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태국 배우의 자살

타인의 죽음은 산 자에겐 질문이 된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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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깜짝깜짝 놀라요. 촛불 시위 이야기를 썼더니요. 응원의 댓글부터, 그런 글 쓰지 말라는 댓글까지. 후끈하더군요. 왜, 심장이 벌렁대는 걸까요? 누군가와 말싸움이라도 할까봐요. 내가 더 옳아. 흥분할까 봐요. 글쟁이가 뭐라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나. 억울하기도 하고, 나도 공인 어쩌고 부류에 들어가나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종일 두근거렸어요. 응원과 욕을 번갈아 보면서요. 어쩌면 이리도 제가 소중할까요? 새삼스럽게 자기애에 놀랍니다. 애지중지하는 제가 상처라도 받을까 봐, 심장이 벌렁대요. 입 다물고 사는 게 꼭 편하지만은 않아서 한 마디 했다가요. 다들 좋은 세상을 원하는 거니까요. 시각이 다를 뿐인 거니까요. 그것만 잊지 말자고요. 그렇다면 답은 함께 찾을 수 있는 거니까요.


다이내믹 태국은 오토바이 헤드 라이트에 쥐가 새끼를 낳았네요. 진짜 쥐의 새끼네요. 투명한 공간에서 눈도 못 뜬 쥐새끼들을 보니까요. 쥐라서 마냥 징그러워하는 제가 너무 매정하네요. 눈도 못 뜬 예쁜 생명체를 보면서 말이죠. 폰카로 서둘러 TV 화면부터 찍는 제가 좀 웃기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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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파는 리어카를 보면 웃음부터 나요. 빈 공터만 그대로 놔둬도 잡초들이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몰라요. 풀떼기 천지죠. 여기도 풀떼기, 저기도 풀떼기. 도시여도, 골목골목은 나무와 풀들로 무성해요. 그래도 또 저렇게 화분을 사요. 꽃을 심어요. 태국 사람들에겐 분명 우리와 다른 시신경이 존재할 거예요. 연둣빛 하나로도 열 개 이상의 색을 구별해내지 않을까요? 환한 연두, 짙은 연두, 옅은 연두, 묽은 연두, 노란 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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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오른쪽 샵에서 머리를 깎으려고 했어요. 왼쪽은 그전 단골집이었고요. 오른쪽에 새로운 남자가 끝내주게 잘 깎아서요. 왼쪽을 지나쳐야 하니까요. 얼마나 눈치가 보이겠어요.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거든요. 저는 길 건너편에서 오른쪽 지점까지 가서, 건너요. 그래야, 들키지 않으니까요. 오늘은 방심하고요. 처음 미용실을 지나쳐요. 그때 주인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 버리고 말죠. 에라 모르겠다. 두 번째 가게로 가요. 기다리는 사람이 좀 많네요. 눈 질끈 감고, 옛 단골집으로 들어가요. 아주머니가 저를 기억하고요. 땡큐, 땡큐. 영어로 땡큐합니다. 우리 가게를 배신했지만, 언제나 반갑구려, 손님. 아주머니 표정이 마냥 해맑아요. 그러니까요. 저만 혼자 난리였던 거죠. 어쭙잖은 죄책감에 주눅 들었던 거죠. 마찬가지죠. 나를 어떻게 볼까? 글을 올릴 때마다 생각이 많아지죠.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요. 언제나 반갑거나, 언제나 무관심하거나겠죠. 언제나 너는 싫어. 그런 사람은 없겠죠. 그런 사람이 제 글을 굳이 찾아 읽겠어요? 무덤덤하거나, 반가운 글일 수밖에요. 뭐죠? 셀프 위로가 이렇게도 효과적이어도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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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질 잎으로 차를 끓여 마셔요. 몸에도 좋다고 해서요. 향이 참 좋아요. 태국 바질 아시나요? 이걸로 보통 볶음밥을 많이 해 먹어요. 크라빠오 무쌉이라고 요. 달걀 하나 올린 가장 흔한 태국식 볶음밥이죠. 저는 그걸로 차를 우려서 마셔요. 백이면 백이 다 좋아할 향은 아닌데요. 저는 좋네요. 아이고, 향긋해라. 사진은 그래 놓고 그냥 풀떼기네요. 시장의 풀떼기 모음. 좀 눈 부시지 않나요?


잘 생긴 태국 남자 배우가 자살을 했어요. 애인이랑 같이 있다가, 충동적으로 목을 맸어요. 아침에 장례식 장면을 봤어요. 그런데 저녁에 퀴즈쇼에 나오는 거예요. 고인이 등장하는 퀴즈쇼라뇨? 우리나라라면 방송이 안됐겠죠. 태국 친구랑 같이 보다가요. 태국 친구가 소름 끼쳐하네요. 철자 몇 개를 걷어내고, 단어를 맞히는 형식인데요. 답이 자살이었어요.


-자살


맞혔어요. 출연자는 좋아해요. 그 방송을 녹화하고, 진짜 자살을 해요. 그걸 맞힐 때,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살은 운명이다. 그랬을까요? 퀴즈는 창(코끼리란 뜻이에요) 맥주가 공식 스폰서인데요. 모든 출연자들에게 물어요. 그 친구는 짧게, 성의 없이 답하고 지나쳐요. 이 남자는 친구 보증 때문에 자살했어요. 보증을 잘못 서서요. 친구 빚을 뒤집어쓴 거죠. 친구와 자살. 한 배우를 자살로 몰아넣었다고 해되 될 정도네요. 그런데도 당당히 방영을 해요. 삶도, 죽음도 대수롭지 않죠. 무슨 현실이 이렇게 억지스럽고, 비현실적인가요? 무거워지지 않으려고요. 제 깜냥으로 걱정한다고, 대비나 되겠어요? 그냥 내일 무사히 눈 뜨면, 감지덕지 살려고요. 눈이 덜 피로하면, 감사합니다. 조아리고, 툭탁툭탁 글 쓰려고요. 저는 글쟁이니까요.


PS 매일 글을 써요. 글쟁이 박민우는 이게 오체투지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세상 끝까지 닿고 싶습니다. 가까운 학교,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세요. 저의 오체투지에 동참해 주시겠어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방콕에 가도, 가지 않아도 이 책이 무척이나 반가울 거예요. 그런 책이 아니라면, 세상에 내놓지 않았겠죠. 저, 한 자존심 하는 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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