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 집 같아, 트빌리시
아우 축축해. 찬 바람은 또 어디서 들어오는 거지? 돼지우리 같은 텐트에 들어오려고 샤워를 하는 사람은 또 뭘까? 얼룩덜룩 매트리스 좀 봐. 더러워, 추워, 온몸이 가려워. 자전거 여행, 나는 못하겠다. 도저히 못하겠다. 종일 페달을 밟고 끈적해져서, 습기 텐트로 기어들어가라고? 새소리에 눈을 뜨고, 텐트 밖은 초록초록 숲 냄새가 가득해도, 노노. 혹시, 호옥시. 좋은 텐트는 좀 다르려나? 지구가 자전하고, 어떻게든 해가 뜬다. 이토록 감사할 일이다. 밤새 긁다가 잠이 들었고, 새벽 두 시에서 여섯 시 사이는 그래도 숙면이었다. 15라리(6천 원)에 또 하룻밤을 버텼다. 불편할수록, 누추할수록 매일 밤 돈을 번다. 아끼면, 그만큼 번 거다. 축축한 침낭이 아침이 되니 뽀송해졌다. 바람이 시려서 손발을 비볐고, 입김도 더 열심히 뿜어댔다. 축축한 침낭이 이렇게까지 까슬해졌다. 체온의 힘이다. 응, 그래도 하나도 안 아쉽거든. 잘 가라, 꺼져라, 텐트야.
룸스 호텔로 간다. 카즈베기 최고급 호텔. 47라리(2만 원) 내고 조식 뷔페 못 먹을까 봐? 트빌리시로 가기 전에 이런 사치 정도는 꼭 해야겠다.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 진주 최 선생님이 십만 원을 보내주셨다. 지난번 십만 원까지 하면 총 이십만 원이다.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날도 이십만 원이 들어왔다. 나는 누군지 안다. 너지? 잘 쓸게. 왠지 쑥스러웠다. 소중하게, 행복하게 썼다. 여행 전에 큰돈 백만 원을 부쳐주신 이름 모를 독자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나는 혼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트레킹 중에 니콜라, 다리안, 제이콥에게 초콜릿 케이크를 사줄 수 있었다. 선뜻 택시비를 낼 수 있었다. 다음 달 신한 카드로 나가는 50만 원을 제외하면 총 80만 원 정도가 수중에 있다. 인세로 35만 원이 들어와서 그 정도다(6개월마다 한번씩 들어온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30만 원만 남기는 거다. 이상은 이상일뿐. 지금은 80만 원이 있어서 너무 좋다.
그러니까 2만 원 밥이 하나도 안 무섭다. 룸스 호텔에 묵는다고 다 부자일까? 오늘의 사치를 위해 후미진 월세방에서 차곡차곡 월급은 모은 사람, 집으로 가면 남은 건 카드빚뿐인 사람도 이곳에 있다. 나만 빼고 다 부자일 거라고 오해하는 바보들아, 나도 여기 있단다. 기적 같은 풍경 한 번, 커피 한 모금 꿀꺽.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2만 원어치 이상 먹어야 한다. 연어, 벌집까지 함께 나오는 꿀, 대추, 말린 살구를 먹는다. 까눌레와 요거트와 치즈 케이크를 먹는다. 가장 비싼 것들 위주로 고른다. 가로수 길에서 먹으면 이게 얼마더라? 머릿속으로 숫자를 휙휙 굴린다. 용량이 크지 않은 나의 위장은 금세 부풀어 오르고, 내게는 멈출 용기가 없다.
트빌리시로 가는 미니버스에서 한국 남자 두 명과 뒷자리에 앉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열심히 떠든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강행군. 한 명은 학교 역사 선생님. 새벽 세 시까지 술을 마셔도 여섯 시에 일어나서 일정을 소화한다. 어렵게, 어렵게 쥐어짠 14일. 2주 일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일기예보도 거의 보지 않는 내가 새삼 얄밉다. 얼마나 힘들게 온 여행인데. 우리는 '본전 생각'에 지배당한다. 보고 싶었던 것을 보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볼까? 얼마나 볼까? 는 계획표에 없다. 보기만 하면 된다. 룸스 호텔에서 내 모습도 같다. 어떻게 번 돈인데. 얼마나 소중한 2만 원인데. 맛있게 먹는 것보다는 많이 먹는 게 중요하다. 묻기. 자주 묻기. 배부르지 않아? 피곤하지 않아? 쫓기기만 하는 건 아니야? 중간중간 점검하고 물어야 한다. 욕망에 휘둘리기 전에, 욕망을 지배히는 지혜다. 아이고, 말이 쉽다. 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걸 해내고 싶다. 참고로 두 남자는 굉장히 씩씩하고, 행복해 보였다. 쫓기기보다는 쫓는 열정이었다.
이제 5,6일 정도 남았다. 한국으로 날아간다. 돌아가기 전까지 트빌리시에 머물 생각이다. 꼭, 꼭 클럽에 가서 쉐킷 쉐킷 흔들겠다. 5라리(2처 원)에 방귀 냄새 폴폴 타는 유황온천에 몸을 담그겠다. 하루 한 끼는 2,3만 원짜리 만찬을 즐기겠다. 어머니께 드릴 향긋한 꿀을 몇 병 더 사겠다.
나는 지금 트빌리시다. 다른 숙소에서 자고, 이리로 왔다. 일부러 가까운 숙소를 잡았다. 파브리카는 내 예산으론 도미토리에서 자야 한다. 독방에서 편히 자고 싶었다. 텐트에서 3일 고생했으니까, 독방에서도 좀 재워줘야지. 파브리카 호스텔에서 조식을 먹는 중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처음의 나는 낯선 장소,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늘 발끈할 준비를 했다.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이 편하다. 무뚝뚝한 파브리카 직원들이 반갑다. 또 왔냐고 묻는다. 왜 그딴 걸 물어보냐고 되묻는다. 이웃이 되어 스스럼없이 어깨를 친다. 웃는다. 그들도 웃는다. 내가 편해졌다. 그래서 그들이 웃는다. 내가 편해졌다. 그래서 웃음이 보인다. 이곳에 온 모든 여행자들이 다 반갑고, 살갑고, 만만하다. 내가 지구의 일부분이 되어, 결국 푸른 별이라는 개소리 낭낭 시구가 실감 난다. 똑같은 공포, 똑같은 식욕.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다. 이 모든 사람들이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이렇게나 커지고, 결국 천천히 죽어간다. 믿기지 않는다. 자두와 복숭아를 좀 더 먹을 생각이다.
멕PS 매일 글을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입니다. 저의 글이 지구 끝까지 닿을 수 있을까요? 그 마음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혹시, 호옥시 동네 도서관에 제 책이 있나요? 없다면 저의 책들을 신청해 주실래요? 진짜 좋은 책들이거든요. 올해는요. 방콕 필독서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