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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16. 2019

집으로 가는 길, 카타르 항공의 놀라운 기내식

집 밥보다 비행기 밥이 더 좋더라. 

미리미리 메뉴판 공부하고 주문해 주세요. 무려 고디바 초콜릿. 마구 달라고 하세요. 
조지아 식 크림 치킨과 양배추 샐러드. 제과점 수준의 초콜릿 푸딩

공항엔 일찍 가는 편이에요. 공항에서 죽치고 있는 게 나아요. 좀 지루하더라도요. 멀쩡한 줄 다 밀치면서요. 비행기 놓치게 생겼어요. 죄송해요. 절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요. 새롭게 다짐해요. 그래. 미리 가 있자. 최소한 세 시간 반 전에 공항에 도착하자. 차가 막혀도요. 아무리 막혀도요. 콧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막혀봤자 두 시간 전에는 도착하니까요. 


트빌리시 국제공항은 한산하네요. 인기 공항은 따로 있죠. 조지아 쿠타이시라는 도시예요. 거기에 국제공항이 하나 더 있어요. 유럽의 저가항공은 모두 쿠타이시로 향해요. 우리나라에서 조지아로 가는 직항이 곧 생긴대요. 여행 시장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겠네요. 공항 풍경도 그때는 달라질 거고요. 인기 맛집은 한국인으로 가득 차겠죠? 한국인 많으면 흥 떨어지시죠? 너도 한국인이면서 왜 한국인 많으면 눈살을 찌푸리니? 반격하는 분들은 공정하신 분들이죠. 여행은 완벽한 탈출이었으면 하거든요. 비싼 돈 내고 다른 나라에 왔으니까요. 신기함을 잔뜩 기대했으니까요. 옆 테이블도, 옆 옆 테이블도 다 한국인이면 속상하죠. 그들도, 저도 서로가 속상한 존재가 돼버리는 거죠. 그런 분들은 좀 서두르셔야겠어요. 조지아의 가치가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게 생겼어요. 베트남 다낭처럼 될 게 뻔하죠. 그러기엔 여전히 좀 먼가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어요. 게다가 스키장도 여러 개라네요. 여행은 타이밍입니다. 조지아는 늦을수록 손해입니다. 사실 지금은 터키의 시간이기도 해요. 물가가 조지아보다 더 저렴한 것 같아요. 버스나 교통편은 조지아와 비교도 안 되게 월등하고요. 갈 곳은 많고, 시간은 없으시죠? 갈등되시죠? 저라면 당장은 터키를 가겠어요. 원래 무지무지 비싼 나라랍니다. 반값 할인 중인 나라라고요. 터키가 볼 게 없나요? 먹을 게 약한가요? 지구에서 가장 가진 게 많은 나라 중 하나죠. 여행은 타이밍! 이 말을 명심해 주세요. 


카타르 항공을 타고요. 도하에서 2시간 정도 기다렸다가요. 다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요. 캬, 카타르 항공 기내식  잘 나오더군요. 최고의 항공사예요. 저에게는요. 메뉴판을 승객들에게 미리 돌려요. 찬찬히 보고 고르라고요. 밥 먹으면서 칵테일까지 마실 수 있어요. 제 오른쪽 부부는 블러디 메리(토마토와 보드카를 섞은 칵테일) 두 잔을 홀짝이면서 식사를 하네요. 대신 느려요. 서비스가 너무 느려서요. 운 없으면 다른 사람 식사 끝나고 거의 삼십 분이 다 돼서 식사를 해야 해요. 남 먹는 거 보면서 삼십 분이잖아요. 뭘 해도 시간 안 가더이다. 아침밥이 나올 때였어요. 와인을 달라니까, 아침밥엔 와인이 준비 안 된다고요. 잠시 기다려 달래요. 됐다고, 망고 주스 달라고 해서 마셨어요. 좀 있다가요. 또 와인을 가지고 와요. 됐다는데 왜 자꾸 물배를 채우게 하냐고요. 와인은 또 마냥 맛있어서요. 연어 달걀말이와 찰떡궁합이네요. 속 터지지만 세계 최고의 기내식입디다. 돈만 많으면 자주 타고 싶어요. 여러분은 저처럼 거지 아니잖아요. 저보다 인내심 넘치시잖아요.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 수준의 기내식 다 챙겨 드세요. 카타르 항공 정말 좋습니다. 


무사히 공항 도착, 거지 아니고요. 여행자입니다. 

도하에서 인천까지 거의 아홉 시간 걸리더군요. 몰랐어요. 아시안 게임 개최국 정도면 확실히 아시아죠? 아시아 나라끼리 아홉 시간 걸려도 되나요? 인천에 도착했더니 오후 다섯 시고요. 집에서는 왜 이리 안 오냐. 걱정걱정 카톡이 여러 개 와 있고요. 저는 공항 바닥에 쭈그려 앉아요. 집이고 뭐고, 글을 써야죠. 매일 여행기를 쓰기로 했잖아요. 차가운 인천 공항에 엉덩이 붙이고요. 여행기를 써요. 불안해서 쓰는 글이기도 해요. 뭐라도 해야 안 불안해요. 저의 미래도, 지금의 궁핍함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잊혀요. 돈을 벌어야 해요. 제가 방콕에서 머물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요. 연말에 부모님 모시고 아르헨티나 형님 댁에도 다녀와야 해요. 천만 원을 벌어야 합니다. 벌 수 있을까요? 벌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벌지 못하겠죠? 무조건 벌어야죠. 늙어가는 부모님 마추픽추랑 소금 사막 보여드려야죠. 요런 아들 낳기를 잘했다. 죽기는 억울하다. 그런 순간, 만들어 드려야죠. 저를 위해서죠. 나중에라도, 왜 못 모시고 갔을까? 허망한 후회는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요. 예쁜 손주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여기저기 다니면서 추억도 좀 쌓으셔야죠. 그런 계획이 있으니까요.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요. 이런 고민을 저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들 이러면서 살잖아요. 이 몸뚱이로 태어났으니, 이 몸뚱이에 맞는 고민 해야죠. 이 마음 크기에 맞게 흔들려야죠. 눈이 심각하게 침침해요. 저를 갈아서 글을 쓴다고 괜히 그랬어요. 말이 씨가 된다더니요. 제 몸을 안 갈고요, 제 마음만 갈아서 글을  쓸래요. 이런 눈 상태면 앞으로 글을 계속 쓸 수가 없어요. 컴퓨터를 켤 수가 없어요. 이런 몸뚱이로 태어났어요. 조이고, 닦아서 잘 써야죠. 저녁이면 눈꺼풀이 무거워요. 너무너무 무거워요. 뜨고 있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역류서 식도염으로 고생하면서요. 이 식탐은 또 어쩌나요? 집 가는 길에 못 참고 떡볶이, 못 참고 순대볶음을 시켜요. 어묵도 하나 추가해서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요. 너무 맛있어서요. 그냥은 못 지나가겠는 거예요. 이러면서 제명 잘 채우고 죽을 수 있을까요? 걱정이네요. 걱정. 2주간 한국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더, 더,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 중입니다. 오체투지 끝에 깨달음? 혹은 가벼움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세상 끝까지 닿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혹 가까운 도서관에 제 책이 없나요?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실래요? 방콕에 가신다면요. '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를 데려가 주실래요? 방콕 여행이 두 배는 즐거워질 거니까요. 추천해서 욕먹을 짓은 저도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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