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건 작가의 <여행이 말할 수 있다면> 강추합니다.

끓는 열정을 참으로 오래 쏟아부은 책이니까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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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건 작가와 어떻게 만났더라? 가물가물하네요. 종로에서 만났어요. 그건 확실해요. 어디서 만날까요. 서로 공손히 상대방의 취향, 동선을 배려했죠. 외국에 머무르니까, 아무래도 서울 사는 문작가가 잘 알겠죠. 제가 거듭 문작가의 취향에 맞추겠다 했죠. 종로에서 보재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는 문작가의 눈만 쳐다봐요. 아는 곳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눈에 띄는 국밥집이었나? 뭐, 그런 곳엘 가서 술도 한 잔 하고, 먹고 그랬어요. 눈치가 없는 사람 맞죠? 본인이 만나자고 해서 이루어진 만남인데요. 저라면 맛집 몇 군데라도 검색해 뒀을 텐데요. 말투나, 느낌이 워낙 선량해서 어린 왕자 같기도 했어요. 눈치 없는 어린 왕자. 문작가 덕에 여러 번 만났어요. 인연이란 게 확실히 있기는 한가 봐요. 서울시 청년허브와 함께 했던 행사는 같이 진행하기도 했죠. 추석 때 고향이 부담스러운, 혹은 못 가는 청춘들과 이태원에서 1박 2일 여행 놀이를 했었죠. 문작가가 궂은일은 도맡아 해 줬어요. 돈 계산이라든지, 필요한 물품 조달이라든지요. 어찌나 빠릿빠릿, 능숙한지 몰라요. 해방촌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광장시장 쪽에서 내렸어요. 버스 카드를 안 찍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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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는 거였어요? 어쩐지 버스비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하하하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으뜸으로 멍청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나중에 만나서 또 그 이야기를 꺼냈죠. 환승이 아니면 안 찍어도, 요금이 같나 봐요. 그걸 미적미적 돌려가며 이야기하더라고요. 광장시장에서도 제가 당황할까 봐 바보연기를 했던 거죠. 혼자 배려하고, 겸손하고. 정말 재수 없는 인간이로군요. 경제 관련 전공이라, 탄탄한 직장을 다녔을 거라 짐작해요. 촌스럽게 꼬치꼬치 묻진 않았지만요. 때려치우고, 장기 여행자, 여행작가로 살아요. 그런 사람이 너무 흔해졌나요?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가치가 내려가면 안 되죠. <소소하게 여행 중독>이란 그의 첫 책을 보면서 몇 번은 큰 소리로 웃었네요. 대놓고 웃긴 책은 아닌데, 저보다 더 지질한 삶을 담담하게 털어놓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나의 지질함을 볼 때 이런 쾌감이었겠구나. 궁상도, 그런 궁상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결은 저와 많이 달라서, 지그시 주변의 공기를 제압하고, 천천히 써 내려간 흔적이 역력하더군요. 공감도 하고, 감동도 하고. 매우 좋게 읽었어요.


그의 새 책 제목은 <여행이 말할 수 있다면>입니다. 여섯 작가의 여행기를 자신의 시선으로 정리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사이사이 실어요. 감상문으로 그치는 책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도 세상에 내놓기엔 좀 무모한 책이에요. 대놓고 대중적인 작가들도 아니라서요. 문상건이 뽑은 영광의 6인은, 책 판매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네, 저도 그중 한 명이고요.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는 작가인가요. 문작가가 처음 원고를 보낼 때부터, 완성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 책이에요. 원래 계약했던 출판사가 엎어지고, 결국 자기가 차린 출판사에서 낸 책이에요. 돈도 저만큼 없는 친구가요. 열정은 저의 두세 배는 족히 될 거예요. 어떻게든 내고 싶었대요. 자신이 좋아했던 책들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대요. 아이고, 자기 앞가림부터 하시지. 왜 그리 착하고, 열정적이기만 한가요? <여행이 말할 수 있다면>은 여행기를 즐겨 읽는 분들에겐, 굉장한 책이 될 거예요. 깐깐하고, 순수한, 가난하고, 열정이 지나친 작가가 고르고 고른 문장들이 펼쳐져요. 소믈리에가 자기만 마시려고 모아둔 와인 같은 글들이죠. 달이고 달인 진액만 섭취하실 수가 있어요. 좋은 작가들을 재발견하실 수도 있고, 평소 좋아했던 작가들을 재음미하실 수도 있죠. 문작가가 워낙 철이 없어서요. 순수한 힘이 달달하게, 끝까지 이어져요. 그래요. 저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면 문작가도 좋겠고, 문작가가 추천한 6명 중 한 명인 저도 좋겠죠. 남이 몰라줘도 좋으니까, 내 눈에 빛나는 조각상을 빚겠다. 천재 조각가 같은 사람이에요. 천재인 것까지는 모르겠지만(천재는 박민우만, 외우세요), 열정이, 성실이 가장 큰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가 보증할게요. 몇 년간 고치고, 고치고, 엎어지고, 다시 일으켜서, 자기 돈 들여서 인쇄를 끝마친 눈물겨운 책입니다. 그냥 책이 삶이고, 작은 승리입니다. 갖고만 계서도, 의미있는 소장이 될 거예요. 서늘해지기 시작했나요? 좋은 책 한 권씩 업어가세요. 요즘 크로스핏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나 봐요. 잘 생겨졌다고 프로필 사진을 자기 돈으로 찍어서 여기저기 도배하더군요. 진짜 잘 생겨져서, 눈꼴시더군요. 문작가 돈 좀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술 퍼마시고,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게요. 제 말 흘려듣지 마시고요. 저렇게 계속 잘생겨지면, 제가 빈정 상해서 잠 못 잡니다. 농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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