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KDB 한얼 지점장님 보시오

하아, 이 뭉클함에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게 자랑, 아직 갱년기 아님

by 박민우

군산 가는 길. 우리나라는 이뽀.

우리나라는 매일매일 이뽀.

고속도로 휴게소.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꼬치에 콕콕 박힌 비엔나소시지요. 소시지 경매장에서 최저가 떨이로 파는, 최저질 소시지 맞죠? 씹을 때마다 싼 맛이 톡톡.

전국 성인 용품 사장님들!

군산 성인 용품점에서 영감 좀 받고 가세요.

사랑이 꽃피는 집.

이런 청순미 폭발 성인용품점 같으니라고.

분홍분홍 사랑을 파는, 성인 용품 가게.

이뽀이뽀

흥남 작은 도서관

정말 작네요.

공공 도서관 같기도 하고, 안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확실히 작네요.

연두와 분홍의 도발적 색감, 이뽀이뽀


53번 버스는 96분

89번 버스는 102분

화끈한 배차 간격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곳이 궁금합니다.


종점은 어쩐지 제 취향일 듯해요.

저는 뽀빠이 냉면에 와 있습니다.

전부터 오고 싶었죠.

군산에서 나고 자란 학교 후배가요.

어찌나 자랑하던지요.

세상에 이런 냉면은 없다.

주접떠네. 저는 안 믿었습니다.

궁금하기는 했죠.

일단 고기를 먹습니다.

사주는 대로 먹겠습니다.

냉면집에서 고기라뇨?

이런 원칙주의자가 저는 아닙니다.

고기 먹은 배에 냉면을 끼얹으면 트림도 맛나죠.


테라 맥주 소맥으로 시작합니다.

1g 오차도 허락 않는 초정밀 소맥이로군요.

KDB 생명 한지점장은 인간문화재.

그냥 먹는 테라가 커피라면

한지점장 소맥은 T.O.P

후배 놈이 입에 달고 살던 군산의 자랑 뽀빠이 물냉면.

알았다, 이늠아! 네 호들갑 때문에 왔다.

국물 맛이 요상하네요.

메밀과 물냉면의 혼종 국물이네요.

겨자를 넉넉하게 풀면

야생에서 이제 막 길들여진, 꼿꼿한 기세가 여전한 그런 육수 맛이 나요.

몇 번 먹으면 중독성이 엄청나겠어요.

고명으로 올라간 고기도 부드럽고요.

흔하지 않으면서, 익숙한 맛이 나네요.


맛나네요.


그래도, 후배의 호들갑은 좀 과하다고 느껴집니다만...


세 번 먹고, 정정하겠습니다. 껄껄껄


얼이는 제가 방콕에 있을 때 찾아왔어요.

양복을 입으니, 겁나 어른스럽네요.


-군산에서 강연 좀 해 주세요. 마침 10월에 전직원이 방콕에 가요.


광주 KDB생명에서도 강연을 했어요. 얼이 소개로요. 군산에서도 또 불러 주네요.

얼이가 회사에서 어떤 존재인지 감이 잡힙니다.

아이고, 좋아요.

얼이 덕분에 저 방콕 가서 쌀국수 원 없이 먹게 생겼어요.


얼이한테 뽀빠이 냉면 먹고 싶다고 했죠.

한참 형인 저한테, 고기도 사주고, 소맥도 말아주네요.

다음날 아침 강연이 있으니까요.

전 많이 마시면 안 되잖아요.

얼이 이 친구가 술이 세군요.

소맥으로 1차 입가심

2차로 또 테라 맥주 열 병.


자기 술 세다고

자기 젊다고

술 이렇게 먹여도 되나요?


큰일 났어요.

다음날 강연 끝나면

또 서울에서, 성신여대에서 밤새 달려야 해요.


-작가님 책 1만 시간 동안의 남미에서요. 멕시코 그 장면이 안 잊혀요. 헤드라이트가 켜지면서요. 카우보이가 어둠 속에서 딱 등장하던 장면요. 아빠랑 아들이었나요? 그 이미지가요. 콕 박혀서요. 안 잊혀요. 거기도 또 가실 건가요?


아이고 이 친구야, 나도 가물가물하다.

열 번 이상을 읽었답니다.

지금도 생각나면 읽는답니다.

네, 제가 그런 작가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2인조 강도를 만나고

과테말라에서 한국인 식당 사장을 만나고

어쩌고, 저쩌고

글을 쓴 이보다, 더 샅샅이 책을 암기하고 있는 괴상한 독자로군요.

저는 테라 맥주를 한 모금, 한 모금

우리나라 맥주가 이렇게 맛있었나요?



국내 3대 떡볶이라는 군산 안젤라 떡볶이도 사주네요.


강연 끝나면 그냥 보내줄 것이지. 뭔 또 떡볶이여.

내가 먹고 싶다고는 했지만

혼자 가서 먹으려고 했지.

먹고, 매일매일 여행기 후다닥 쓰고, 서울 가려고 했지.

아이고, 나, 글 좀 쓰자.

어디를 또 데려가?

산타로사가 군산 최고의 카페라고?

내가 좋아하는 치앙마이 분위기가 얼추 난다고?


무슨 커피 값이 7,500원이나 한디야?

너무 세련되고

가격도 서울이 훨씬 후져부러.

가난뱅이 형은 손이 덜덜 떨린다잉.

근디 맛나넹, 홀짝홀짝!


버스 이제 곧 떠난다니께.

시간 좀 남았다고

철도길까지 데려오고 그래?


그냥 좋은 척 한 거여.

천하의 여행 도사 박민우가 웃는다고 다 믿고 그러지는 말더라고.


미얀마에서 샀다며 요상하게 생긴 병따개는 또 왜 주는겨.

이거 이거 내 취향 아니여.

이걸 주면서 얼굴이 환해지는 자네를 보면서 그냥 웃어준겨.


그래, 난 가벼운 사람

내게 잘 해주는 사람 다 좋지.


'좋음'과 '감동'의 거리는 꽤나 아득해

보통은 '좋음'에서 끝나고 말지.

버스가 떠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보라고, 더 봐야 한다고

나보다 더 애가 타는 그 표정 있잖여.

내 책의 구석구석을 귀신같이 묘사하는 그 표정 말이여.


군산을 기억하는 이유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때문인디, 이제 자네의 그 표정이 추가됐어.

8월의 크리스마스 이상으로 뭉클해지네.


몽글몽글


한지점장님! 입은 오지게 짧아서

피자도 빵도, 파스타도 싫고

여행 가면 한식이어야 해서

미얀마 파안이라는 그 오지에서도 김치볶음밥을 찾아내고

단 건 안 좋아하면서, 캔커피는 하루 여섯 개나 퍼마시고

고수를 처음부터 끓인 국물은 못 먹는데

고수를 따로 넣은 국물은 그래도 먹고

냄새 풀풀 나는 두리안은 또 잘 먹고

그렇게 한국 음식 노래를 부르면서, 튜브 고추장 하나 안 챙겨가고

맥주 50병 마시기, 허접 계획을 여행 목표랍시고 세우고

3일 만에 그깟 50병 가뿐히 해치우고

일본도, 대만도 그저 그렇고

태국도 이젠 좀 지겹고

오직 캄보디아

오직 미얀마만 좋은

유난도, 그런 유난도 없는 까탈 남자가


내 책을 지금도 폰 안에 담아서

여행 내내 히죽히죽 읽는다?


서울 가는 버스에서 이렇게 히죽대겠어?


술 퍼마시고, 밤새 세 시간 자고

코를 드르렁 대며 버스에서 곯아떨어질 줄 알았는디

산타로사에서 마신 과테말라 드립 커피 때문이겠지, 뭐.

카페인발이겠지

카페인이 사람 웃게 하기도 하는가?


내 소원이 뭔지 알아?

세상 끝까지 닿고 싶고

지구 모두와 글로 나누고 싶어.

우주인도 내 책을 읽겠다면 대환영이고.


군산 KDB 생명 한얼 지점장님!

당신이 내 소원이고, 내 기적이오.


오늘 저녁엔 성신여대에서 또 다른 기적을 만날 거요.

눈도 안 떠지게 피곤하지만

어서 오늘이 빨리 지나기를...

이런 마음이 들랑 말랑 하지만

그따위 태도 싹싹 밀어내고, 씩씩해질 테요.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우주와, 기적과 신나게 통해야 하니께


이리 또렷하고, 이리 젊어져서

함께 지구 곳곳을 떠돌 참이오.

오늘 여러 영혼들이 보글보글 끓겠구려.

나는 바글바글 끓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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