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 살의 노화, 도마뱀의 죽음

생로병사의 내 작은 방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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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눈이 뻑뻑해서요. 책상 위에 있는 아로나민 아이를 한 알 먹어요. 영양제를 마치 소화제처럼요. 급한 불을 끄려고 먹어요. 이제 두 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못 앉아 있어요. 유튜브를 보고, 드라마를 보는 것도 마흔일곱까지만일지도 모르겠어요. 눈이 나빠지는 거야 안경을 쓸 때부터 알았지만, 오래 볼 수 없다는 건 사십 대가 되어서 알았어요. 노화는 모두 첫 경험뿐이네요. 이가 시려서 비비빅을 한 번에 못 깨물고, 속이 잘 부대끼니까 밀가루 음식이 두려워요. 눈의 흰자위가 깨끗하지 않고요. 들숨 날숨에서 늙은 냄새가 느껴져요. 하나씩 하나씩 빼앗기는 거죠. 평생 내 건 줄 알았던 것들을 놓아줘야 해요.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놓아주게 되더라고요. 잡히지 않아서니까, 놓치는 거라 해야 하나요? 속상함도 적응이 되면, 다음 속상함을 대비하느라 바빠요. '그러려니'라는 새로운 능력이 저를 지켜주죠. 그러려니 해요. 궤변 같기는 한데, 너무 여전하면요. 삶의 미련이 짐이 될 것 같아요. 억지 비유까지 덧붙이자면요. 신발 벗고 들어가는 식당에서요. 프라다 운동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안절부절못하던 친구가 떠올라요. 잊어버릴까 봐요. 결국 봉지에 담아서 옆에 놓고 밥을 먹더군요. 프라다 주인만 가장 꼴 보기 싫어진 거죠. 가진 게 많을수록 두려움이 많아지는 거겠죠? 여전히 건강하고, 절대 동안을 가진 이들이 부럽죠. 어쩜 저렇게 여전히 멋질까요? 저는 허물어져가는 걸 아니까, 그럭저럭 대비가 돼요. 있는 거라도 잘 챙겨야죠. 멀쩡한 부분이라도 열심히 써야죠. 이제 글을 쓸 때만 노트북을 펼칠까 봐요. 그게 참 안 돼요. 세상이 궁금하고요. 노트북만 펼치면 당장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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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 도마뱀이 까맣게 죽어 있네요. 손가락 길이의 작은 도마뱀인데요. 태국 사람들은 찡쪽이라고 해요. 처음엔 저도 징그러웠죠. 이게 바퀴벌레를 다 먹어치워요. 1년 전부터 한 마리가 주방 냉장고 뒤에서 웅크리고 있어요. 죽었을 거야. 찜찜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너무 오래 안 보였으니까요. 설아 있는 거예요. 얼마 전에 주방 싱크대 물을 마시려고 기어 나왔더라고요. 세상에! 생명이 이렇게 모질어요. 신비롭죠. 친구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요. 현관 밖에서 웅크리고 있는 새 식구를 봤을 땐, 믿을 수가 없었죠. 그것도 두 마리가요. 어서 와라. 저는 손바닥으로 휘휘 밀듯이, 두 마리를 입주시켰죠. 한 마리가 까맣게 말라서 죽었네요. 애초에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더라니요. 욕실 문이 나무 문인데요. 처음 보는 분들은 기절할 정도로 낡았어요. 나무 문 아래쪽이 물기로 너덜너덜, 눅눅해져 있죠.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더라고요. 빼내려고 해도 안 나오더니요. 오늘 까맣게 말라서 주방에서 굳어 있네요. 확신했던 인연이 까맣게 죽어 버렸어요. 모든 생명은 다 저처럼, 자기 목숨이 대단히 소중할까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무심했으면 좋겠어요. 동물이니까 덜 섬세하고, 덜 복잡했으면 좋겠어요. 젖은 나무문이 안락했던 거겠죠? 제가 두려워서 스스로를 감금했던 건 아니겠죠? 작은 방에 저를 가두고 나니, 이 방이 부쩍 커지고 있어요. 비둘기가 더 자주 베란다에 똥을 누고 가요.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듬뿍 넣어서 빨래를 했고요. 발 걸레는 햇볕에 오래오래 말려두려고요. 하지 않던 일을 더 열심히 챙겨요. 글을 안 쓸 핑계를 만들죠. 고요하고, 고립된 세상에 갇혀서 느긋하게 허비하고 있어요. 제가 글 좀 못 쓴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지 않아요. 바람이 불던 곳은, 휘파람만 불어도 돼요. 도마뱀은 휴지에 돌돌 말아서 비닐봉지에 넣었어요. 쓰레기통에 버려야죠. 생명이었나요? 이렇게 딱딱한데요. 손에 닿지 않으려고 바르르 떠는 제가, 도마뱀은 서운할까요?


PS 매일 글을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작아지고, 낮아지고, 대신 멀리 퍼지는 글쟁이가 되고 싶어요. 박민우의 책이 전국의 모든 도서관에 꽂혀 있었으면 해요. 그러니까요. 가까운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없다면, 신청해 주세요. 저의 꿈을 도와주세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방콕 여행을 계획 중이신가요? 인생 여행이 되실 겁니다. 이 책을 가지고 가시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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