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밥보다 비행기 밥이 더 좋더라.
공항엔 일찍 가는 편이에요. 공항에서 죽치고 있는 게 나아요. 좀 지루하더라도요. 멀쩡한 줄 다 밀치면서요. 비행기 놓치게 생겼어요. 죄송해요. 절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요. 새롭게 다짐해요. 그래. 미리 가 있자. 최소한 세 시간 반 전에 공항에 도착하자. 차가 막혀도요. 아무리 막혀도요. 콧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막혀봤자 두 시간 전에는 도착하니까요.
트빌리시 국제공항은 한산하네요. 인기 공항은 따로 있죠. 조지아 쿠타이시라는 도시예요. 거기에 국제공항이 하나 더 있어요. 유럽의 저가항공은 모두 쿠타이시로 향해요. 우리나라에서 조지아로 가는 직항이 곧 생긴대요. 여행 시장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겠네요. 공항 풍경도 그때는 달라질 거고요. 인기 맛집은 한국인으로 가득 차겠죠? 한국인 많으면 흥 떨어지시죠? 너도 한국인이면서 왜 한국인 많으면 눈살을 찌푸리니? 반격하는 분들은 공정하신 분들이죠. 여행은 완벽한 탈출이었으면 하거든요. 비싼 돈 내고 다른 나라에 왔으니까요. 신기함을 잔뜩 기대했으니까요. 옆 테이블도, 옆 옆 테이블도 다 한국인이면 속상하죠. 그들도, 저도 서로가 속상한 존재가 돼버리는 거죠. 그런 분들은 좀 서두르셔야겠어요. 조지아의 가치가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게 생겼어요. 베트남 다낭처럼 될 게 뻔하죠. 그러기엔 여전히 좀 먼가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어요. 게다가 스키장도 여러 개라네요. 여행은 타이밍입니다. 조지아는 늦을수록 손해입니다. 사실 지금은 터키의 시간이기도 해요. 물가가 조지아보다 더 저렴한 것 같아요. 버스나 교통편은 조지아와 비교도 안 되게 월등하고요. 갈 곳은 많고, 시간은 없으시죠? 갈등되시죠? 저라면 당장은 터키를 가겠어요. 원래 무지무지 비싼 나라랍니다. 반값 할인 중인 나라라고요. 터키가 볼 게 없나요? 먹을 게 약한가요? 지구에서 가장 가진 게 많은 나라 중 하나죠. 여행은 타이밍! 이 말을 명심해 주세요.
카타르 항공을 타고요. 도하에서 2시간 정도 기다렸다가요. 다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요. 캬, 카타르 항공 기내식 잘 나오더군요. 최고의 항공사예요. 저에게는요. 메뉴판을 승객들에게 미리 돌려요. 찬찬히 보고 고르라고요. 밥 먹으면서 칵테일까지 마실 수 있어요. 제 오른쪽 부부는 블러디 메리(토마토와 보드카를 섞은 칵테일) 두 잔을 홀짝이면서 식사를 하네요. 대신 느려요. 서비스가 너무 느려서요. 운 없으면 다른 사람 식사 끝나고 거의 삼십 분이 다 돼서 식사를 해야 해요. 남 먹는 거 보면서 삼십 분이잖아요. 뭘 해도 시간 안 가더이다. 아침밥이 나올 때였어요. 와인을 달라니까, 아침밥엔 와인이 준비 안 된다고요. 잠시 기다려 달래요. 됐다고, 망고 주스 달라고 해서 마셨어요. 좀 있다가요. 또 와인을 가지고 와요. 됐다는데 왜 자꾸 물배를 채우게 하냐고요. 와인은 또 마냥 맛있어서요. 연어 달걀말이와 찰떡궁합이네요. 속 터지지만 세계 최고의 기내식입디다. 돈만 많으면 자주 타고 싶어요. 여러분은 저처럼 거지 아니잖아요. 저보다 인내심 넘치시잖아요.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 수준의 기내식 다 챙겨 드세요. 카타르 항공 정말 좋습니다.
도하에서 인천까지 거의 아홉 시간 걸리더군요. 몰랐어요. 아시안 게임 개최국 정도면 확실히 아시아죠? 아시아 나라끼리 아홉 시간 걸려도 되나요? 인천에 도착했더니 오후 다섯 시고요. 집에서는 왜 이리 안 오냐. 걱정걱정 카톡이 여러 개 와 있고요. 저는 공항 바닥에 쭈그려 앉아요. 집이고 뭐고, 글을 써야죠. 매일 여행기를 쓰기로 했잖아요. 차가운 인천 공항에 엉덩이 붙이고요. 여행기를 써요. 불안해서 쓰는 글이기도 해요. 뭐라도 해야 안 불안해요. 저의 미래도, 지금의 궁핍함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잊혀요. 돈을 벌어야 해요. 제가 방콕에서 머물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요. 연말에 부모님 모시고 아르헨티나 형님 댁에도 다녀와야 해요. 천만 원을 벌어야 합니다. 벌 수 있을까요? 벌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벌지 못하겠죠? 무조건 벌어야죠. 늙어가는 부모님 마추픽추랑 소금 사막 보여드려야죠. 요런 아들 낳기를 잘했다. 죽기는 억울하다. 그런 순간, 만들어 드려야죠. 저를 위해서죠. 나중에라도, 왜 못 모시고 갔을까? 허망한 후회는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요. 예쁜 손주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여기저기 다니면서 추억도 좀 쌓으셔야죠. 그런 계획이 있으니까요.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요. 이런 고민을 저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들 이러면서 살잖아요. 이 몸뚱이로 태어났으니, 이 몸뚱이에 맞는 고민 해야죠. 이 마음 크기에 맞게 흔들려야죠. 눈이 심각하게 침침해요. 저를 갈아서 글을 쓴다고 괜히 그랬어요. 말이 씨가 된다더니요. 제 몸을 안 갈고요, 제 마음만 갈아서 글을 쓸래요. 이런 눈 상태면 앞으로 글을 계속 쓸 수가 없어요. 컴퓨터를 켤 수가 없어요. 이런 몸뚱이로 태어났어요. 조이고, 닦아서 잘 써야죠. 저녁이면 눈꺼풀이 무거워요. 너무너무 무거워요. 뜨고 있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역류서 식도염으로 고생하면서요. 이 식탐은 또 어쩌나요? 집 가는 길에 못 참고 떡볶이, 못 참고 순대볶음을 시켜요. 어묵도 하나 추가해서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요. 너무 맛있어서요. 그냥은 못 지나가겠는 거예요. 이러면서 제명 잘 채우고 죽을 수 있을까요? 걱정이네요. 걱정. 2주간 한국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더, 더,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 중입니다. 오체투지 끝에 깨달음? 혹은 가벼움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세상 끝까지 닿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혹 가까운 도서관에 제 책이 없나요?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실래요? 방콕에 가신다면요. '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를 데려가 주실래요? 방콕 여행이 두 배는 즐거워질 거니까요. 추천해서 욕먹을 짓은 저도 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