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새끼를 뜯어먹는 어미 쥐

공포가 우리를 말려 죽일 수도 있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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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챕터 네 개를 끝낸다. 사실 매일 한 개도 못 끝내고 있어요. 코카서스 여행기를 쓰는 중인데요. 언제나처럼 생각보다 느려지고 있죠. 더 느려지면, 저는 어쩌면 방콕에 갇히겠죠. 돌아갈 비행기표도 못 살 테니까요. 그런 순간도 괜찮아요. 아니, 그런 순간을 기다려요. 아직 똥줄이 덜 탄 거죠. 글이 안 써지네. 쓸 기분이 아니네. 배부른 소리나 하고 앉아있죠. 아, 월요일이네요. 토요일, 일요일 공쳤으니 오늘은 화끈하게 써보는 거야. 아침부터 노트북을 켜고요. 그만, 그만 인터넷으로 뉴스부터 클릭을 하네요.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요. 십자가형으로 꽉 채워진 군중들에 감탄하다가요. 조국 물러나라. 단호한 이들이 네이버 검색어 1위를 만드는 현장을 목격하다가요. 그런 사람이 엄청 많다는 사실에 혼란스럽다가요. 주방에 있는 김 과자 봉지를 뜯어요. 치즈맛이 새로 나왔네요. 태국에서 김 과자 좀 드셔 보셨죠? 우리나라 김 과자와는 또 달라요. 두툼하면서, 거칠어요. 미친 듯이 바삭합니다. 안 드셔 보신 분들은 꼭 드셔 보세요. 맥주 안주로 이만한 거 없어요. 치즈 김 과자를 한 봉지 다 먹고요. 오리지널을 또 한 봉지 뜯어요. 배가 안 고파요. 아니, 사실은 약간 체기도 있어요. 그런데 또 한 봉지를 입에다가 마구 욱여넣어요. 글이 안 써지는 공포가 50%,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50%. 김 과자를 마구 씹는데, 맛은 못 느끼고 있어요. 당분간 정치 뉴스를 안 볼까 봐요. 페이스북도 닫고요. 검찰이 개혁이 된다고 한들, 저는 배가 고픈 글쟁이일 뿐인데요. 조국이 물러난다고 한들, 나와는 큰 상관도 없을 텐데요. 그런데도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입이 바짝 말라요. 자신들의 정의가 구축되는 과정이 궁금해요. 저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생각해 봐요. 너무도 당연했던 악, 독재 정권. 독재 정권과 싸우던 시대, 또래라면 이견이 없었죠. 독재정권이 영원할 줄 알았어요. 김대중,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될 땐, 기적 같았죠. 순리대로 가는구나 안심했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때도, 그렇게 놀라지 않았어요.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나라를 엄청나게 부유하게 만들어만 준다면야. 순진하게 믿었죠. 아아, 자금 제가 더 옳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김을 우걱우걱 씹어댔다고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어요. 카니발리즘에 대한 거였죠. 동족을 죽이는 걸 카니발리즘이라고 하죠. 동물 세상도 카니발리즘이 있어요. 약하다 싶으면, 같은 동물을 먹어 버려요. 심지어 새끼까지도요. 어미 쥐가 고개를 들이미는 고양이를 보며 꼿꼿하게 굳어요. 고양이는 어미쥐와 새끼 쥐가 사는 구멍으로 어떻게든 들어가려 하죠. 꼿꼿하게 굳은 어미쥐 가요. 갑자기 새끼를 물더니, 뜯어먹어요. 극한의 공포가 만든 비극이죠. 동물은 인간의 계산이나 이기심이 없는, 궁극의 균형이다. 이런 환상을 가지고 있던 저는 충격을 받아요. 자기 새끼를 뜯어먹는 균형이라뇨? 공포는 가장 외롭고, 두려운 감정이 아닐까요?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욕망이, 제압당하면 끝장이라는 두려움이, 공포를 조장하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우리 부모님이고, 조카고, 아들이고, 이모잖아요. 뉴스에 등장하는 어마어마한 군중, 그들의 기싸움으로만 볼 게 아니라요. 잊지만 말자고요. 우린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거라고요. 상대방을 따뜻하게 격려해줄 의외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쉽지는 않아요. 저에게도요. 아니, 이렇게 몰아가는 게 정말 안 보여? 그런 생각에 답답해요. 제가 조급하고, 어리기 때문일 겁니다. 세대 간의 갈등, 누가 풀겠어요? 우리가 풀어야죠. 다그쳐서 풀리는 건 아니죠. 따뜻하게, 볕을 쪼여주는 글쟁이가 되고 싶습니다. 사실 저를 위해서라도요. 제일 큰 김 과자 봉지는 뜯지 않겠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쟁이의 소소한 오체투지입니다. 저를 낮추고, 멀리, 멀리 닿고 싶어요. 저의 책이 세상 모든 학교와 도서관에 꽂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시면 가능해요. 박민우의 책들을 도서관, 학교에 신청해 주세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 여행자들의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제 입으로 굳이, 떠벌립니다. 저는 글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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