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방콕,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자유로워지는 방식

by 박민우
20190907_095624.jpg

건강해졌어요. 빠른 속도로요. 신기해요. 한국이 안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요. 방콕에 오고 싶었던 이유가, 살기 위해서였을까요? The 의선 한의원 원장님이 보내주신 역류성 식도염 약도 잘 챙겨 먹고 있어요. 감사함을 글로만 전하는 게 민망할 따름이네요. 매일 쌀국수를 먹어요. 태국 쌀국수는 베트남 쌀국수랑 많이 달라요. 태국 쌀국수가 뭐지? 종류가 너무 많아서요. 딱 하나의 이미지로는 불가능해요. 똠얌 쌀국수를 하루에 두 번 먹어요. 똠얌은 시큼하고 매운 국물이란 뜻이에요. 똠얌꿍은 새우가 들어간 시큼하고 매운 국물이란 뜻이죠. 보통 쌀 국숫집에 가면요. 똠얌 국물이 있어요. 똠얌 센렉 타마다. 이렇게 주문해요. 센렉은 가는 면발의 쌀국수죠. 타마다는 보통이란 뜻이고요. 곱빼기를 원하시면 피셋이라 하시고요. 하늘하늘 쌀면이 국물에 촉촉 담겨서는 호로록 입으로 들어가죠. 국물의 시큼함은 라임, 레몬그라스, 베르가못 이파리에서 나와요. 질릴 만도 한데요. 매번 감격하면서 먹어요. 상큼함이 지겹기가 쉽지 않죠. 아예 손을 안 대면 몰라도요. 30밧이었던 국수들은 죄다 40밧으로 올랐네요. 태국 돈이 비싸지기까지 해서요. 우리나라 돈으로 1,500원이네요. 예전엔 1,000원이면 먹었는데요. 태국도 경기가 안 좋아요. 그래도 돈의 가치는 오르네요. 농업국가, 관광 대국 정도로만 알고 있잖아요. 제조 강국이기도 해요. 일본 자동차, 전자제품 공장들이 태국에 많죠. 주변 국가에서 돈 벌러 와요. 공장에서, 식당에서, 농장에서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사람들이 땀 뻘뻘 돈을 벌어요. 고향으로 송금하죠. 태국 사람들은 험한 일 안 해요. 큰 나라입니다. 주변 나라에선 거들먹거린다. 사람 차별한다. 욕도 좀 먹는 나라죠. 오른 물가가 저에겐 적지 않은 타격이죠. 그러려니 해요. 돈이 많다면 더 비싼 걸 먹겠죠. 더 비싼 게, 똠얌 쌀국수보다 더 맛있을까요? 여우의 신포도죠, 뭐. 높은 가지의 포도를 결국 못 따먹고는, 시어 터진 포도잖아. 못 먹기를 잘했다며, 자신을 위로하죠. 여우가 그러고 보니, 포도를 먹나 봐요. 제게는 신포도가 많아졌어요. 비싼 아파트를 보면, 관리비를 생각하고요. 비싼 차를 보면, 보험료를 떠올려요. 갖고 싶은 옷을 보면, 싫증난 일주일 후의 제가 보이죠. 그랬더니요. 소유에 둔감해졌어요. 나만 평화로우면 돼? 아니죠. 부모님 생각도 해야죠. 연로하신 부모님 생활비라도 부쳐드려야죠. 그러고 싶어요. 지금은 그러지 못하잖아요. 죄송하지만요. 죄책감이 하늘을 찌르지는 않아요. 바람직한 아들이 아니에요. 일단 나나 살고 보자. 여유가 없으면 효도도 못 하는 거지. 그게 저예요. 조선 시대 관점으로는 사람 새끼도 아니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요? 부모님의 자랑이고픈 아들이었는데요. 지금도 그러고 싶은데요. 내 처지가, 내 안녕이 더 소중해요. 지금 저는 충분히 행복해요. 한숨 돌렸어요. 몸도 안 아프니까 수명 연장 쿠폰 몇 장을 받은 기분이죠. 여전히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여행기를 처음 읽는 사람도, 오래된 독자도 반갑고, 흥분되는 책이어야 할 텐데요.


그걸 왜 네가 결정해?


나는 글을 전하는 필터일 뿐. 잉크일 뿐. 글은 어차피 태어나야 할 아기 같은 것. 아기의 생김새는 제 영역 밖이죠. 지금의 고민은 그래서 모순이죠. 저는 투명해지면 돼요. 기다리면 돼요. 덧붙일 필요 없죠. 작정할 필요 없어요. 나와야 할 글만 천천히 옮기면 돼요. 실망하는 사람, 하품하는 사람을 떠올려요. 제 책이 그런 책이어선 안돼요. 모순이죠. 제 책이 아니라니까요. 저는 전달자일 뿐이죠. 믿음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 제 의욕이 부질없다는 믿음. 그 뒤에 더 든든하게 지탱하는 큰 흐름. 그 흐름이 답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해요. 내 의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죠. 바른 자세로, 적당한 허기로... 내게 꽂히는 수많은 기대도, 불만도 내 것이 아니니까요. 안달복달은 사족이죠. 매일 일기를 쓰기를 잘했어요. 한결 가볍네요. 글이 완성되어도, 자유여도, 홀가분하지 않을 거니까요. 이 순간 푹 젖지 않는다면, 글은 불편함일 뿐이죠. 머물러야죠. 글 안에서도 자유여야죠. 훨훨 날고, 노래하고, 낮잠도 자야죠. 글에서 나올 때는 아쉽기까지 해야죠. 푸르게 짙어지는 글자의 이파리가 그늘이 돼요. 아늑해져서 걷습니다. 산림욕이네요. 피톤치드 향도 낮게 내려와요. 끝내지 말자. 머무르자. 저의 숙제입니다. 나른해져도 돼요. 쓰기 싫어도 되죠. 제가 쓰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열심히 퍼 나르는 택배 상하차가 될게요. 수많은 허비 뒤에 글이 나왔어요. 늘 그랬으니까요. 순조로운 겁니다. 방콕은 오래간만에 해가 쨍하네요. 나가볼까 봐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제가 조금씩 다가가겠습니다. 여러분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주세요. 동네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있나요? 추천해 주실래요? 세상에 박민우의 글이 눈처럼 내리길 바랍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방콕 가세요? 반가워요. 이 책이 큰 기쁨이 되어줄 겁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민우야,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