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지속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
태국 사람들은 용서가 너무 쉬워요. 제가 다 분통이 터지죠. 자기 아들이 차에 치여 죽었어요. 운전 부주의로 죽은 거죠. 운전자 이 놈아, 머리 깎고 스님 되면 용서하겠다. 평생 스님이 되라는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스님이 되어서 죄를 뉘우치라는 거죠. 피 같은 새끼를 잃은 부모가, 살인자에게 내건 조건이죠. 불심도 좋다만, 말이 되나요? 내 새끼가 이 세상에 없으면, 죽인 놈도 피눈물을 흘려야죠. 평생 감방에서 썩어야죠. 그런 상식적인 분노가, 원한이 태국 사람들에겐 참 적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터졌네요.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자가 사망한 사건이에요. 같은 유흥업에 종사하는 남자가 여자를 등에 업고 나가는 게 CC TV에 찍혔네요. 남자는 취한 여자를 강간하려고 했던 거겠죠. 여자는 변사체로 발견되고요. 남자는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장면이 뉴스에 나와요. 술에 취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죽은 건 몰랐다. 남자는 억울해합니다. 살인자일 수도 있는, 최소한 강간범일 게 뻔한 남자는 뉘우치는 기색이 없어요. 심지어 경찰과 웃고 있네요. 용서와 이해를 구할 자격이 없는 놈이로군요. 장례식 장면이 이어져요. 죽은 여자는 딸도 있는 엄마였네요. 장례식장에서요. 친구들이 딸과 함께 생일 케이크 촛불을 꺼요. 사망한 다음날이 그녀의 생일이었던 거죠. 장례식장 분위기는 참으로 해맑네요. 더 슬퍼야죠. 생일 전날 어처구니없이 죽은 건데요. 아기는 어쩌나요? 엄마 없이 자랄 아기만 봐도 눈물이 쏟아져야 하잖아요. 친구들이 핏덩이 딸과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뇨?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 불교 국가라서일까요? 삶과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라 믿는 걸까요?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요. 막상 눈앞에서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어야 하잖아요. 왜 태국 사람들은 짧게 울고, 길게 웃을까요? 그들이라고 목숨이 사사로운 건 아닐 텐데요. 잘 잊고, 잘 용서하는 태국 사람들이 전 이상해요. 지금도 전 욱할 때가 있어요. 내게 막 대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려요. 군대에서 나를 개돼지 취급했던 간부들 새끼(이등병인 내가 말실수를 했다며 병장까지 군장 싸서 돌게 했죠), 결혼식 뷔페에서 화장실 다녀온 나를 입장권도 없이 얻어먹으러 온 거지인 줄 알고 막았던 그 연놈(아무리 설명해도 꺼지라고 하더군요), 이란에서 나보고 못 생겼다며 낄낄대던 고등학생. 다 잊지 않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복수하고 싶어요. 무릎 꿇고 비는 걸 보고 싶어요. 나는 나를 위해 분노해요. 그게 나를 지키는 거니까요. 태국 사람들은 자신을 지킬 의지가 없는 사람이네요.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죠. 그들이 악의 방조자죠. 그들의 평화는 단단히 잘못됐군요. 제가 더 잘 사는 거죠? 저는 지금도 그들을 찾아가서, 내게 왜 그랬냐고 따질 용의가 있어요. 나를 비참하게 했던, 개잡놈 백 명이 내 안에 살죠. 가끔씩 불쑥 등장해요. 줄어들지는 않겠죠. 용서하지 않았으니까요. 잘들 자라고 있어요. 무럭무럭, 쑥쑥. 이를 바득바득 가는 내가 옳은 거죠. 세상은 저 같은 사람으로 가득 차야 해요. 이를 악물고, 내 과거에 대해 짖고 있어야죠. 그놈들이 망하고, 비참해지는 꼴을 봐야 해요. 그전까지는 내 안에서 열심히 키울 거예요. 내 분노는, 내 원한은 소중하게 키워질 거라고요. 내 분노의 정원이 만발하고 있어요. 숲이 되고 있죠. 나의 빽빽한 밀림을 본받으세요. 미움의 숲이 그토록 빈약하고, 초라한 태국 사람들아.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오체투지입니다. 매일 글 하나로, 단 한 명에게 더 다가가고 싶어요. 가까운 공공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을 추천해 주세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방콕 여행의 필독서라면서요? 네, 방콕 여행이 두 배는 행복해지는 책 맞아요.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