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이 착해 빠지면 이루어지는 일
태국 남자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빵 굽는 걸 배우고 싶었죠. 회사에 사직서도 내고, 수속까지 다 밟았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요.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직장 생활을 해요. 5남매의 막내예요. 장남 아니고, 막내요. 위로 형 둘, 누나 둘이 엄연히 있죠. 가방끈도 제일 길고, 월급도 많아서였을까요? 매달 고향으로 생활비를 부쳐요. 누나의 딸이 있어요. 조카죠. 조카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두 번째 남자를 만나요. 첫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딸이 올해 대학을 가요. 방 구하는 것부터, 가구, 가전제품까지 이 남자가 다 사요. 엄마의 외삼촌이니까, 할아버지죠. 요즘 같으면 남이죠. 조카가 전남편 아이까지 신경 쓰면 부담스러울 거라면서, 본인이 챙겨요. 나이 오십이 넘도록 결혼을 안 했으니, 본인은 여유가 있다면서요. 그런 여유 있으면 저라면 여행을 가고, 차를 바꾸죠. 네, 제가 지금 수코타이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태국 형님 이야기예요. 몇 년 전에는 어머니가 장염에 걸려서요. 계속 토하니까요. 뭐가 나오는지, 토사물을 일일이 확인하더군요. 오밤중에요. 저라면 일단 병원으로 모시고 갈 텐데요.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화장을 했는데요. 치아가 딱 네 개가 남았더래요. 그걸 4남매가 하나씩 나눠서요. 목걸이를 하더군요. 투명 캡슐 같은 곳에 담아서요.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함부로 놀라지도 못하겠더라고요. 5남매인데요. 왜 네 개만 남았을까요? 이 집 큰 아들이 부모 속을 엄청 썩였어요. 매일 술에 절어 살았죠. 화장을 하는 날도 술에 곯아떨어져서 못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큰 아들 몫이 없었던 거죠. 큰 아들은 뒤늦게 일어나서 엉엉 울었다고 해요. 아버지, 용서하세요. 아버지, 잘못했어요. 제게 주실 치아가 정말 없는 건가요? 잘못했어요. 아버지, 엉엉. 막내아들은 귀농을 준비하면서 더 일이 많아졌죠. 회계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요. 사이사이 땅을 사고, 나무를 사고, 저수지를 파요. 주말이면 5시간 운전을 해서 고향으로 가죠. 먹고살아야죠. 자기만 바라보는 식구들 챙겨야죠. 농장일 챙겨야죠. 조카의 딸까지 챙겨야죠. 월급이 많다고 해도요. 이게 감당이 되겠어요? 매주 복권을 사더군요. 태국 사람들 복권 진짜 환장합니다. 웅덩이에 차가 빠졌는데 사람들이 무사하잖아요. 그러면 차 번호판부터 찍어요. 그 번호가 들어간 복권을 사려고요. 차 번호, 생일, 부모님 기일 등등. 모든 번호는 행운과 연결되죠. 최근에 이 형님이 네 번 연속 당첨되더군요. 우리나라 돈으로 백만 원 안팎의 당첨금을 네 번 받았어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주시는 거라 굳게 믿더군요. 저도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어요. 살아생전에 아버지를 저도 여러 번 봤죠. 이 형님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제가 왜 이 형님 이야기를 하냐면요. 어떤 태도가 정답인가를 되묻게 되기 때문이에요. 저는 저만 생각해요. 한국 부모님은 사실 제가 책임져야죠. 결혼도 못한 제가요. 그런데도 여행하며 살아요. 제가 하고 싶은 것부터 챙기죠. 효도는 나중을 기약해요. 꼭 할 거라는 뻔뻔한 다짐만 하죠. 억울한 일, 손해 보는 일은 누구보다 발끈해요. 공평함이 가장 좋죠. 알게 모르게 받는 혜택은 질끈 눈 감고요. 우리는 시시때때로 스마트폰을 보죠. 페이스북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해요. 이 형님은 cc tv 애플리케이션으로 고향을 봐요. 농장을 보고, 어머니가 식사를 잘 하시나, 잘 주무시나. 그것부터 봐요. 미소를 가득 담고요. 진짜로 재밌어서 보는 사람 표정이죠. 저는 저만 향하고 있기 때문에 허덕이고 있죠. 주변을 챙기는 사람은, 주변까지 챙길 힘이 생기나 봐요. 심지어 저희 부모님까지 챙겨요. 가끔 한국에 올 때 어머니가 좋아하는 꿀만 한 박스를 사 와요. 부모님을 모시고 방콕에 간 적이 있는데요. 월차를 내고 방콕, 아유타야, 후아힌을 돌았죠. 직접 운전까지 하면서요. 저는 꿈도 못 꾸죠. 저부터 챙겨야죠. 저를 위해 돈을 써야죠. 휴일을 써야죠. 나부터 챙겨야 잘 산다. 그게 제 상식이거든요. 이상해요. 남부터 챙기는 사람이 더 잘 살아서요. 세상이 각박해지고요. 견디는 것만으로도 우린 칭찬받아야 해요. 그런데 한편으론, 배려가 힘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질문을 제게 하게 돼요. 도덕책 같은 교훈을 누구보다 의심하는 저는, 이제 그 의심을 풀 때가 되었나 봐요. 나를 지키는 게, 나만 지키는 게 아닌가 봐요. 누군가를 배려하는 게, 누군가만 배려하는 게 아닌가 봐요.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나 봐요. 배려의 힘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저를 낮추고, 세상에 반보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도서관에, 학교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실래요? 저는 신이 나서, 훨씬 더 열심히 살고, 쓰겠습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이란 재미난 도시를, 더 맛나게, 즐겁게 여행하고 싶다면 강추합니다.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