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만난 역대급 비주얼 커플

길에서 동행을 만나는 방법(무근본 외모 칭찬하기)

by 박민우
20190805_073302.jpg 니콜라 다리안


인터넷으로 왜 기차 예매가 안 되는 걸까요? 자리까지 고르고, 신용카드 번호 일일이 다 쳤어요. 마지막 단계에서 넘어가지를 않네요. 신한카드가 조지아에서 인터넷 결제 자체를 불허하나 봐요. 믿음직하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하네요. 이제 카즈베기만 남았어요. 조지아로 오세요. 나를 꼬드겼던 풍경이 거기에 있죠. 교회 건물 하나가 아담해 보이는 산 위에 얹어져 있어요. 그 뒤로는 거인 산이 집어삼킬 듯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죠. 아슬아슬 교회는 집어삼켜지지 않고, 맹랑하게, 또렷하더군요. 마르슈카는 그만 타고 싶어요. 조지아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죠. 20명 정도 탈 수 있는 미니 버스요. 승합차라고도 하죠. 운 좋으면 벤츠고요. 운 안 좋으면 고물차고요. 대부분의 운전기사는 반쯤 미쳐서는요. 고갯길을, 비포장 길을, 코너를 함부로 질주하죠.


-제발, 천천히 좀 달려줘요.


스페인 마드리에서 온 여자가 못 참고 소리를 질러요. 속도가 조금 느려지네요. 아, 그러니까요. 마르슈카는 못 타겠어요. 그래서 죽디디로 가는 거고요. 죽디디에서 기차를 타야 해요. 메스티아에서 차로 세 시간? 세 시간 반 정도 걸려요. 기차를 못 타면, 죽디디에 갈 필요가 없어요. 메스티아에도 트빌리시로 가는 마르슈카는 있다고요. 제발 있어야 해요. 꼭 있어야 해요. 어? 표가 있네요. 그것도 1등석으로요. 34라리(1만 4천 원) 요. 2등석은 21라리(8천6백 원)고요. 8시간 기차라고요. 기차면서, 침대이기도 해요. 5천 원 아끼자고 후진 침대를 택하실 건가요? 제가 똥멍청이라고 하면 안 되겠죠? 1등석 침대에서 편히, 안락하게 갈 수 있게 됐어요. 이것도 웃긴 게요. 인터넷에선 아예 표가 없었어요. 1등석은요. 더 웃긴 건요. 소리 지른 스페인 아가씨요. 그 아가씨는 트빌리시 역에서 예매를 했어요. 그때도 1등석 표가 없었대요. 당일 예매를 한 저는, 1등석 표를 손에 쥐어요. 자, 여러분! 게으르세요. 대책 없이 사세요. 허둥댈 일이야 많겠죠. 최소한 억울하지는 않잖아요? 이런 날도 있잖아요? 기차는 밤 열 시 십오 분에 떠나요. 밥을 먹어야죠. 브루스, 니콜라, 다리안. 얘네들과 밥을 먹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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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_210507.jpg 박민우, 브루스, 다리안

브루스는요. 중국 구이린에서 온 애완동물 미용샵 사장이고요. 다리안과 니콜라는 라트비아 의대생이고요. 독일인이에요. 여행이란 게 늘 인연의 연속이지만, 항상 그렇지만도 않아요. 내내 혼자일 때도 많죠. 요즘엔 정말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붙네요. 제 치명적 매력은, 숨겨도, 숨겨지지가 않나 봐요. 얘네들과 한 시간 째 헤매고 있어요. 밥 하나 먹자고요. 배 고파서 쓰러지겠다는 니콜라가요. 말을 바꾸네요. 아무데서나 먹자는 애가 인터넷을 검색하면 어쩌죠? 더 맛있는 곳이 있으면 배가 고파도 1km는 걸을 수 있대요. 저는 캐리어를 굴린다고요. 자기네 배낭이랑 같나요? 포장 안 된 길일 때는 찻길로도 갔다가요. 위험하다 싶을 땐 다시 인도로 올라와요. 또 올라오면 갑자기 자갈길이고요. 메스티아에서 꿀도 두 병 샀어요. 꿀 들어간 캐리어를 끌고, 들고, 다시 내리면서 1km를 걸었어요. 정확히는 1.2km요. 그런데 왠걸요. 거기에 있어야 할 맛집은 결혼식 피로연 중이더군요. 하객들이 일제히 일어나서요. 앉아라. 먹어라. 난리도 아니네요. 세계테마기행에서 보면 출연자가 잘도 얻어먹고 다니잖아요. 그것보다 1.5배, 아니 2배 이상의 환대였죠. 중국인과 한국인, 독일인을 동시에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인 사람들뿐이더군요.


-빨리 나가자. 여기선 못 먹어.


야, 니콜라! 야, 다리안. 왜 못 먹어? 공짜 싫어? 이 진수성찬을? 지금 주방에서 통돼지 구이가 나오는 게 안 보여? 니콜라와 다리안이 단호하더라고요. 왜 세상 사람들은 저처럼 거지 같지 않을까요? 좀 경황이 없어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몰라도요. 공짜잖아요. 조지아 잔치 음식을 어디에서 또 먹어보겠어요? 브루스도 싫대요. 메스티아에서 트레킹을 하면서요. 조지아 치즈에 질려 버렸대요. 조지아 음식 다 싫대요. 그래요. 유럽 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는 조지아 치즈는요. 근본 없이 짜요. 저는 왜 낯선 음식에 귀신같이 적응할까요?


-여기서 750미터만 가면 식당이 하나 더 있어

-너네만 좋다면, 나는 오케이.


배가 고프다는 말을 가장 자주 하는 니콜라는, 왜 또 몽니를 부리는 걸까요? 너네만 좋다면, 나는 오케이. 이 무책임한 말은 누구 입에서 나온 걸까요? 네, 제 입에서 나왔어요. 캐리어 안의 꿀들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무겁네요. 위장에 담아 갈 순 없을까요? 좋다고 따라나서는 저는 또 뭘까요? 무리에서 저만 튀고 싶지 않거든요. 저 때문에 한 끼의 설렘이 사라져서야 되겠어요? 어쩌자고 이 아이들과 함께일까요? 브루스는요. 메스티아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제가 말을 걸었죠. 혼자 여행하는 동양인을 간만에 봐서요. 어디서 왔냐고 물어요. 그렇게 몇 마디 나눴죠. 미니 버스에서 내려 기차역으로 가면서요. 기차표가 없는 사람들끼리 한 패가 되죠. 사실은 경쟁자죠. 표가 없을 수도 있잖아요. 누군가는 기차를 못 탈 수도 있잖아요. 다들 내색 안 하는 척 발걸음이 빨라졌죠. 다행히 모두에게 1등석의 표가 주어졌어요.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까요. 니콜라와 다리안의 외모가 눈에 들어와요.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인 100명을 뽑으면 그 안에 들겠어요. 들고도 남겠어요. 전형적인 금발 미인 니콜라, 구릿빛 다리안.


-너네 정말 아름답다.


전 어쩜 이리 철이 없을까요? 마흔일곱, 내일모레 오십인 제가요. 이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요. 한심하게 외모 칭찬이나 하고 있어요. 확실히 나이를 먹으니까요. 뻔뻔해지네요. 지하철에서 어르신들이 눈만 마주치면 서로 호구조사를 하는 것처럼요. 꽃이 예쁘듯이요. 강아지가 예쁘듯이요. 예쁘니까, 예쁘다고 말하게 돼요. 그래서 친해져 버렸어요. 저의 주책을 탓해야죠. 이렇게 먹는 거에 집요한 것들인 줄 알았나요? 힘들기는 했지만요. 또, 재밌기도 했어요. 야, 진짜 잘 생겼다. 진짜 예쁘다. 볼 때마다 감탄하면서요. 의대생에 완벽한 외모. 이런 친구들에겐 어떤 고민이 있을까요? 삶은 언뜻 불공평해 보이지만, 끝내 모두 죽는다는, 거대한 공평함은 또 있거든요. 750미터를 가는 내내 개 여섯 마리가 우리를 쫓아요. 1.2km 식당을 갈 때부터 내내 따라붙더니요. 자기네들끼리 싸우다가, 우리한테 붙었다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붙어 봤다가, 다시 우리에게 와서는 껌딱지처럼 붙네요. 오구오구. 그 와중에도 니콜라는 이 개들이 예뻐 죽겠고요. 아, 자고 싶네요. 눕고 싶네요. 메스타이에서 죽디디까지 오는 세 시간 반도 고생길이었어요. 엑셀 콱콱 밟아가며 벼랑길을 내지르는 운전기사 덕에 어찌나 피곤한지요. 밥 먹자고 총 2km를 걷다니요. 꿀단지 캐리어를 짊어지고요. 드디어 찾은 식당에서 짜디짠 킨칼리(조지아식 만두)를 먹었죠. 니콜라는 식당 주인 몰래 개들에게 먹을 걸 주느라 바빠요. 킨칼리는 짜도 너무 짜네요. 물 네 병을 시키니까 브루스 리는 자기는 마트에서 사 온 맥주 마시겠대요. 세 병만 시켜요. 아, 정신 사나워요. 땀으로 온몸이 끈적여요. 다리안과 니콜라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나, 너랑 같이 갈래!


자, 이 말은 누구에게서 나왔을까요? 맞춰 보실래요? 카즈베기가 기다리고 있어요. 저를요. 우리를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이네요. 여러분께 닿고 싶어요. 천천히, 끝까지 닿고 싶어요.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지역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실래요? 그럼 우우리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어요. 미리 감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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