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파노라마라는 식당 겸 카페에 와 있어요. 세 시간 후면 떠나요. 메스티아와 이별이네요. 작정하고 맛난 걸 먹어야겠다. 그래서 왔어요. 어제 보니 줄이 길더라고요. 허허, 웬걸요. 손님이 저뿐인 거예요. 영업 안 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일단 맛은 없네요. 지금까지 먹었던 곳 중 가장 비싸면서요. 그래도 청춘의 한때 같은 구름이 맹렬하네요. 드릴로 벽을 뚫는 소리 때문에, 머리가 다 지끈지끈해요. 토요일인데도 많은 건물이 지어지고 있어요. 몇 년 후엔 얼마나 더 바뀌어 있을까요? 파노라마 식당이 지어질 때도, 누군가는 인상을 쓰며 옆 식당에서 밥을 먹었을 거예요. 바람이 시원해요. 다시 오겠지만요. 다시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려고요. 이 순간이 그래야 특별해지니까요.
며칠을 묵었더라? 5일을 묵었네요. 하루 25라리. 곱하기 5, 125라리. 저녁 식사 20라리. 세 번 먹었으니까 곱하기 3, 60라리. 총 185라리. 그냥 200라리 드리지 뭐. 공짜로 수프와 빵을 먹여줬는데요. 15라리 드려야죠. 그깟 6천 원.
-160라리예요. 하루 20라리니까 곱하기 5, 100라리. 저녁 식사 60라리 합쳐서 160라리요.
냉큼 40라리를 받아요. 15라리면 드리려고 했는데요. 40라리를 어떻게 포기해요? 애초에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 될 것을요. 저는 심장이 벌렁벌렁하네요. 내 소중한 40라리. 악착같이 챙긴 40라리로 파노라마라는 식당에 왔어요. 먼저 묵었던 숙소에서 분명 25라리랬는데요. 부킹닷컴(Booking.com)에서도 1박에 만 원으로 떠요. 5일이나 머물러서일까요? 특별할인을 해준 걸까요? 제가 이메일 주소를 입수했어요. nellyjapara@gmail.com. 여러분도 이메일로 예약을 해보세요. 1박에 20라리 가능한지 여쭤볼 수는 있잖아요(인당 가격이요). 25라리여도요. 묵으세요. 마음이 편해지는 숙소였어요. 별채여서 더 편했어요. 너무 쓸고 닦는 주인이 곁에 있으면 숨이 막히더라고요. 집주인 넬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술을 부려요. 어머니와 언니랑요. 많이 많이 문의해 주세요. 40라리 챙긴 저는 이렇게 빚을 갚을게요. 화장실 두 개인데 하나가 안에서 안 잠겨서요. 제가 신신당부해 뒀어요. 고쳐놓을 거예요. 샤워기 수압은 비실비실해요. 온수는 잘 나오지만요. 매일 저녁만 이틀 혹은 삼 일 챙겨 드셔도요. 큰돈 버신 거예요. 지금 파노라마 식당에서 30라리 넘게 시켰는데 반의반의 반도 못 미쳐요. 풍경 값이죠. 아깝진 않지만요. 아니 아까워요. 조금은요.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두 번, 세 번이라도 올라와야죠.
어제는 리프트를 한 번 더 탔어요. 빙하를 보러 갈까?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겠더라고요. 안 갔어요. 제가 빙하를 안 본 사람도 아니고요. 찰라디 빙하는 빙하 자체는 썩 대단하지는 않더라고요. 넬리가 가지 말라고도 했고요. 그래서 리프트를 탔어요. 하츠벨리 리프트라고 해요. 겨울엔 스키장이 되는 거죠. 여기 말고요. 텟눌디(Tetnuldi) 스키장도 있대요. 스키 슬로프가 엄청 길대요. 스키 고수라면요. 조지아 스키장들을 검색해 보세요. 인생 스키장이 조지아에 있을지 누가 아나요. 하츠벨리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가요. 한국 사람들을 봐요. 여자 세 명이었는데요. 한 명은 이란만 세 번 다녀오고요. 시리아도 다녀왔대요. 저는 명함도 못 내미는 여행 고수더라고요. 갑자기 리프트가 작동을 안 해요. 내려가지 못해요. 묶였어요. 기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넘어가야 하는 여자 일행은 까딱하면 기차를 놓치게 생겼어요. 그래도 침착함을 잃지 않네요. 여행 짬밥이 이런 거군요. 버스가 올라올 거래요. 우리를 아래까지 데려다줄 버스요. 오, 조지아가 웬일로 이리 빠릿빠릿하죠? 이렇게 신속하게 대처하는 나라였던가요? 버스가 온다는 곳으로 다들 뛰기 시작해요. 저도 덩달아 뒤를 쫓고요. 그때 우리 뒤를 쫓는 한 명의 남자가 또 있어요. 한국 사람이겠구나 직감했죠.
-TV에 나오신 분이죠?
한참 전부터 저를 알아본 것 같아요. 같이 후송 버스를 타고요. 무사히 내려와요. 여자 일행은 기차를 타야해서요. 먼저 앞서가고요. 남자와 저만 남아요. 제 책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를 다 읽은 50대 선생님이었어요. 최근에 방콕 맛집책까지 나온 걸 알고 있더라고요.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았대요. 퇴직 후에는 아내와 더 실컷 여행 다니겠대요.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 여행을 하고 싶대요. 더 저렴하게요. 서둘러 기차를 타고 떠났던 여자 일행요. 그들과 말문이 터졌던 순간을 생각해요. 짐작일뿐이지만, 저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살갑게 여행 오셨어요? 딱 한 마디면 되는데 그게 안 나오더라고요. 책 읽는 척을 해요. 고독을 즐기는 외로운 고라니인 척해요.
-혹시 한국 분이세요? 곧 폭우가 쏟아진대요. 빨리 내려가야 한대요.
일행 중 한 명이 제게 알려줘요. 산 위의 근사한 카페도 서둘러 문을 닫더라고요. 재난영화처럼 모두 빠져나와서는요. 리프트를 기다려요. 이란에 다녀온 이야기, 시리아, 파키스탄 이야기, 십년 전 조지아 이야기를 들려줘요. 여행으로 까맣게 탄 진짜 고수의 이야기를 경청해요. 재난으로 대피하라면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뭔가요? 올라오는 사람들은 폭우에 발이 묶여도 되나 봐요? 리프트를 빨리 타라더니요. 또 갑자기 못 타게 해요. 문제가 생겼나 봐요. 그래서 결국 후송 버스가 우리를 실어날라요. 온다던 폭우는 또 안 오고요. 닫힌 카페는 다시 열까요? 이미 올라온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은 또 뭐가 되나요? 뒤죽박죽. 조지아가 이렇답니다. 마지막 날 멍 때리려던 내 계획은 그렇게 무너졌네요. 나와 대화를 나눈 한국 여행자들요. 큰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이 뒤죽박죽은 우리의 대화를 위한 작은 기적이었던 거죠. 우리의 거리는 콘크리트처럼 두꺼웠지만, 순식간에 구멍이 뚫렸잖아요. 대화의 물꼬가 터졌잖아요. 모든 인연은 끓는 지점이 있고, 끓을 때 닿죠. 저도 더 끓어야 해요. 닿을 수 있을 때까지요. 장염은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어요. 놀라운 속도로요. 메스티아 꿀로 만든 꿀 생강차가 나를 살렸어요. 저는 어찌 또 이리 현명할까요? 늘 휘청이는 약해빠짐을 저는 반짝임으로 해석해요. 뚝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이들이 부럽지만, 약해서 감지되는 모든 것도 소중하죠. 마지막의 마지막이네요. 이제 저는 미니버스를 타고 트빌리시로 가요. 죽디디라는 곳에서 기차표를 끊어야 해요. 표는 없지만요. 가서 끊어야 하지만요. 어떻게든 되겠죠. 어떻게든 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떻게든 될 거고, 어떻게든 될 때까지가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기도 해요.
파노라마 카페에서 직은 맥주 샷. 맛 없어도 용서하마.
PS 매일 일기를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고요. 오체투지로 세상의 모든 인연과 만나고 싶어요. 제 책이 읽히고 싶다는 거죠. 매일 한 권의 책이 더 팔리면, 하나의 우주와 더 만나는 거라 여겨요. 요즘은요.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방콕 여행이 두 배 이상 즐거워지는 책이니까요, 방콕 비행기에 꼭 싣고 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