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가의 초대, 방콕, 수채화, 인연

새로운 인연은 늘 설레고, 즐겁죠.

by 박민우
20191005_192155.jpg 이미 팔려 버린 하늘하늘 나무나무한 작품. 저도 돈 있으면 사고 싶었어요.


-작기님, 방콕에서 전시회를 해요. 와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태국 화가, 한국 화가가 함께 수채화 전시회를 연대요. 방콕에서요. 사실 좀 가기 싫어지더군요. 저만 그런가요? 막상 약속 당일이 되면 안 가고 싶어요. 아무래도 불편하겠죠?


-오늘, 여섯 시 맞나요?


일단 메시지를 보냅니다. 아무런 답이 없거나, 연기됐거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내심 그러기를 바랍니다.


-네, 맞아요. 작가님


맞답니다. 그럼, 가야죠. 일단 저는 운동을 합니다. 뜀박질을 보통 때보다 열심히 해요. 위장이 늙은 게 아니라, 몸이 그만큼 안 움직여서 이 모양이다. 매일 들쭉날쭉 스스로를 분석하고, 반성하는데요. 소화 장애엔, 운동이 답이란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열심히 뛰고요. 피곤한 채로 약속 장소로 갑니다. 허허. 빈손으로 갈 수는 없죠. 마침 현금이 다 떨어졌어요. 고민이 되는군요. 집 앞 ATM에서 인출하면 수수료만 220밧.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8,600원입니다. 태국 은행들은 외국인들한테 수수료만 삥 듣어도, 그냥 재벌 되는군요. 순진한 외국인들은 돈 몇 푼 바꾸고 이리 큰돈을 상납합니다. 조폭이 따로 없어요. 씨티은행으로 가야죠. 저는 씨티은행 현금 카드가 있어요. 수수료가 훨씬 저렴해요. 대신 ATM 기계가 방콕에 몇 대 없어요. 오토바이 택시 타고, 지하철(MRT) 타고. 차비로 80밧을 썼습니다. 그래도 140밧 아꼈네요. 140밧은 땅 파면 나오나요? 수쿰빗 역에 내려서 돈을 5천 밧을 인출해요. 전 재산이 60만 원대로 홀쭉해지는군요. 또, 심장이 철렁. 80만 원 있을 때랑은 또 다릅니다. 이 돈이 곧 3,40만 원대로 쪼그라들면 저는 또 성자가 돼요. 무서울 게 없어지죠. 뭐든 하는 저돌적인 성자가 됩니다. 그때의 저를 기다립니다. 돈을 뽑고 보니, 시티은행도 공짜는 아니었어요. 1달러 수수료에 또 몇 %를 떼 가요. 결과적으로 80밧 정도 아꼈네요. 3천 원 정도요. 그 돈은 땅 파면 나오나요. 닥쳐, 박민우. 그놈의 땅 파는 이야기 좀 그만. 80밧을 아끼고, 몹시 피곤해져요.

Screenshot_20191005-172554_Maps.jpg 구글맵의 진화, 세상이 이렇게 빨리 좋아지고 있습니다.어려분

전시회가 열리는 Pochang academy of Arts에 지하철역이 있군요. 그새 지하철 역이 여러 개 생겼어요. 방콕이 내 허락 없이 빛의 속도로 좋아지는군요. 다시 지하철을 타고요. Sam yot이라는 역에 내려요. 다시 구글맵을 켜요. 세상에. AR 기능이 추가된 혁신 구글맵이네요. 구글맵을 켜도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리잖아요. 방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죠. 눈앞 가게와 길을 카메라로 들이대면 알아서 분석해 주네요. 즉 지도가 실제 거리를 다 해석해 줘 버리네요. 아, 짜증 나게 대단해지고, 편리해져 버렸어요. 빈손으로 갈 수 없죠. 꽃가게가 많이 보여서요. 꽃을 사 갈까 하다가요. 실용적인 게 낫겠다 싶어요. 왔던 길 되돌아가서 태국 과자를 몇 개 사요. 수수료 아낀 돈으로 선물을 샀으니까, 저의 하루는 알차고, 또 알차군요. 전시회를 하는 주인공이자, 저를 초대해 준 정레아 작가(Lea jeong)와 드디어 만납니다. 그림을 그리는 분이니까, 좀 까칠할 거야. 예민할 거야. 전혀 아니네요. 첫인상일 뿐이지만, 겁나 서글서글, 편한 거예요. 하지 않아도 될 긴장을 괜히 했어. 억울하기까지 하네요. 세 명의 다른 한국 화가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했죠. 레아님의 남자 친구 로이, 로이의 러시아 친구 니코와도 신나게 떠들어요. 제가 늘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건 그것들이 참 쓸모없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인가 봐요. 결국 반갑고, 신비롭기만 한 인연이잖아요. 예술의 위대함을 나이를 먹으면서 더 실감해요. 논리나 계산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신들의 영역이 그림이고, 음악이고, 춤이죠. 정레아 작가는 그림을 시작한 지 채 3년이 안 됐대요. 암인 줄 알고 조직 검사까지 받고, 결국 무사하긴 했지만, 그 순간이 자신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대요. 이런 대단한 그림들이 3년 차 화가의 손에서 나올 수 있었다니요. 상식이 파괴되는 곳에 예술이 있다니까요. 2차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걸 사양하고, 저는 집으로 와요. 피곤하기도 하고, 집이랑 너무 멀기도 해서요. 그래도요. 뭔가 발전하기는 했어요. 마스크팩도 안 하고, 머리에 젤도 안 바르고 갔죠. 그냥 깨끗한 옷만 입고 갔어요. 늘, 내 꼬락서니가 어떤가에 전전긍긍하는 편인데요. 이것도 한 때인가 봐요. 그 한 때가 좀 오래가기는 했지만, 이제 슬슬 자유로워지려나 봐요. 그러니까 만나야 해요. 숨는 것보다는 만남 속에서 뭐라도 하나 더 건지죠. 간만의 외출은 몹시도 즐거웠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글로 매일 1cm씩 다가가고 싶어요. 그 1cm가 쌓여서 결국 지구를 덮는 거죠. 너무 허황된 욕심인가요? 왜요? 전 허황될수록 재밌어요. 재미없는 꿈보다, 재미있는 허황됨이 좋아요. 가까운 도서관, 학교에 박민우의 책을 추천해 주세요. 허황된 꿈이 이루어지게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에 가도, 가지 않아도 이 책이 큰 즐거움이 될 거예요. 저를 믿으시고, 헤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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