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지만 말라고 - 후배와의 다툼

내 인간관계는 점점 말라 가는 나뭇가지

by 박민우
20190401_183206.jpg 올해 4월 순천 어디쯤에서 광주로 넘어갈 때의 풍경

이 놈 새끼와는 자주 얼굴을 붉혔어요. 이십 년 이상 된 인연이죠. 평소에도 말을 툭툭 내뱉듯이 하는 아이죠. 몇 안 되는 시시껄렁 농담을 주고받는 놈 중 하나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운 인연은 전무하다시피 해요. 죽이 척척 맞아도, 지속할 연료가 부족해요. 시답잖은 농담을 가끔은 주고받고 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나이가 아니니까요. 메시지 하나 보내려고 해도 생각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몰라요. 남은 인연은 그래서 더 소중하죠. 어젯밤에 이 놈 새끼와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얘가 또 말을 툭 내뱉네요.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죠. 너랑 이야기하는 거 존나 피곤하다. 이렇게 말하고는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끊어 버려요. 늘 아슬아슬하면서도, 살뜰하게 챙겨주는 아이기도 하고요. 이 나이에 뭘 또 그리 흥분하나 싶어서, 좋게 좋게 넘어갔어요. 물론 그 녀석도 많이 순해졌고요. 기세 등등도 한 때다. 너나 나나 그렇게 늙어가는구나. 서글퍼진 적도 있죠. 그런데 웬걸요. 특유의 말투가 또 툭 불거져 나오네요. 그래도 내가 네놈 새끼보다 세 살이나 많은데. 저는 나이까지 많아서 더 발끈해요. 내가 참으면, 네놈 새끼가 그 따위로 말해도 된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게 저를 못 참게 하더군요. 최소한의 선도 못 지키냐, 이 새끼야? 예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연락이 끊겼죠. 몇 년간 안 볼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얼렁뚱땅 어떻게든 만나게 되면, 참으로 유치하구먼. 부끄럽고, 아예 끊어지지 않은 인연이 고맙고 그랬죠. 인스타그램과 메신저까지 차단을 해요. 저에게 놀라요. 뭘, 또 그렇게까지. 슬며시 차단을 풀어요. 그새 그 녀석도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끊었더군요. 어쭈, 이 녀석 봐라. 아차 말실수했다. 반성 좀 하나 싶었더니. 맞불을 놓으시겠다? 손이 다 벌벌 떨리는군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아득해집니다. 이 새끼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에요. 여전히 그대로군요. 많이 놓고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지. 그래도 돼. 여유와 아량이 먹은 나이만큼 늘어났다고 생각했어요. 1분 정도의 대화로 활활 타오르는군요. 직장 생활을 안 해서, 조직 생활을 안 해서 발끈할 일이 없었을 뿐이죠. 저는 여전히 어리고, 충동적이군요. 그렇게 벌벌 떨면서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와요. 코카서스 여행기를 줄줄 써요. 글이 그렇게 잘 써지는 거예요. 세상 모든 인연이 이런 식으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스스로 키운 고립감에 가슴이 턱 막히더군요. 사위가 고요해지고, 나의 글은 모처럼 흩어지지 않아요. 고전 좋아하세요? 마가렛 미첼, 헤밍웨이, 서머싯 몸, 알베르 카뮈. 세월이 지나도 엄청난 힘으로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고전을 좋아해요. 지금 그런 소설이나, 글이 없는 이유가 뭘까요? 생존을 걱정할 만큼 치절한 위협이 없어서일까요? 전쟁이라든지, 전염병이라든지로 아비규환이어야 할까요? 골방에 벌벌 떨면서, 글이 유일한 위로였을 때, 그때 작가들은 걸작을 만들었던 걸까요? 고립, 절망이 글의 가장 큰 힘이라면, 전 글쟁이 안 할래요. 무서워요. 피고름을 짜면서 써대는 골방이 무서워요. 사람에게 파고들기 위해서, 바닥을 뚫는 추락을 감내해야만 하는 건가요? 고립감이 유난히 추워요. 우리가 더 이상 젊지 않아서요. 화해에도 에너지가 필요하죠. 몇 년간 쌩까고 사는 거, 참 아깝고, 유치한데요. 오늘은 글이 아주 잘 써지는 날이 될 거예요. 차갑고, 고독한 마음을 녹이려면 그때의 코카서스가 필요해요. 그때의 조지아에 머물면서, 글을 써 내려가겠습니다. 뜬금없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10월의 미리 크리스마스를 좋아해요. 12월의 크리스마스는 또 그냥그냥이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를 위해서 쓰고, 세상 끝까지 닿기 위해서 써요. 오늘이 전부인 삶을 살겠습니다. 가까운 도서관, 학교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시면, 저는 정말 세상 끝까지 닿을 수도 있겠어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에 안 가시는 분들도 읽어 보세요. 큰 즐거움을 약속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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