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펑펑, 참 지긋지긋한 사랑

글이 나오는 날, 멜랑꼴리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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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시장부터 가요. 비빔국수를 샀어요.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어요. 기름 맛, 간장 맛? 매일 쌀국수만 먹었더니요. 색다른 게 먹고 싶었나 봐요. 쌀국수를 앞으로 더 열심히 사랑하려고요. JTBC에서 하는 비긴 어게인 3을 봐요. 아델의 When we were young. 태연이 부르네요. 찔끔찔끔 눈물이 나다가요. 펑펑 울어요. 이런 가사였구나. 아델의 노래는 상처죠. 떠난 사랑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여자. 많이 까이고, 집착하는 답답한 사람. 매번 찾아온 사랑에 모든 걸 거는 여자일 거예요. 자기를 버린 사랑이 노래가 되죠. 울림이 되죠. 다른 나라 노래들 대부분은 가사를 몰라요. 우리나라 노래도 대부분 그렇네요. 곱씹으며 듣는 노래가 많지 않아요. 흘려듣죠. 가사는 뭉개지는 또 다른 음악이 돼요. 슬픈 노랫말은 슬퍼요. 기쁜 노랫말은 기뻐요. 일일이 낱말을 헤아리지 않아도요. 들리는 만큼으로도 느껴지니까요. 베를린에서 태연이 부른 When we were young은 또박또박 잘도 들리네요. 한국어 자막까지 같이 나오니까요. 눈물샘이 절로 터져요. 남이 볼 때는 울고 싶지 않죠. 보기 싫으니까요. 혼자일 때는요. 횡재한 기분이 들죠. 울고 나면 기분 좋은 허기까지 찾아와요. 조근조근, 또박또박. 한 부분도 흘려 듣지 못하겠네요. 아, 이런 내용이었군요.


남자를 만나요. 우연히요. 아마 남자는 길거리 공연 중이었나 봐요. 여자는 넋 놓고 봐요. 떠난 남자죠. 남자는 멀리 간다고 했어요. 이곳에 있을 리 없는 남자죠. 함께 여름을 품고, 뜨겁게 사랑했던 남자는 노래를 해요. 여자는 노래를 듣죠. 사진을 찍어요. 그때의 '우리'를 회상해요. 뜨거운 사랑은 늘 떠나죠. 어려서가 아니에요. 뜨거워서죠. 곁에 머물 정도로, 적당히 사랑했어야죠. 영원할 줄 알았죠. 달콤함만 보였으니까요. 이제 붙잡을 수 있는 건 없어요. 잠깐의 대화도, 아마 여자는 못했을 거예요. 그냥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다가, 한 마디도 못 덧붙이고 가던 길을 갔겠죠.


노래가 풍경으로 박히네요. 태연의 노래를 듣고, 베를린의 한 남자가 눈물을 흘리네요. 서양 사람들 진짜 잘 못 우네요. 애인 옆에서 가까스로 스며 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요. 그게 뭐냐? 남자는 눈물이지. 저는 보란 듯이 펑펑 웁니다. 같은 방에서 태국 뉴스도 봐요. 맞아 죽은 스물여섯의 여자가 차갑게 누워 있어요. 남편이 때려죽였어요. 자살에 실패한 남자는 또 다른 병상에 누워 있고요. 여자는 얼굴만 모자이크 한 채로 온 몸의 멍까지 샅샅이 보여줘요. 어머니가 이혼하라고 해도, 딸이 싫다고 했대요. 남편을 그렇게 좋아했대요. 좋아질 거야. 나아질 거야. 내 사랑을 알아줄 거야. 믿고, 기다린 아내는 차가운 시체가 됐죠. 남자는 어떤 마음으로 때렸을까요? 화내도, 때려도 매달리는 아내가 지긋지긋했을까요? 집에서나 큰소리치는 천하의 지질이었을까요? 자살은 왜 실패했을까요? 아내를 때리는 그 힘으로, 같은 힘으로 차마 자신을 때리지는 못했군요. 자기를 죽일 놈이 못 되죠. 못 죽이죠. 자신의 목숨은 다르니까요. 타인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이 한없이 다른 새끼죠. 때리는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뭘까요?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끝보다, 더 기가 막히네요. 모든 사랑은 구질구질해요. 우린 아닌데요? 그런 분들은 늘 자축하며 사셔야죠. 모든 사랑은 지랄 맞고, 누더기고, 비참해요. 마약 같은 찰나의 빛으로 전체를 오해하죠. 이제 곧 글이 나오려나 봐요.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어요. 청승맞기까지 하네요. 내가 머물렀던 코카서스 땅이 다가오고 있네요. 내가 써야 할 땅이죠. 나쁜 징조로군요. 사실 태연의 노래를 들으며 펑펑 운 이유가요. 내가 보였거든요. 세상을 저주하면서도 자잘한 희망이라도 솎아내려는 저를 봤어요. 조지아에서 어떻게든 저를 응원하며 하루를 채웠죠. 마냥 깔깔대는 책이었으면 하는데요. 펑펑 울기부터 했네요. 뭔가가 나오려는 순간을 여러분께 전해요.


오늘을 쓰겠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를 위한 오체투지입니다. 글을 매일 쓰는 게 쉽지 않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어려워요.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저를 위한 글쓰기죠. 가까운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있나요? 없다면요. 박민우의 책을 추천해 주세요. 좋은 책이거든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홍보하고 있어요. 방콕 가세요. 이 책부터 사세요. 방콕이 인생 여행지가 될 거니까요.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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