아요). 이 웅장한 산세가 하얀색으로 변했을 때 어떤 풍경일까? 궁금하기는 하네요. 그런데 이놈의 리프트는 왜 이리 안 나오나요? 버스 터미널(Bus station) 쪽에 표지가 보여요. Rope way 어쩌고 쓰여있으니까, 스키 리프트 맞잖아요. 그냥 화살표만 딱. 그러면 근처여야죠. 경찰한테 물었더니 있대요. 이 방향 맞대요. 땡볕 7월에 정수리 지져가며 걸었죠. 있다는데 어쩌겠어요? 스키 리프트가 줄 따라 올라가는 모습이 멀리서라도 보여야 하잖아요. 안 보여요. 눈에 불을 켜면 더 안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아니, 대부분이 그래요. 마음 반쪽을 비워놔야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희망 없이 한 여름 먼지 길을 걷는 게 얼마나 가혹한지 모르시죠? 이놈의 조지아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중간에 표지만이라도 한두 개 달아두면 훨씬 마음 편할 텐데요. 오늘은 어쩐지 타기 글렀네요. 오후 네 시 반에 입장 종료라는데요. 세시 반을 지났네요. 그냥 돌아갈까? 내일 다시 올까? 포기가 잘 안 되는 경우는, 내 노력이 억울할 때죠. 


길을 잘못 들어선 게 분명해. 그 큰 리프트가 아예 안 보이잖아. 


다시 돌아가는 것도 큰 일이겠다 싶을 때 찾았어요. 표는 15라리(약 6천 원)고요. 아, 진짜 여기서도 잔돈 없냐네요. 50라리 지폐를 내밀었더니요. 조지아가 화폐, 동전을 충분히 발행하지 않나 봐요. 잔돈 품귀 현상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니까,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덜컹덜컹 리프트를 타요. 꼴통 부부가 왜 타라고 했는지 알겠어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더군요. 그물이라도 아래 깔려 있어야죠. 덜컹덜컹 안전바 하나 믿고 올라가요. 사지가 저절로 오그라들더군요. 풍경이야 좋죠. 이걸 카메라 꺼내서 찍어야 하나? 카메라나 핸드폰 떨어뜨리면요. 아,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그거 찾으려고 이 어마어마한 산을  다시 오르내려야 하는 거죠. 줄곧 오르막인 어마어마한 산에서 일단 내려서요. 다시 인간의 걸음으로 내려가서는요. 대충 이쯤이겠지. 그런 곳을 샅샅이 헤매겠죠. 그깟 폰이 뭐라고, 카메라가 뭐라고. 인생을 걸고 절망하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착하게 살겠어. 허접 다짐을 수천 번 하면서 하루를 날리겠죠. 결코 못 찾을 것 같지만, 확실하게 있다. 이게 절망을 멱살 잡고 흔들겠죠. 이 스키 리프트가 또 웃긴 게 중간에 갈아타요. 아예 내려서요.  오른쪽으로 한참을 가서요. 새로 입장해요. 추가로 돈을 더 내는 건 아니고요. 가지가지한다. 한 번에 끝까지 가는 리프트 왜 못 만들어? 순도 100% 땡볕을 한 시간 이상 걸어보세요. 다 싫어요. 풍경? 어제 이미 봤잖아요.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었어요. 올라가서 본다고 얼마나 달라질까요? 이런 리프트 한두 번 타 봐요? 흔들흔들 인천 월미도 바이킹 스릴 좀 느끼라는 거잖아요. 꼴통들이 왜 꼴통이겠어요? 사소한 거에 과하게 흥분하고, 진지한 건 또 하찮게 여기니까 꼴통인 거죠. 꼴통들 때문에 리프트에 오른 건 아니지만요. 고것들에게 짜증 내고 싶어요. 오빠, 죽을 것 같아서 너무 재미나지? 이러면서 자기네들끼리 낄낄댈 게 빤해요. 그래도 남는 게 사진이라고 손 덜덜 떨면서 갤럭시 노트로도 찍고, 카메라로도 찍어요. 죽는 공포보다 갤럭시 노트 추락이 더 끔찍하네요. 기계의 노예로군요. 통화나 하고 검색이나 하는 기계가 아니라, 내 온전한 일상과 역사, 소통이 다 이 안에 있으니까요. 휴게소 건물도 보이는군요. 그래요. 정상에 다 왔어요. 꼴통 부부가 저기서 커피도 꼭 한 잔 하래요. 높은 곳에서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이 받쳐 주니까요. 


장관이긴 하네요. 이상하긴 해요. 멀리서 다 봤던 풍경인데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180도 달라지네요. 크기만 달라진 게 아니라요. 완전히 다른 물체예요. 각각의 개체가 드디어 합체된 느낌이릴까요? 순간적으로 약간의 마비 상태가 돼요. 왜냐면 이런 느낌은 아니어야 하니까요. 그럴 리가 없는 풍경이니까요. 내 시신경은 몹시  당황하고 있어요. 쿵쾅쿵쾅 음악 소리도 제법 커요. DJ가 음악까지 틀어주는 곳이네요. 다들 맥주 한 병씩 들고요. 까딱까딱 몸을 흔들고 있네요. 아이스크림을 핥는 사람, 커피를 홀짝대는 사람, 주문하는 사람, 나르는 사람들이요. 풍경에 압도되지 않고, 어떻게든 음악을 솎아내서는요. 쉐킷쉐킷 중이에요. 뭔가요? 숨겨놓은 천국이 둑 터지듯이요. 댐이 무너진 듯이요. 모든 축복을 각각의 사람에게 내려주고 있어요.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만 겨우 올 수 있는 곳이네요. 다들 평범하고, 날라리 같지만 천사처럼 산 사람들이에요. 저도, 제가 모르는 엄청난 선행을 했나 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맥주를, 커피를, 아이스크림을 최고의 산들이 지켜보고 있어요. 그냥 맑은 날씨 정도면 충분한데, 구름 산들이 나를 둘러싸요. 지글지글 태양이 모든 거룩함의 가장 위에서 반짝여요. 꼴통들이 이런 비밀을 숨겨 놓고는, 그냥 가 봐. 커피나 마셔. 이렇게 약을 올렸군요. 아니 이 미친 메스티아는, 이런 곳에 리프트를 만들어 놓으면 어쩌나요? 지구의 소중한 자연을 함부로 훼손한 주제에, 저 같은 놈을 홀리기까지 해요? 4일짜리 트레킹을 했다면 여기를 못 왔겠죠? 이 풍경을 못 봤겠죠? 이제 메스티아는 다 봤네요. 4일간 개고생을 해도 이 풍경을 능가할 리가 없어요. 제가 이런저런 산들을 안 본 게 아니잖아요? 히말라야를 대표하는 파키스탄 훈자, 캐나다 대표 록키산, 남미 대표 토레스 델 파이네, 남미 최고봉 에콰도르 침보라소, 중앙아시아 대표 키르기스스탄, 세계 3대 협곡 중 하나인 중국 호도협. 써놓고 보니 제가 새삼 대단하네요. 촌놈이 그냥 나사 빠져서 감격하는 거 아니고요. 지금까지 풍경을 꼭꼭 씹어 섭취하고, 압도되는 중이잖아요. 이보다 더한 풍경은 없어요. 혹시 더 있을까 봐 열불이 나지만, 그게 4일 트레킹 중에 있을 것 같아 샘나지만요. 아뇨. 풍경이 저를 압도하면요. 그런 생각도 안 들어요. 절대적이니까요. 절대적인 감동에는 그냥 무릎만 꿇으면 돼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로 여기가 어디지? 내가 뭘 보고 있지? 이것만 묻게 되네요. 술 취한 조지아 친구들이 자꾸 달라붙어서 귀찮게 하네요. 술 먹자. 같이 내려가자. 내 친구랑 오늘 결혼식 올리자. 근본 없는 것들의 술주정까지 향기롭네요. 술주정뱅이들은 트빌리시에서 왔대요. 우리 조지아 많이 좋아해 달래요. 뜨끔해라. 내가 매일 뒷담화로 꽉꽉 채운 조지아 일기를 훔쳐봤나 봐요. 이제라도 잘 보이고 싶나 봐요. 진즉에 좀 그러지 그랬어. 남들 다 좋다는 조지아 왜 이리 흉을 봤냐고? 나만 왕따인 것 같으니까. 나한테만 불친절한 것 같으니까. 너희들이 트빌리시에서 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이렇게 살갑게 굴면, 그냥 백점이지. 술 취한 조지아 사람들을 더 만나야 했나? 아냐, 너희들도 트빌리시에서, 조지아에서 상위 1% 천사들이잖아. 아무나 못 오는 곳, 아무나 못 보는 풍경이잖아. 앞으로는 개처럼 살아도 돼. 이보다 더 한 상은 없으니까. 아니, 스위스는 꼭 가봐야겠다. 조지아를 스위스 저렴 버전이라고? 이곳 천사들을 능멸하는, 비싼 천국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어. 


그나저나 코카서스 여덟 번째 황홀은 또 이렇게 채워지네요. 열 개를 과연 채울 수 있을까 했는데요. 벌써 여덟 개네요. 제가 자극적인 연재 방식을 택하는 것도 아닌데요. 내일 아홉 번째의 황홀이 기다립니다. 말도 안 되는 매일매일이로군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매일매일일 수 있죠? 메스티아는 미쳤어요. 


근본 없는 조지아 술주정뱅이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 글이 매일 책 한 권 팔리는데 쓰이길 바랍니다.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독자 한 분, 한 분이 저의 우주입니다.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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