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빈둥, 황홀한 몸살 놀이

아파서 좋아요. 너무 많이 아프지만 않다면요

by 박민우
20190831_110538.jpg 쁠라살릿(태국의 대표적 민물 생선) 튀김, 호박달걀 볶음. 태국 사람 다 됐죠?


콧물은 이제 끝나가네요. 잠도 잘 잤어요. 이번 몸살은 빨리 끝나려나 봐요. TV를 켜요. 커다란 구렁이가 거실에서, 화장실에서 아가리를 쫙쫙 벌리네요. 구조대원이 그런 구렁이를 잡아서 포대에 넣어요. 숲으로 방생하죠. 그냥 잠깐도 아니고, 얼마나 오래 보여주는지 몰라요. 뱀이 새를 죽여서 둘둘 말고 있네요. 호주에서 일어난 일이래요. 남의 나라 뱀선생 새 먹는 이야기까지 뉴스로 나와요. 부인이 상간녀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군요. 내내 굶어서 앙상한 개들이 구출되고요. 살인 현장에서 살인자들이 사건을 다시 재현해요. 얼굴을 다 드러내고요. 뉴스가 아예 동물농장이고, 피와 치정이 얽혀 있어요. 정치 이야기는 적어요. 아예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뉴스죠. 비리와 불의가 태국이라고 판치지 않겠어요? 말랑말랑한 뉴스로 국민들을 우롱하는군요. 우리나라는 얼마나 치열한가요? 철저하게 공정해지겠다며 뼈가 보일 때까지 물어뜯는군요. 정의를 위해서요. 나 하나 잘 되려고 이러나요? 게거품 물고 흥분하면 우리 새끼들이라도 더 잘 살겠죠. 그 마음으로 정의를 외치고, 목소리를 높이는 거잖아요. 공정한 세상이 되어야, 내 아이가 서럽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비겁하게도 머리가 아파요. 타이레놀이 필요해요. 살기등등 정의로운 사람으로 꽉 찬 페이스북이 무서워요. 태국 TV 바보 쇼가 편하네요. 내 방에 뱀이 안 들어와서 좋아요. 바람난 남편 뉴스가 어이가 없네요. 저는 웃으면서 봐요.


아픈 시간은 제게 소중해요. 불안하지 않아요. 이미 아프기 때문이죠. 아플까 봐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이미 아프니까요. 언제쯤 몸살이 끝날까? 그런 걱정도 안 해요. 아프기 바빠서요. 걱정할 여유가 없어요. 너무 아프면 죽겠죠. 대충 아프면 낫겠죠. 말도 못 하게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서는요. 쌀국수를 먹어요. 쏨땀을 먹죠. 역시 맛있어요. 그리워했던 딱 그 맛이로군요. 낮게 깔리는 열대의 온기가 멍청하고, 약간은 달달해요. 모든 순간은 느리고, 저는 조금씩 닳고 있죠. 제가 사는 곳은 교통 체증이 엄청나요. 제 책에도 여기 맛집을 여러 곳 소개했는데요. 출퇴근 시간에는 오지 마세요. 차가 아예 서 있더군요. 느긋한 태국 사람들이 이사를 갈 정도로요. 우리나라 교통 체증 생각하시면 안 돼요. 2,30분을 그냥 서있는다니까요. 집이 바로 코앞인 도로에서요. 맛집들도 많이 생겼어요. 방콕에서도 이만큼 맛집이 즐비한 거리는 드물죠. 집 앞만 걸어도 외롭지 않아요. 소란스럽지만, 선을 지켜요.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죠.


9월의 첫날이네요. 가장 좋아하는 태국에 있어요. 너무나 가고 싶었던 조지아를 다녀왔죠. 소원을 이루고, 소원에 와 있어요. 행복해야 마땅하지만, 갑자기 다급해져서는 남은 석 달을 궁리해요. 책을 내자, 돈을 벌자. 발버둥 칠일만 생각해요. 소원은 이룰 때까지만요. 이후론 쓸모가 없어요. 제가 부럽나요? 그래요. 자유로우니까요.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제가 걱정되나요? 아프니까요. 가난하니까요. 모든 부러움과 걱정이 팽팽해져서 저는 0이로운요. 총량은 같지 않을까요? 어디에 있건, 얼마나 가지고 있건요. 내일쯤 이 몸살이 싹 사라지면, 약간은 서운한 채로 하루, 하루를 살래요. 쌩쌩해졌으니까 백 살, 이백 살 살 것처럼 고민할게요. 오늘은 아늑하게 아플게요. 빈둥빈둥. 식은땀도 조금씩 흘려가면서요. 머리에 열이 많이 내렸네요. 생각보다 쓸만한 몸뚱이네요. 실망스럽게 쌩쌩해지겠군요. 쳇!


PS 매일 글을 써요. 그게 저를 어딘가로 이끌어줄 것 같아요. 중국 여행 중에요. 티베트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는 걸 봤어요. 무심하게, 바닥에 엎어져서는요. 조금씩 앞으로 가더군요. 저도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글을 쓰죠. 가까운 도서관에 박민우 책이 있나요? 제 책을 추천해 주세요. 그만큼 많은 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어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를 합니다. 정말 행복한 방콕 여행이 되겠군요. 이 책만 있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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