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무슨 클럽을 열두 시에 열어? 5일 후면 집으로 간다. 트빌리시 바 시아니(Bassiani) 클럽이 그렇게 핫하다며? 유럽 클럽 도시 베를린 못지않다며? 유럽 애들도 일부러 원정 온다며? 저요? 저는 클럽 질색이죠. 시끄러운 곳 딱 싫어요. 옷에 담배 냄새 다 배죠. 흠칫, 두둠칫 밑도 끝도 없는 리듬에 뭘 어쩌라는 걸까요? 그리고 나이가 있잖아요. 마흔일곱에 클럽요? 가고 싶은 사람도 있겠죠. 그분들은 당당히 가셔야죠. 저는 그렇게 흥 넘치는 사람 아니고요. 춤으로 스트레스 한 방에 날리는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요? 맞지? 맞지? 친구들아, 변호 좀 해줘. 노래방 가도 구석에서 졸다가 박수나 몇 번 치고 그랬잖아.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탬버린 두들기고 그러지 않았잖아. 수업 빼먹고 대낮에 노래방이나 가자고 꼬드기지 않았잖아. 이 나이에 클럽에 환장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미리 억울하고, 미리 신경 쓰여. 진짜로!
낮잠을 거의 세 시간을 잤네. 아, 이 정도면 정말 최상급 몸이지. 누가 보면 밤새 놀려고 일부러 낮잠 잔 줄 알겠어. 일단 라면을 끓여 먹자고. 짐짝에서 뒹굴뒹굴하는 러시아 봉지 라면 빨리 해치워야지. 토마토랑 양파를 좀 썰어 넣자고. 라면에 왜 토마토를? 왜 기겁하세요들? 해외에서 라면 급하게 먹고 싶으신 분. 김치 없이 라면 드셔야 하는 분들. 토마토 한 개 오종종 썰어 넣으세요. 김치찌개 맛도 살짝 나면서, 느끼함을 잡아줘요. 깔끔, 개운, 감칠맛 가득 라면이 된다고요. 이렇게 배를 채워야 신나게 춤을 추죠. 아뇨, 아뇨. 말이 헛나왔어요. 춤추려고 배 채우는 사람이라뇨? 미치고 팔짝 뛰겠네요. 이런 싸구려 라면, 그럼 한국에 가져가요? 먹어서 없애야죠. 마트에서 마늘장아찌를 파네요? 김치 대신 먹어요. 춤출 때 입에서 마늘 냄새나면 어쩌죠? 코로만 숨 쉬어야겠죠? 당연히 이는 닦죠. 가글도 하죠. 옷은 다림질을 좀 할까요? 집주인에게 다리미 좀 빌릴까요? 하얀색 드레스 셔츠는 좀 오버일까요? 클럽은 흰색이죠. 얼굴 아무리 잘 생겨봤자, 어두우면 하나도 안 먹혀요. 야광으로 번쩍이는 옷이 최고죠. 설레냐고요? 왜, 자꾸 놀리세요? 제 나이가 몇인데요. 설마요. 라면은 물이 너무 많아서요. 소금 좀 일부러 넣었어요.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저는 짠맛 성애자랍니다. 외국 감자칩도 얼마나 잘 먹는데요.
새벽 두 시. 눈을 떴더니 새벽 두 시?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클럽에 가겠다는 애가 새벽 두 시에 일어나? 낮잠까지 자고 어떻게 또 졸릴 수가 있지? 라면 먹고 배는 부르지. 열 두시 클럽 기다리기는 지루하지. 잠깐 눈을 붙였더니 새벽 두 시? 샤워는? 머리도 좀 만져야지. 헤어젤이 어디 있더라? 그것보다 이 시큰둥한 마음은 또 뭐지? 잔 김에 계속 자고 싶은 욕망은 뭐지? 안 갈래. 더 잘래. 돼먹지 못한 무기력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진짜 늙은 거야? 흠칫 두둠칫 밤새 끼 떠는 주책 바가지 박민우는 이제 없는 거? 그냥 토요일에 가지 뭐. 아냐, 아냐. 그렇게 미루고 결국 토요일에도 안 갔잖아. 일어서자. 샤워 안 해도 돼. 머리를 뭐하러 감아? 걸어서 20분. 슬리퍼 끌고 가. 문전 박대당하면 집으로 오자고. 잘 차려입고 쫓겨나는 것보다는, 막 입고 쫓겨나는 게 낫지. 늙은 분 꺼지십시오. 그러면 재빨리 꺼져야지. 남은 잠 마저 자야지. 늙어서 죄송하니까, 숙면해야지.
왜 신발이 이렇게 얌전히 버려진 걸까요? 으스스
스타디움 클럽이라길래 어마어마한 줄 알았더니, 경기장 한 칸만 클럽이구먼. 메인 클럽이 공사 중이다, 잠깐 문을 닫았다. 말들이 좀 많은데, 어쨌든 나는 왔다고. 쫓겨나지도 않았다고. 숙소에서 30분 걸으니 클럽이라니. 일부러 그런 숙소 찾은 거 아니냐고? 만 원에 에어컨 달린 방이 있기에 덥석 물었던 것뿐. 하늘의 계시란 생각을 하긴 했지. 클럽에 가야 할 운명이구나. 꼭 흔들어야겠구나. 막상 왔더니 아무것도 아니던 걸? 그냥 똑같던데? 의욕적인 DJ가 리듬을 만들고, 꾸준히 주입하던 걸? 내가 뭘 알겠어. 대세가 이런 음악인가 보다 하는 거지. 흔들기에 나쁘지 않으면 된 거야. 어깨만 들썩들썩, 엉덩이만 씰룩씰룩. 웃긴 게 뉴욕 클럽이 차라리 촌빨 날리고 재미나더라. 8,90년대 팝송을 함부로 틀던데? 천하의 미국이, 천하의 뉴욕이 어찌나 구수하고, 뒤떨어졌던지. 물론 나의 취향은 세련된 트빌리시지.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쿨내 진동하는 세련세련 중년이 바로 나거든.
얘들아, 형아가 왔다. 같이 놀아 줄 거지?
두 시간 정도를 흔들다가 슬리퍼 찍찍 끌고 다시 집으러 가. 이십대로 초반으로 보이는 조지아 남자가 혹시 근처 문 연 가게가 있냐고 묻네. 아까부터 클럽에서 나를 봤대. 오호호. 잘 생긴 게이 총각. 나에게 작업 건 거지? 아, 가문의 영광이로세. 감사의 큰 절이도 올릴까? 정신없이 흔들다 오면 좀 창피하고, 헛헛한데. 이런 꽃총각이 말이라도 걸어주니, 얼마나 오기를 잘했냐고. 아니, 조지아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문 연 가게를 왜 묻소? 까칠하게 답한 건, 나 집에 가야 해요. 분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달까? 아침에 일어나서 맛난 거 먹어야 하거든. 트빌리시 최고의 한 끼를 이미 검색해 놨거든. 이제 클럽 인생은 끝인가? 먹는 거에 영혼을 팔아야 하나? 아니, 이미 팔렸나? 위장에 불은 라면아, 얼른 소화돼라. 그 마음으로 흔들었다니까. 아침에 뭘 먹을까, 이 생각으로 그루브를 탔다니까. 고양이들만 나를 뚫어져라 보는 트빌리시 뒷골목이, 새벽 네 시 반의 뒷골목이 왜 이리 상쾌하지? 등산 끝내고 목욕탕 가기 전 아저씨 느낌인가? 막걸리 한 사발에 파전이라도 뒤집고 싶은 거 아니지? 양파 장아찌 간장에 콕콕콕 파전을 찍어서, 아아아! 야, 너 설마 군침까지 흘렸냐? 인천 공항에서 종로 전집으로 곧장 달려갈 기세네? 아니라니까. 아니라고. 아직도 흥이 남아서 어깨가 가만히 있질 못하는 거 안 보여? 흠칫, 두둠칫 들썩들썩. 콧노래도 흥얼흥얼. 새벽의 트빌리시 바람이 이리 좋구나. 몰랐네, 몰랐어!
이거지. 입장하기 전의 흥분감. 요거 느끼려고 감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우주 끝까지 제 글이 닿기를 소망해요. 가까운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있나요? 좋은 책들이니까요. 꼭 좀 신청해 주실래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백만 권이 팔릴 거니까요. 미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