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화장실을 열었더니, 누가 있네요. 재빨리 문을 닫아요.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방으로 돌아와요. 제가 묵고 있는 수코타이 집은요. 생각해보니 특이하네요. 지금은 5남매 중 4남매가 있어요. 다들 혼자죠. 이혼을 하거나, 사별을 했어요. 고향으로 돌아와서 여든의 노모와 함께 지네요. 평화롭고 안정적으로요. 방콕에서 성공한 막내아들이 없었다면, 이런 안정감은 힘들었겠죠. 화장실에 있던 사람은 큰 아들이에요. 간경화 말기 환자죠. 젊을 때 그렇게 부모님 속을 썩였대요. 아파서 고향으로 내려왔으면, 술은 끊었어야죠. 가족들이 그렇게 말려도 몰래몰래 술을 마시더니요. 이젠 배가 산모처럼 부풀었어요. 두 번 병원 가서 복수에 찬 물을 뺐죠. 그런데도 또 저렇게 부풀어 버렸어요. 뼈와 피부 사이에 살이 없어요. 나이를 먹고, 많이 아프면 사람들 얼굴이 비슷해져요. 미라처럼요. 제가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민우. 제 이름을 불렀어요. 제 이름을 기억하네요. 저는 이름까지 외우지는 못했거든요. 큰 형님은 매일 누워 있어요. 35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이불을 돌돌 말고요. 첫날엔 아픈 사람을 곁에 두고 뭘 먹는 것도, TV를 보는 것도 불편하더니요. 이젠 자연스러워졌어요. 아픈 사람은 선배죠. 우리도 그렇게 될 거예요. 피부와 뼈 사이에 수분이 모두 사라지고요. 다 똑같은 쌍둥이 얼굴로, 공평하게 죽을 텐데요. 죽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다르죠. 후회 없이 살고, 후회 없이 죽는 사람도 있겠죠. 내내 기도 펴지 못하고, 별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죽는 사람도 있겠고요. 중고등학교 때요. 잠만 자는 친구들이 늘 있었죠. 우리 때는 노골적으로 잘 수는 없었어요.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운동부 친구들, 날라리 애들이 맨 뒤에서 엎드려 잘 수 있었죠. 아예 자지도 못하고, 듣는 척이라도 해야 했죠. 종일 억지로 듣는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해요. 저도 수학에서 통계라든지, 물리, 화학은 전혀 못 알아듣겠더군요. 그래도 선생님 눈을 뚫어져라 보고 있어야 해요. 무서우니까요. 그래야만 하는 건 줄 알았으니까요. 다른 선택지가 없잖아요. 그래도 저는 함수라든지, 확률은 이해라도 했죠. 국어 시간은 재밌기라도 했죠. 대부분을 못 알아듣는 친구들에겐, 이게 얼마나 잔인한 폭력인가요. 그런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애를 쓰는 게 아니라요. 그냥 있어야 하는 거예요. 복종을 강요당하면서요. 복수가 찬 몸으로 종일 누워있는 이 집의 큰 아들은 그림을 그렇게 좋아했대요. 태국 시골 촌구석에서 그림으로 먹고살 수가 있었겠어요? 그림을 포기하고, 수업 시간에 늘 앉아만 있다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렸죠. 말하기 쉬워서 나쁜 친구들이지. 나쁜 친구들이 나쁜 친구들이겠어요? 가난하고, 배운 거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예외적으로 영특한 아이들에게는 기회겠지만,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수학은, 영어는, 물리는 어렵기만 한 거잖아요. 그런 아이들끼리 모이면 반칙과 반항을 꿈꾸게 되죠. 자신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말 잘 듣는 노예가 되고 싶을까요? 문제를 일으키고, 더욱더 고립되고, 고립된 공간의 유일한 낙인 술을 찾게 되죠. 이제 그 세상도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아요. 다들 살아요. 이런, 저런 선택은 불가능했죠. 다들 죽어요. 이런, 저런 선택은 여전히 불가능해요. 우리는 곧잘 정의롭고, 쉽게 흥분하죠. 아예 박탈된 사람들은 조용해요. 있어도 없어요. 그들은 세상의 휩쓸림이 낯설어요. 전혀 상관없죠. 그들의 침묵이 아파야 해요. 떠드는 우리들은요. 그래도 먹고살만한 거예요. 뭐라도 가진 거죠. 어떤 혜택이라도 받은 사람들이에요. 정말 정말 조용한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조금은 숙연해질 필요도 있겠어요. 아파도 아픈 줄 모르는 사람들은요. 아픈 게 늘 당연했 거든요. 화가 나 있는 우리는, 우리의 당당함이 사실은 큰 빚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쟁이의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는 글쟁이가 되고 싶어요. 가까운 도서관, 학교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세요. 저는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거죠.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행복한 방콕 여행에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