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당연히 타지, 안 타? 150라리. 6만 원 굳었다. 관광지 물가 참 막장이야. 구글맵에서 코룰디 호수(Koruldi)까지 거리가 8km. 1시간 47분 거리예요. 구글맵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지금 환율이니까 6만 원이지. 십만 원 내고 갔다 온 이도 있더군요. 2시간 못 걸어서 그 돈을 써요? 참 세상 돈 많은 사람 많군요. 네, 저는 공짜로 갑니다. 돈 버는 느낌이네요. 이미 전날 리프트 탔어요. 근 몇 년 최고의 풍경이었죠. 메스티아에서 뽕 제대로 뽑고 가요. 여한은 없고요. 메스티아에 대한 애정이 남았어요. 볼 수 있는 만큼 봐주려고요. 다음에 오는 이들에게 정보 하나라도 더 주려고요. 착한 마음먹으니까요. 보세요. 태워 준다잖아요. 자기 돈 내고 다니는 영업용 차들 뿐인데요. 이렇게 천사가 태워주기도 하잖아요. 알아요.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거. 얼굴 표정 하나도 안 건드리고, 돈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죠. 몰라요. 탈래요. 흙길이 좀 재미없더라고요. 남들은 큰돈 냈고, 저는 안 냈죠. 이런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샬바와 타마다. 부부고요. 남편 샬바는 은행에서, 아내 타마다는 심리 연구소에서 일해요. 영어가 유창해요. 가방끈이 기니까 추잡하게 손은 안 벌릴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세상 등쳐먹는 가방 끈 긴 사람들 많죠. 등짝에 가난, 지질을 문신처럼 새긴 사내를 표적으로 삼을 만큼 멍청할 리가요. 이 분홍 셔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선물 받았어요. 6년도 더 된 셔츠네요. 형 친구가 국산이라며 주더라고요. 형이나 친구, 둘 다 옷 만드는 일을 하는데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공장에서 찍은 옷들 뿐이거든요. 진짜 한국 옷이 귀한 거예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분홍분홍 국산 셔츠를 선물로 받았어요. 늘어나지가 않아요. 물도 안 빠져요. 십 년은 입겠어요.
"탈래? 탈래?"
남편 살바가 길 가는 사람들마다 물어요. 아이고, 천사 아저씨. 알겠으니까, 이젠 그만. 이 순진한 양반아. 다 나 같은 줄 알아? 걷는 기쁨이란 게 있는 거요. 이런 특혜는 저만 주세요. 저만 관심받고 싶다고요. 그런데 왜 가도 가도 호수가 안 보이죠? 차를 탈 때쯤 다 왔겠거니 했거든요. 그때부터 시작인 거예요. 찻길이면서 트레킹 코스라 두배로 짜증 나는 그런 길이 끝이 안 나요. 아, 어째요. 삼십 분 전에 한국 아가씨 두 명한테요. 거의 다 왔다고 했어요. 안 쉬면 한 시간, 쉬면 세 시간이라고 했다고요. 안 쉬어야. 독이 바짝 올라야 세 시간이네요. 먹을 거 하나 없이 탈래탈래 걷는 아가씨들이었어요. 나름 과시하고 싶어 성큼성큼 앞서 갔어요. 가방 안에 토마토랑 바나나는요. 기어 오다시피 오는 아가씨들에게 건넬 참이었죠. 아이고, 그 아가씨들 빨리 다시 내려가야 해요. 알고 보니까요. 이게 총 여덟, 아홉 시간 트레킹 코스더라고요. 미친 구글맵이 평면 거리만 딱 계산한 거였어요. 여행 좀 다닌 사람들은 그래서 맵스미(maps.me) 애플리케이션을 써요. 전 여행 좀 다녔지만, 건방지고, 무능해서요. 맵스미를 잘 안 써요. 잘 못 읽겠더라고요. 자주 써봐야 손에 익을 텐데요. 안 써서, 더 어럽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정상이 저만치 보여요. 우쉬바 산이라고요. 메스티아를 대표하는 설산이에요. 다들 설산 이름도 다 외우고, 뾰족 봉우리만 보면 환호하잖아요. 전 그냥 이 뾰족, 저 뾰족. 그냥 뾰족이에요. 저쪽 거 하나 보면 이쪽 뾰족 안 봐도 되는. 그따위 인간입니다. 1.5km 정도를 더 걸어야 코룰디 호수래요. 지금부터는 걸어야 해요. 차로 못간답니다. 여기까지 차로 오는데도요. 길이 지랄 맞으니까요. 어질해요. 몽롱해요. 거기에 날파리인지, 벌인지가 엄청 날아다녀요. 또, 또! 벌레 얘기에 맘 접으려고 하신다. 그러지 말고, 바르는 모기 방지 크림 가져가요. 물, 바나나도 챙기고요. 이 이야기 끝까지 들어나 보시라고요. 일단 봉우리가 보이고요. 길이 많이 험하지 않아요. 헐떡거려야 하지만요. 충분히 걸을만해요. 그래요. 전날 리프트에서 봤던 건너편 풍경이죠. 웅장해요. 아름다워요. 하지만 리프트 타면서 고산지대의 풍경, 드라마틱한 변화 봤잖아요. 거기를 굳이 가는 거예요. 강조하지만 메스티아를 사랑하게 됐으니까요. 기대는 정말 1도 없었어요. 오죽하면 구글맵 koruldi Lakes를 검색하면 댓글과 평점이 없을까요? 겨울에 가도 돼요? 질문은 하나 있더군요. 여름에 먼지 구덩이 길이에요. 겨울엔 안 가서 몰라욤. 이런 성의 가득한 게젓갈 답은 있더군요. 남의 복장 터지는 게 낙인가 봐요. 정신 이상한 사람 하나 다녀왔네요. 그 사람조차 대답 꼬락서니 보면 견적 나오죠. 사랑 없이는 시작 못하죠. 엄두 못 내죠.
요망한 코룰디 호수. 엄청 맑아 보인다, 너
풍경 앞에서요. 굉장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왼쪽으로는 빽빽한 녹지의 덩치 산들이 펼쳐져요. 사이사이 꽃들이 색을 뿌리고요. 오른쪽으로는 지구 킹카들로만 구성된 설산이 어깨뽕 넣고 노려봐요. 같은 장소에서 두 대륙의 산이 보여요. 그 흔한 호들갑이 왜 없는 거죠? 저만 몰랐던 건가요? 사람들 왜 그래요? 좋은 거 같이 보는 게 그렇게들 싫었어요? 의도했죠? 철저히 감춘 거죠? 여덟 시간이 걸려도, 아홉 시간이 걸려도 와야죠. 정상으로 다가가니까요. 꾀죄죄한 코룰디 호수 나와요. 차라리 웅덩이예요. 오늘 산행의 유일한 결점일 줄 알았죠? 흙탕물 웅덩이가 하늘을 제대로 반사해요. 윤기 좌르르 말들이랑 소가 번갈아서 저를 지나치고요. 잘 훈련된 개가 말들을 이리저리 몰아요. 흙탕물에서 왜 저 인간들은 수영을 할까요? 홀리면 아이가 되잖아요. 뭐든 더 누리고 싶잖아요. 구름을 그렇게 생생하게 비췄으니, 뛰어들면, 나는 기분도 들겠지. 그런 마음으로 멍청한 청춘 몇이 수영까지 해요.
-민우, 조지아에 더 많은 한국 사람이 와야 해. 나의 사랑 조지아를 널리 알려줘.
살바가 뜬금 비장해지네요. 아니, 조지아 관광청 관계자 여러분. 제가 험담을 주야장천 했나요? 한 명씩 작정하고 보내시네요. 안 좋을 때는 험담도 해야죠. 칭찬도 많이 했어요. 이런 풍경이 있다면, 진즉에 꼬리 내렸죠. 알았나요? 짝퉁 스위스라면서요? 이 풍경은 그냥 최고예요. 십만 원 내고 어떻게든 여길 왔던 그들이 승자였어요. 여기까지 와서 몇만 원 아끼려고 못 보신 분들은, 이글이 통증임을 알아요. 그래도 알려야죠. 조지아 관광청 스파이가 저렇게 은행원인 척 하잖아요. 복숭아로 만든 독한 술 차차를 먹이잖아요. 날씨까지 CG로 조작하잖아요. 7월 말 저는 이곳에 왔어요. 날씨 부침이 심한 곳이니까요. 7,8월을 우선 고민해 주세요. 그리고 이곳에 어떻게든 오셔서 남은 생을 귀하게 쓰세요. 한두 번은 더 이런 풍경과 마주하고 싶다. 그런 기대로 사세요. 죽을 때 우선 떠올려야 할 풍경이니까요. 각막에 깊게, 깊게 새기시고요. 맞아요. 아홉 번째 황홀. 코룰디 호수가 아홉 번째 황홀입니다. 자제 못해요. 안 해요. 더 대단한 게 기다릴까요? 그럴 리 없죠. 혹시 그런 반전이라면, 그건 기적이죠. 그것대로 대환영이고요. 헐떡대는 제가 비명도 섞어 지르는 걸 보셨어야 하는데. 모든 짐을 다 내려두고, 오직 눈 앞의 기쁨에만 몰입하는 남자를 보셨어야만 했는데요. 저는 작고 작아져서, 파묻히고, 녹았습니다.
코룰디 호수로 오세요.
PS1 매일 글을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고요. 지금 이마에 열이 좀 있네요. 몸이 쑤셔서요 못 쓸 것 같은데 썼어요. 진짜 오체투지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매일 책 한 권이 더 팔리겠지. 작은 소망으로 씁니다. 반 권도 좋아요. 하하.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PS2 꼴통 부부 정정 요청이 들어왔어요. 자기네를 그렇게 묘사하면 누가 숙소 예약을 하겠냐고요. 제가 제 글 재미만 생각했어요. 실제로 요즘 조지아 관광이 말이 아니에요. 러시아랑 사이가 틀어지면서요. 그런 와중에도 예약으로 꽉 찬 방을 세 개나 운영하는 친구들이거든요. 진짜 손님을 가족처럼 생각해요. 아침 일찍 체크인을 허락하고, 졸면서 손님 맞았던, 그런 친구들이거든요. 그러니까요. 바투미에서 좋은 숙소, 깔끔한 숙소 찾을 때도 이 친구들을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