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이 왔어요. 전투력 급상승

끙끙끙 방콕 첫날, 가난아 년 죽었어!

by 박민우
20190831_060017.jpg 방콕 우리 동네 동이 트는 순간은 이뽀요

말이 씨가 된다더니요. 몸살이 걸렸지 뭐예요. 콧물이 줄줄줄. 비행기 때 훌쩍대는 승객들이 많더니요. 거기서 옮은 걸까요? 열이 조금 있고요. 크리넥스 한 통을 다 썼네요. 손수건이 마르면, 손수건을 써야겠어요. 휴지로 감당이 안되네요. 아침에 뭐하러 신한 카드값을 확인했을까요? 생각보다 별로 안 썼네. 안심했죠. 10월 달 결제금액은 왜 미리 뜨는 거죠? 그걸 내내 못 보다가, 오늘은 보고 말았네요.


철렁!


올 겨울에 부모님 모시고 아르헨티나 갈 생각이었죠. 아르헨티나는 커녕, 제가 일단 살아야 해요. 불투명하군요. 나름 열심히 살지 않았나요? 매일 글을 쓰고, 제 이름으로 좋은 책도 열 권 냈어요. 늘 이야기하지만 부유함을 바라진 않아요. 그래도, 적정한 보상이 있어야죠. 나한테만 가혹한 삶이 아니라면요. 몸이 안 좋으니까요. 억울하고, 외롭네요. 저라고 저의 가난을 들추는 게 편하겠어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일기를 쓰기로 작정했으니, 나를 써야죠. 쓰다 보니, 감추고 싶은 것까지 까발리게 되네요. 아득해지더니요. 다시 생각을 바꿔요. 이번엔 한 번 달려들어 보게요. 지금까지는 쫓겼잖아요. 쫓길 때마다 아, 뜨거워했잖아요. 그리고 조금 더 달아났죠. 먼저 저질러 보게요. 통장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안 기다릴래요. 0을 기다리지 말고, 0의 반대쪽으로 달려볼래요. 일종의 실험이죠. 일단 저는 책을 쓸래요. 저에겐 원고가 꽤 여러 개 있어요. 따로 있는 건 아니고요. 매일 쓰는 일기요. 일기를 단행본 원고로 바꿀 거예요. 뉴욕 일기, 샌프란시스코 일기, 코카서스 일기를 단행본으로 바꿉니다. 10% 인세? 그걸로 못 먹고 살죠. 저는 이 책을 자비로 만들 겁니다. 돈이 없죠. 꿔야죠. 빚을 내서 책을 냅니다. 저는 그 책을 전국을 돌며 팔 거예요. 물론 택배로도 보낼 거고요. 친필 사인을 해서요. 책값은 온전히 내 거가 되는 거죠. 어떻게 편집 파일로 다듬을지. 인쇄는 어떻게 할지는 물어야지요. 도움을 구해야지요. 사진 없고, 글만 채운 문고판 같은 책이 될 거예요. 책이 나오기만 하면요. 생활이 가능하겠어요. 몇 권이 팔리느냐는 모르지만, 팔릴 거라 믿어요. 팔려야지요. 해리포터를 썼던 조엔 롤링을 떠올려요. 어린 딸을 굶길 수 없다. 그 마음만으로 니콜슨 카페에서 몇 시간씩 쓰죠. 커피 한 잔만 주문하면, 눈치 안 보고 몇 시간씩 일할 수 있는 카페였거든요. 그렇게 해리포터를 완성하죠. 그때의 조 엔 롤링만큼 다급하냐고요? 아뇨. 전혀요. 어떻게든 먹이고, 키워야 하는 딸이 없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궁지에 몰린 게 아니라니까요. 궁지가 싫어서, 반격을 하는 거라고요. 즐거울 거예요. 공포가 오기 전에, 공포를 쫓아내 보려고요. 정교해져야 해요. 흥분은 필요 없죠. 얼마큼 썼니? 확인을 하는 순간 무너져요. 물으면 안 돼요. 확인하면 안 돼요. 그래야 우주가 열리죠. 앞으로 나가는 힘은, 확인하는 순간 졸아들어요. 앞으로 남은 석 달. 흥미로운 실험이 시작됩니다. 얼마큼 왔지? 이런 물음을, 이런 각성을 경계합니다. 어디까지든 이미 저는 완성입니다. 방향만 살짝 조정할게요. 무슨 소리인가 싶으신가요? 세상에 없는 여행기 세 권이 2019년에 완성됩니다.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방콕 제 침대에서 좀 더 아파보겠습니다. 몸이 후끈하네요.


PS 매일 글을 써요. 오체투지라고 하시나요? 티베트 사람들이요. 깨달음을 위해, 이루고픈 소원을 위해 머리, 두 팔, 두 다리로 땅을 짚으며 앞으로 나가더군요. 저는 글로 오체투지를 흉내 냅니다. 마음이 맑아지고, 매일 작은 성취감을 느껴요. 결국 온 세상이 제 글을 읽게 될 날이 오죠. 그 날을 생각하며 써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를 합니다. 방콕 여행이 훨씬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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