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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06. 2019

술 취한 글쟁이의 황홀한 술주정

저 핵인싸 됐어요. 헤헤 

-응, 나 작가야 


없는 말 하는 거 아니잖아요? 가난뱅이 글쟁이가 유일하게 기 펴는 순간이죠. writer라고 또박또박 발음하면요. 공기가 달라져요. 시선이 확 바뀌어 버리죠. 특히 서양 친구들요. 자기를 구원해 줄 종교라도 만난 듯 군다니까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요. 관심 종자니까요. 내게 향하는 관심이야 좋죠. 싫은 이유는요. 불공평하다 싶은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게임판을 초토화하는 느낌이랄까요? 아슬아슬해야 재미죠. 작가라고 말할까? 말까? 살짝 고민된다니까요. 믿어 주세요. 어쨌든 다들 제 얘기만 듣고 싶어 해요. 딴 이야기지만요. 여행 중에 핵인싸 되고 싶으시죠? 관심, 사랑 다 받고 싶으시죠? 예쁜 명함 만들어가세요. 자기 얼굴 사진 들어간 걸로요. 짧은 시간, 쭈뼛쭈뼛. 그 어색함을 단번에 누를 수 있어요. 조금은 웃기고, 천진한 사진으로 명함 만들어 가세요. 꼭이요. 니콜라, 다리안 커플은 하필 기차 제 옆 칸이더군요. 브루스는요. 아예 다른 차량이고요. 이것들이요. 기차 안에서도요. 조잘조잘 말이 어찌나 많은지요. 물론 이 녀석들은 제가 더 말이 많다고 하겠죠? 제가 출연한 세계테마기행을 일부러 보여준 건 아니고요. 폰으로 유튜브 이것저것 같이 보다가요. 재미로 보여줬어요. 잘난 척하려고 한 거 절대 아니라니까요. 제가 출연하면 시청률도 괜찮게 나오고요. 재방송도 자주 하잖아요. 그런 이야기 하나도 안 했다니까요. 애초에 기차에서 잠깐 만나고 헤어질 사이잖아요. 


이 아이들은 트빌리시에서 하루 잘 거고요. 저는 곧장 카즈베기로 갈 거니까요. 어허. 추적추적 비가 웬 말인가요? 여섯 시 반에 도착한 트빌리시는 비로군요. 비를 맞아가며 숙소를 찾아다닐 아이들이 눈에 밟히네요. 파브리카(Fabrika) 호스텔을 추천했죠. 제가 머물던 곳이기도 하고요. 가만, 파브리카? 일요일 아침 일곱 시에 트빌리시에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네요. 카즈베기는 트빌리시에서 두 시간 반이면 가요. 더 일찍 카즈베기에 도착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트레킹을 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해서요. 일찍 도착해도 숙소에 있어야 해요. 몇 시간 늦게 도착한다고 숙소에서 뒹굴뒹굴 못하는 거 아니잖아요? 19라리(8천 원) 근사한 뷔페로 배 든든히 채우고 갈래요. 제가 이 아이들 밥값은 못 내줘도요. 택시비는 내줄래요. 4 라라리(천 6백 원)로 생색낼 수 있는데, 그걸 왜 놓쳐요. 저, 똥 멍청이 아니거든요. 


그래요. 그 아침 먹다가요. 저도 그냥 하루 더 있기로 해요. 같이 떠나기로 해요. 이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거 절대 아니고요. 너무 저를 삼촌처럼 따르니까요. 흥이 나서요. 제 존재가 이렇게 반갑다니요. 네, 저 핵인싸 됐어요. 저 대학교 때요? 말하면 입만 아프죠. 심지어 초등학교(그래요, 국민학교요) 때도요. 제가 나불대면요. 교실 반대쪽 끝 아이까지 제 이야기 들으려고요. 일부러 다가올 정도였다니까요. 자랑한 김에 확 추잡해지자면, 대학교 1학년 때요. 우연히 초등학교 단짝을 만나요.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거죠. 그 녀석 말이요. 제가 단짝 친구였던 게 너무 고마웠대요. 박민우의 단짝 친구라니. 그렇게 자랑스럽고, 고마울 수 없었대요. 에헴. 그렇게 살다가요. 이젠 처박혀서 글만 쓰잖아요. 고요함이 제 나이에 맞는 단계라고 여겼잖아요. 미리 자포자기할 필요 없었나 봐요. 보세요. 세바스찬과 제이콥까지요. 카즈베기로 가는 버스에서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요. 같이 다니자네요. 이건 분명 제가 잘 나서예요. 물론 니콜라는 예쁘고, 다리안은 잘 생겼죠. 너무 예쁘고, 잘 생긴 아이들 은근 인기 없어요. 만만함의 부재랄까요? 훅 다가가기가 만만치 않죠. 제가 얼마나 편하겠어요? 심지어 나이도 많잖아요. 벨기에에서요. 무역회사 영업일을 하는 세바스찬은요. 한국 작가와 여행 중이라면서요. 어머니께 인증 사진까지 다 보내는군요. 어머니가 너무 신기하다며, 너무 놀랍다며 흥분하시네요. 독일에서 온 제이콥은요. 우리 중에 가장 얌전해요. 고등학생처럼 보이지만 스물셋 어엿한 대학생이고요. 득도한듯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청년이네요. 같이 게르게티 교회를 보기 위해서 올라요. 말씀드렸죠? 제 조지아 여행의 이유요. 산에 둘러싸인 그윽한 게르게티 교회를 보고 싶었다고요. 날씨가 너무 흐려요. 구름이 짙게 깔려서요. 제가 보고 싶었던 그 풍경은 아니네요. 그게 무슨 상관이죠? 풍경 그깟 거 눈에도 안 들어와요. 어울리는 재미에 정신줄을 놔버렸네요.


 저녁밥을 먹는데요.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또 독일에서 온 제니와 데보라가요. 합석하고 싶대요. 한 테이블 건너서 제 이야기를 듣는데요. 너무 힘들대요. 제대로 듣고 싶대요. 2019년 8월 5일. 그냥 제 생일 할래요. 다시 태어났어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서 술퍼 마시고, 깔깔대고, 아침 되면 편의점 라면으로 해장하던 93학번 박민우 안 부러워요. 너무도 그립고, 절대 닿을 수 없는 그 순간이 카즈베기에서 재현되고 있어요. 이게 기적이죠. 이게 황홀이죠. 잊지 않으셨죠? 코카서스에서 열 개의 황홀을 찾을 거라고요. 열 개면 족하다고요. 열 개나 찾을 수 있을까 했어요. 지금의 황홀은요. 제 상상을 뛰어넘는 황홀이에요. 술에 취했지만요. 깬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저는 훨훨 구름 위를 걸어요. 가장 작은 것들로, 충분해지는 삶. 그 기적을 제가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어요. 여러분 사랑해요. 사랑받았으니까요. 사랑할게요. 술 깨면 후회할 말이네요. 그래서 취한 김에요. 고백해요. 사랑해요. 사랑받으실만하니까요. 얼른 받으세요. 10% 더 행복해져서요. 하루를 기쁘게 마무리하셔요. 저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글 쓰느라, 죽겠네요. 컵라면도 없는데 뭘 그리 퍼마셨을까요? 조금만 더 잘게요. 제 텐트로 들어가서요. 저, 텐트에서 잤어요. 헤헤!


PS 매일 글을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닿고 싶어서입니다. 독자와의 연결이, 저를 쓰게 합니다. 더 많은 분들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방콕 여행 중이세요? 무조건 이 책 가지고 가셔야 해요. 가까운 도서관에 제 책들을 신청해 주실래요? 미리미리 감사드려요.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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