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야, 생일 축하해!

생일이 한없이 무덤덤한 사람입니다만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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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저의 생일은 의심스러워요. 1973년 9월 2일은 음력 8월 6일이죠. 음력으로 8월 4일, 양력으로 9월 2일. 부모님께서 확정해 주신 제 생일은 그래요. 음력 8월 4일이 맞다면요. 제 생일은 8월 31일이 돼요. 어머니는 장남인 형 생일은 몇 번 차려주셨어요. 저는 없었죠. 불만이었죠. 아주 약간. 전셋집에 친구를 초대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형과의 차별이 약간 불만이었을 뿐이죠. 지금은 감사하죠. 둘째로서 자유롭게 컸어요. 한글도 모르고 국민학교에 들어갔죠. 형은 어머니가 빗자루로 때려가며 가르쳤죠. 한글이 형에겐 얼마나 무시무시했을까요? 저에겐 그림이었을 뿐이었는데요. 생일은 국민학교 때가 제일 중요했죠. 누구에게 초대받느냐가 저의 위치를 좌우했거든요. 반장, 부반장, 전교 회장, 2층 양옥집 아들, 딸. 이런 애들에게 초대를 받아야 했죠. 그런 날은 빵구난 양말도 안 되고요. 빈손으로 가도 안돼요. 세수도 한 번 더 하고요. 동아 24B 연필 한 다스. 공책 몇 권이 만만한 선물이었죠. 용돈이 없었던 저에겐 큰 지출이었죠. 있는 돈을 다 써서라도 꿇리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초대를 받았잖아요. 그게 어디인가요? 케이크라는 게 상 위에 떡 있더군요. 버터크림 케이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생크림처럼 포슬포슬 가볍지 않았죠. 아, 이게 케이크구나. 영화에서 볼 때보다 맛은 덜하더군요. 입에 넣으면 빨려 들어갈 듯 치명적일 줄 알았어요. 맨들맨들, 두툼한 크림이고, 빵이었죠. 이십 대, 삼십 대도 생일은 나름 의미였어요. 어울리는 애들이 더 난리였어요. 술 마시는 핑계였을 뿐이었으면서요. 대학 때는 개강 날짜가 제 생일이랑 겹쳐서요. 선물을 어마어마하게 받았어요. 화분을 선물로 받았는데요. 아침에 일어나니까 제 등짝 밑에서 뭉개져 있더군요.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술에 찌들어 푸른 생명을 그렇게 보냈죠. 기억에 남았으니, 죄책감이었나 봐요.


오늘 아침에 제 통장에요. 이십만 원이 들어온 거예요. 보낸 사람 이름은 한화 박민우더군요. 누구지? 혹시 야구 선수 박민우? 그 사람이 한화가 아닐 텐데? NC 아닌가? 야구 선수가 내게 돈을? 이 사람도 내 팬이었어? 나보다 먼저 검색되는 박민우는 다 싫어했는데. 생일까지 기억하는 열혈 팬이라면, 좋아해야지. 나도 팬 해야지. 잠깐의 착각이었고요. 여행자 보험에서 돈이 입금된 거였어요. 마이뱅크 여행자 보험이었거든요. 그게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거였나 봐요. 그나저나 여행자 보험 정말 괜찮지 않나요? 85일 정도 여행하면서요. 제가 지불한 보험료는 45,769원이에요. 아르메니아에서 휴대폰 액정이 깨졌어요. 230,000원이 들었죠. 200,000원을 보상받았어요. 갤럭시 노트 액정 교체하는데 삼만 원 썼어요. 깨진 액정이 깨끗해지니까요.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몰라요. 광고글 같죠? 광고 맞아요. 여행자 보험 꼭 드세요. 마이뱅크 관계자 여러분. 무료로 광고해 주는 저한테 뭐라도 보내주세요. 방콕 오성급 호텔 무료 숙박권이 어떠세요? 저만 좋자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제가 거지처럼 거저 묵겠어요? 여행자 보험은 마이뱅크구나. 호텔 풀장에서 이런 일기를 길게 길게 쓰지 않겠어요? 마케팅은 그런 거죠. 적은 돈으로 최고의 효과를 보는 거요. 박민우의 상품성을 너무나 모르십니다. 정말! 갑자기 울화가 치미는군요. 그때 연락 주겠다던 광고 회사요. 생수 CF 왜 연락 안 주셨어요? 출연료 2천만 원까지 약속하셨죠. 저도 설마 하기는 했지만, 겸손한 저에게 기적처럼 와주셨어야죠.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요. 조지아 수돗물도 다 그 생수병에 따라 마시려고 했어요. 저는 이 물만 마셔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요. 그깟 거짓말 왜 못해요? 2천만 원인데요. 신기루는 그렇게 멀어지더군요. 카메라 테스트 후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는 것보단 나은 결말이었으려나요? 그 생수 가끔 마셔요. 삼다수보다 싸서 마셔요. 그냥요.


주거래 카페 Up all night에 왔어요. 집 앞으로 이사했네요. 신기해요. 이 건물이 지어질 때 카페겠구나 했죠. 식당이었던 거예요. 얼마나 실망스럽던지요. 식당이 망하고요. UP all night 카페가 여기로 이사 왔네요. 자주 가던 카페가 집 앞으로 통째로 옮겨진 거예요. 여전히 근사하네요. 이런 게 기적이죠. 원래 up all night은 폐허처럼 텅 비었더군요. 둘 다 열어도, 잘 됐을 텐데요. 사연이 있겠죠. 땅주인이 월세를 너무 높이 불렀거나요. 오래간만에 카푸치노를 시켜요. 역류성 식도염이 완벽히 낫진 않았어요. 목과 명치에 이물감이 좀 있어요. 커피는 안 마시는 게 좋죠. 시켜요. 생일 선물이에요. 혹시 속이 뒤집어질지도 모르지만, 마시고 싶대요. 쌉쌀함 속에 우유맛, 계피맛이 급 그립대요. 박민우가요. 오늘이 생일인 박민우가요. 그래서 마셔요. 좋아하는 게 있네요. 그러면 됐어요. 그깟 멍청한 미각에, 혀 돌기 자극에 굴복하는 어리석은 생명체지만요. 그리워하는 게 있어요. 그걸로 됐죠. 몸이 조금만 괜찮아져도 망칠 생각만 하지만요. 어리석음을 자각하니까요. 가끔씩이라도요. 그러니까 됐어요. 다 잘 될 거예요. 잘 살 거예요. 보세요. 몸살도 이틀 만에 훨훨 사라졌잖아요.


생일 축하해! 민우야. 매일 생일처럼 살자.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낯설었으면 해. 어디든, 뭘 하든, 뭘 먹든.


PS 매일 글을 써요. 오체투지. 저를 낮추고, 깨달음에 한 발자국씩. 천천히, 하지만 끝까지 닿기를 원해요. 저의 글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가까운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들이 있나요? 신청해 주실래요? 저의 오체투지를 조금씩 도와주세요. 아,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방콕 여행이 인생 여행이 되실 수도 있어요. 이 책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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