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국의 8월이 저물고 있네요
여전히 몽롱해요. 시차 적응 중인 거죠. 남미나 미국에서 돌아오면 일주일은 가요. 이번엔 이틀 정도면 되겠죠? 잠이 덜 깬 상태로 창밖 풍경을 봐요. 녹지가 가득한 경기도 광주. 듬성듬성 아파트들이 늘어가네요. 판교랑 가깝다는 이유로 요즘 아파트값이 들썩들썩. 녹지가 다 사라져도 우리 아파트가 비쌌으면 좋겠어요. 늘 공사판에, 청량한 공기 다 없어져도요. 우리 아파트만 마구 올라서, 어머니, 아버지 노후가 안락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막장으로 가는 이유는 두려움일 거예요. 나 하나, 우리 가족 하나만 잘 살고 보자. 누구에게라도 있는 애틋한 자기애가 지옥을 만들죠. 아파트 값이 오른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죠. 아파트 값이 오른다고, 당장 팔 용기도, 결단성도 없어요. 그저 값이 올랐다는 안도감에 허우적대고 싶은 거죠. 팔지도 못하고, 갖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승리감에 도취되고 싶은 거죠. 아파트야 올라라, 올라라!
어머니가 해주신 대구탕에 호박전을 먹어요. 인천 공항에 몸소 올 생각까지 하셨대요. 저한테 아무 소식도 없어서요. 제 잘못이죠. 조지아에서 떠날 때 메시지라도 한 번 더 보냈어야죠. 그때는 그냥 저만 보여요. 짐을 부치고, 비행기를 기다리면 안도감과 피로함이 밀려들죠. 정말 끝난 건가? 조지아를 떠나는 건가? 실감이 나야 말이죠. 그 전날 어머니께 오후에 들어간다고는 말을 해놓은 상태라서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어머니, 아버지는 무슨 사고라도 난 건지, 비행기 추락 뉴스가 TV에 나오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 저도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릴지는 몰랐어요. 한국에 오전엔 도착하지 않을까 했죠. 항공권을 대충 봐요. 도착 시간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그게 저거든요. 늘 부모님은 자식이 최고죠. 자식은 그게 당연해요. 일방적 사랑을 받으면 다들 시큰둥해지나 봐요. 감사를 모르고, 그 과장된 걱정이 조금은 잦아들기를 바라나 봐요. 저처럼 결혼도 안(못)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요. 한없이 큰 사랑을 베푼 적이 없어요. 너나 그렇지. 그렇게 반발하실 분도 계시겠죠. 그래요. 저는 그래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어떤 한 존재에 기꺼이 내 전부를 바치는 사랑을 몰라요. 그런 감정은 상상의 영역이죠. 그래서 피붙이와 가정을 꾸린 세상 모든 부모가 위대해 보여요. 자식에 대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열심히 관찰해야 해요. 내게 없는 것. 도달할 수 없는 감정. 신비롭고, 낯설어요.
단지 근처 청소년 수련관에 와요. 작은 도서관이 있어요. 도서관 냉기가 저는 추운데, 다들 반팔에 끄떡없어 보이네요. 아, 내 몸이 차구나. 대체로 사람들은 나보다 몸이 뜨겁네. 질투가 나요. 제 눈은 어떻게 될까요? 종일 무겁고요. 보이던 글자들은 이제 다 뭉개져요. 안경을 바꿀 때마다 도수는 올라가죠. 이러다가 눈뜬장님이 되는 건 아닌가. 그래서 시력이 나빠져도, 잘 안 보여도. 오래된 안경을 끼고 있어요. 이제는 안경을 써도, 웬만한 글씨가 안 보여요. 안 보이는 것도 안 보이는 건데, 눈이 너무 뻐근해요. 안 되겠어요. 두려워서 집중이 안 돼요. 유튜브에서 시력 건강 정보를 뒤져요. 종편 방송에 나온 안과 의사가요. 눈을 5분 30초 열심히 깜빡여 보래요. 장윤정의 어머나 노래에 맞춰서요. 열심히 깜빡였더니요. 꽤나 가볍네요. 글자들이 선명해진 것도 같아요. 5분 30초만 해서 되겠어요? 생각날 때마다 깜빡깜빡. 종일도 할 수 있어요. 희망이 보이니까요.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걸을 때도, 잠들기 전에도 바르르 바르르 눈꺼풀을 깜빡여요. 너무 열심히 깜빡이다가요. 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요. 이 정도 기세면 눈꺼풀이 날개도 될 수 있겠어요 그 힘으로 공중으로 뜰 수도 있겠어요. 하나마나한 생각을 하며 웃어요. 저는요. 열심히 깜빡일 거예요. 저는 써야 하고, 저는 읽어야 해요. 노화에 지면 안돼요. 특히 눈과 손가락. 세상과 죽을 때까지 소통하고픈 꿈이 있어요. 어마어마한 꿈이죠. 경박하게 깜빡깜빡. 발작처럼 깜빡깜빡. 이런 제가 부끄럽지 않아요.
아침에요. 돈을 어디다 뒀느냐고 메시지가 왔네요. 마테네 집에서요. 이런이런. 일부러 무거운 접시 밑에다 50라리(2만 원) 넣어둔 건데요. 집주인 조카가 잠시 들렀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거예요. 작은 돈이지만, 살림하는 사람 입장에선 큰 돈일 텐데요. 부디, 그 돈이 무사히 그곳에 있었으면 해요. 괜히 안 주느니만 못한 일이 되었나 마음이 무겁네요. 혹시 조지아 트빌리시에 가시는 분들은 마테네 집에서 좀 묵어 주실래요? 위치는 끝내주고요(대신 비탈길이긴 해요). 그냥 시설은 서민 동네 평범한 집이요. 엄청 깔끔하지 않지만, 대체로 깔끔해요. 우리 마테가 구김 없이 자라려면요. 마테네 집이 손님으로 꽉 차야겠죠?
저는 아직 조지아에 살아요. 몸은 한국에 있지만, 트빌리시에 머물고 있어요. 파브리카 호스텔에서 조식을 먹고요. 구시가지에서 케이블을 타고요. 맛집을 찾고요. 챙이 긴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요. 두건으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트빌리시를 걸어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보르조미 생수를 마시죠. 저는 이제 그 어떤 곳도 대단하지 않아요. 이틀이면 적응해서 내 동네인 것처럼 거닐어요. 오히려 떠날 때가 문제인데요. 원래 내 집이었던 것처럼 향수병에 걸려요. 울컥해요. 벌써부터요. 유난히 빨간 토마토랑요. 토실토실, 과육이 단단한 복숭아를 먹고 싶어요. 무심한 듯 툭툭, 은근 따뜻한 조지아 사람들에게 감 마르조 바(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싶어요. 이름도 모르는 교회에서 울리는 성가를 한참 동안 듣고 싶어요. 당돌하게 달려드는 고양이들을 하나씩 안고, 쓰다듬어주고 싶어요. 제가 그곳에 있었나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제가, 정말 그곳에 없나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https://blog.naver.com/modiano99/221616315734
21일 글쓰기 강좌가 있어요. 2019년 딱 하루, 최고의 글쓰기 강의를 준비하고 있죠. 이렇게 장담하고, 실망시키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까지 힘이 될 거라 믿어요. 글로 미래를 짓고 싶은 이들에게, 제가 다리가 되고 싶어요. 발판이 되어줄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의 꿈이 자랄 수 있는 21일이었으면 해요. 이런 공지가 부끄럽지 않도록, 끙끙 앓으면서 고민, 고민할게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비가 후루룩 쏟아지고 난 한국의 여름은 완벽하네요. 우렁찬 매미 소리를 들어요. 비빔면이 먹고픈 토요일이네요. 다들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요.
PS 매일 글을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입니다. 저를 낮추고, 우주 끝까지 닿겠습니다. 참 가당치도 않은 꿈을 꾸며 사네요. 집 근처 도서관에 제 책이 있나요?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실래요? 저의 기적에 동참해 주지 않으실래요? 2019년은요.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이죠. 방콕에 가세요? 이 책 가져가시면 여행이 두 배는 행복해지실 거예요.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