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의 갈림길을 지나고 나면 다른 것이 보일까요?
아침에 사과를 썰려고 도마를 꺼내가다 발가락을 찧었어요. 플라스틱 도마가 세워져서 엄지발가락 위로 정확히 떨어지더군요. 피멍이 들겠군. 그랬는데, 멀쩡하네요. 엄살이죠, 자신의 고통은 과장되기 쉬워요. 자기만 아는 고통이고, 자기만 느끼는 고통이니까요. 얼마 전 아침 뉴스에서 청소하는 여자를 어떤 차가 빠르게 스치더니 갓길로 고꾸라지더라고요. 졸음 운전자였어요. 10cm만 청소 여자가 이동했어도 즉사였죠. 그렇게 살면 어떤 기분일까요? 누구나 한 번쯤 죽을 뻔한 적이 있나요? 세계 테마 기행 콜롬비아 찍을 때요. 야밤에 트레킹을 하다가 한 발이 쑥 빠졌어요. 왼쪽으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벼랑으로 저의 몸 절반이 미끄러졌죠. 가이드가 제 손을 잡아 주지 않았으면 미끄러졌을 거예요. 미끄러졌으면 죽었겠죠. 출발하려던 날 전원이 배탈이 나서요. 하루 늦게 출발해서 첫날 팀을 따라잡기로 했어요. 정글 트레킹 자체가 빡센데요. 이틀 치를 하루에 몰아서 걷기로 한 거죠. 그냥 걷기만 하나요? 촬영도 해야죠. 놀러 온 게 아니잖아요. 그걸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어요. 몸서리가 쳐지네요, 지금도. 몸은 죽었는데, 계속 걸어지는 신비체험을 한 날이었죠. 그때 쑥 발이 빠질 때요.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더군요. 죽든 말든. 자포자기 심정인 거예요. 죽음 문턱까지 갔던 사람들 이야기는 적지 않죠. 911 뉴욕 테러 사건 때 비행기를 놓쳤던 사람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제때 비행기를 탔다면, 쌍둥이 빌딩과 충돌하며 최후를 맞았겠죠. 제 기억에만 의존해서 쓸게요. 그 남자는 초고도 비만이었어요. 비행기를 놓치고, 그는 살을 빼요. 대단한 비법은 없었어요. 그냥 적절한 양을 먹었어요. 폭식하지 않고요. 백 킬로그램 정도를 감량해요. 죽을 뻔했던 그 서늘한 순간이, 자신을 기본으로 되돌려 놓는 거죠. 스스로가 만든 욕망, 관계 속에서의 두려움이 폭식이었다면, 공짜로 얻은 삶은 자유였던 거죠. 자유에 자신을 맡기고, 우주의 궤도에 맞춰 흘러가는 행성처럼, 원래의 리듬을 찾아낸 거죠.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의 저자 아니타 무르자니는 암 말기 상태로 의식을 잃어요. 몸에서 벗어나 엄청난 자유를 체감해요. 아, 나는 죽었다. 본능적으로 깨닫죠. 영원히 죽을 것인가? 아니면 몸으로 돌아갈 것인가? 돌아가기로 해요. 죽음은 자유롭고, 평화롭지만 자신의 임무가 있음을 깨닫죠. 삶과, 죽음에 대한 갑작스러운 이해가 찾아와요. 깨달음이라고 하죠. 암은 깨끗하게 나아요. 암의 이유는 두려움이었어요. 그녀는 책에서 한결같이 주장해요. 두려움이 병을 만들고,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고, 자신을 구원한다고요.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타인과 나의 구별은 무의미하다고요. 죽을 뻔했어. 이런 이야기는 흔하지만, 얼마나 죽음 가까이까지 갔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어떤 사람은 주마등처럼 살아온 삶이 빠르게 지나치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 몸과 분리된 영혼이 죽어가는 자신을 보기도 한대요. 진짜일까요? 그것보다는요. 그런 시간을 거친 이들의 자신감이라든지, 관점에 관심이 가요. 좋은 거잖아요. 영원히 살 것처럼 안달복달하는 것보다는, 유한한 시간, 유한한 몸뚱이를 분명히 인식하는 거요. 삶이 아닌 시공간(흔히 말하는 죽음이든, 종교적인 구원이든)이 존재함을 강력히 믿는 것. 그런 태도가 가진 장점이요. 사랑의 상처가 괴로운 건, 그 감정이 영원할 것 같아서죠. 그 사랑을 소유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겨워할 사람이 태반이지만요. 내 병이, 내 절망이 치명적인 건 무한한 시간에 놓여있을까 봐서죠. 분명한 끝을 믿는다면, 모든 감정도 끝남을 깨닫게 되죠. 싫증을 믿으면, 집착은 존재할 수가 없잖아요.
죽을 뻔했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죽지 않은 이유를 늘 스스로에게 묻는 삶. 그게 탐이 나요. 영원한 행복을 불신하고, 절대적 불행도 유통기간이 있음을 믿게 되죠.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는 매우 추천하는 책입니다. 한 번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 건,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래요. 그렇게 안 살아도 돼! 섹시하고, 그윽한 지혜를 전하기 위해서죠.
PS 매일 글을 써요. 지구 반대편에서 제 글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도, 제 글이 닿길 원하죠. 학교, 가까운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없나요? 더 좋은 도서관이 되기 위해서, 박민우의 책을 추천해 주세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방콕 여행 필독서입니다. 한국에서 펜션 이딘가에 앉아서 읽기에도 딱 좋습니다. 그냥 좋은 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