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기를 시작하게 됐는지부터
석 달간 일기를 팔았다. 한 달 구독료 만 원을 받고, 입금자들에게 일기를 보냈다. 봉이 김선달인가? 누구나 쓰는 일기로, 삥을 뜯어? 글쟁이는 자고로 고독하고, 고귀해야지. 일부러 거지처럼 살고, 폐인 주사를 셀프로 꽂아야지. 농부가 추수하는 심정과, 어부가 멸치를 갑판 위에 쏟아낼 때 심정을 나는 알아 버렸다. 씨티은행 통장으로 만 원, 만 원이 찍힐 때마다 콧구멍이 알아서 벌렁댔다. 이게 사는 재미구나. 눈앞에서 3D로 만 원권 지폐가 착실하게 쌓여갔다. 그래, 쭈욱 가는 거야. 서판교에 아파트 한 채는 있어야지. 타고난 글발, 소심함에 찌든 성실함. 구독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테고, 돈 세는 알바를 당장 알아봐야 한다. 만 원의 힘으로 나는 훨훨 날았다. 천천히 묵직한 날개가 벌름, 마침내 움찔움찔, 푸드득, 뜬다, 뜬다. 시작이니까 힘이 좀 들기는 했다. 이내 탄력받아서 공중을 훨훨. 공중을 원으로 도는 대머리 독수리 같은 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꼭 돈맛을 알았다기보단, 그만큼 집중해서 보는 독자. 그 팽팽한 긴장감이 빛을 발한 것이다. 돈독 오른 거 아니다. 나도, 여러분도 오해했다. 그럼, 나는 고귀한 글쟁인데.
돈 안 받겠습니다. 석 달을 열심히 달리고 내린 결론이다. 일단 수신확인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니, 총 구독자 160명 중에 120명만 읽다니? 거북목과 손목 통증 증후군의 대가가 고작 이거야? 40명의 배신자에게 나는 미안함과 섭섭함을 느꼈다. 먹고살기 바쁜데, 매일 오는 글이, 얼마나 짐스러웠을까. 심지어 한 명은 수신 거부까지 했더라. 어떤 독자는 왜 이리 길게 쓰냐며 나를 다그쳤다. 돈 받고 쓰는 글이라서요. 양이라도 낭낭해야지 싶었죠. 탈모 약도 없이 머리털 빠져가며 썼어요. 아무리 변명해도 글공해의 ‘원흉’이 돼버렸다. 짧게, 재미나게. 이게 글이지. 반성했다. 억울함을 밑에 깔고.
120명은 정말 놀랍도록 꾸준했다. 누군가는 메일만 열어두고 안 읽었겠지. 나는 의심을 즐긴다. 내가 부정적인 견해를 유난히 즐긴다. 변태적 감성과 특유의 나약함이 결합해서, 요상한 쾌락을 만들어냈다. 대부분은 사실 극찬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나는 쓸쓸한, 나만의 작은 왕국에서, 왕이었다. 왕은 무심한 오후, 방콕에서
닿고 싶다
는 욕망에 괴로워한다. 만 원이 없는 사람들에게 닿고 싶다. 만 원이란 돈을 송금하는 게 귀찮은 이들과 가까워지고 싶다. 그 돈으로 맘스터치 싸이버거 사 먹어야 하는 급식 제네레이션에게 이쁨 받고 싶다. 그런 욕망이었다. 1분이면 웹툰 한 편을 완독 하는, 읽었지만, 안 읽은 지하철 독자들을 뺏어오고 싶다. 읽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나로 인해 끄덕끄덕했으면 한다. 언뜻 비루하지만, 굉장한 야심가가 나다. 대학 동기들아, 나 안 죽었어. 세계 테마 기행 찍고, 나는 자연인이다는 언제 나오나 내심 침 삼키는 거 알아. 꿈도 꾸지 마. 이 새끼들아! 뺀질뺀질 야심가는 지구 반대편 칠레의 시각 장애인까지 내 글을 읽는 꿈에 온몸이 오그라든다.
그래도 매일 쓰겠다고 한 건 좀 아니었나? 노트북 앞에 앉으면 숨이 턱 막히고, 꼭 그때만 되면 JYP는 새 걸그룹을 론칭하더라. 이마로 열 기운도 슬쩍 올라온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무모한 장담을 했을까? 벼랑 끝이다. 누가 밀기 전에 내가 뛰어내려야 한다. 못 뛰겠다. 어차피 누가 민다. 에라 모르겠다.
떨어지거나, 날거나
떨어지는 것도, 잠깐의 비행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선
어쨌든 뛰어내려야 한다.
내가 염려하는 나는 떨어지지만
내가 모르는 나는 난다.
날 수 있다.
그래서
치앙마이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