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우리 타이베이 놀러 가요

- 어머니 칠순을 대하는 아들의 자세

by 박민우

지금 치앙마이에 있어요. 정신없이 다니고 있는데요. 숨 돌리면서 치앙마이를 곱씹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독자분들이 유난히 좋아해 주셨던 어머니와의 타이베이 3부작을 우선 올릴게요. 이미 보신 분들도, 너그럽게 다시 읽어 주세요. 꾸벅








"어미 칠순엔 한국에 있으면 안 된다.”

어머님이 진즉에 못 박으셨어요. 당연하죠, 어머니, 여행작가가 아들이잖아요. 어디든 갑시다. 아들에게 제일 쉬운 게 여행인데요. 그걸 원하셨군요? 그걸 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라도 생색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잘 생각하셨어요. 사람 불러서 춤추고, 노래하면 뭐 남겠어요? 멋진 어머니. 그래요. 갑시다. 일본 가고 싶으시다고요? 그게요. 제가 태국 친구들과 도쿄를 가기로 했어요. 그러니까요. 어머니. 일본 말고 대만으로 가요. 대만은 별로라고요? 몰라서 하시는 말씀. 제가 보장할게요. 또 가고 싶으실 거예요.

“현님이도 같이 가면 안 될까? 고거이 어릴 때부터 나만 따라다녔시야. 지금도 올매나 내를 챙기는지 모른다. 자기 경비는 자기가 낸다고 했응께.”

현님이 이모님! 당연히 가셔야죠. 사촌이지만 친자매 이상으로 사이가 좋으시잖아요. 그럼요. 그럼요. 말동무 있으셔야죠. 아버지, 이모 다 일 때문에 못 가시잖아요. 잘 생각하셨어요. 면목 없지만 이모님한테는 돈 받을게요. 안 받아야 하지만, 돈이 없어요. 아, 그러니까요. 아예 없는 건 아니고요. 곧 나올 돈이 있어요. 잠깐 없는 거예요. 어머니, 제가요. 칠칠치 못하게 돈을 잃어버렸어요. 미국에서요. 어머님이 저 미국 간다고 챙겨주신 800달러를 홀라당 잃어버렸어요. 그 큰돈을 어디에서 잃어버렸을까요? 여권 주머니에 있어야 할 800달러가 없는 거예요. 제가 착각을 했을까요? 이렇게 멍청한 아들을 낳으신 적 없으시잖아요? 어쨌든 800달러만큼 가난해져 버렸어요. 사실 어머니는 어머니 여행경비도 이미 다 내신 거죠. 그래 놓고 아들 생색내라고, 친구분들한테 자랑하신 거잖아요. 저만 믿으세요. 없으면 없는 대로 여행하는, 국가대표 거지 여행자가 저잖아요. 그런데 어머니, 속이 약간 타들어가요. 그리고 약간 무기력해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와서 시차 적응도 안 됐고요. 여행이고, 뭐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요. 정신 차릴게요. 대만은 무조건 재밌을 거예요. 누구랑 가는데요. 그럼요. 그럼요. 대한민국 1등 여행작가가 어머니 아들이잖아요. 이런 여행이 또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까, 후회 없이 놀다 옵시다. 어머니. 그런데요

“다음 달로 미루면 안 될까요?”

네, 제가 그렇게 넌지시 한 번 여쭤봤죠. 죄송해요. 아무리 쥐어짜도 답이 없어서요. 가서 궁상떨 수는 없잖아요. 특히 현님이 이모님까지 함께잖아요. 아들내미가, 어머니의 자랑인 아들내미가 돈 없어 쩔쩔매는 꼴 들키면 안 되잖아요. 잠이 다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용기 내서 여쭸죠. 조금만 늦추면, 늦추면 나올 돈이 있거든요. 어머니, 실망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택한 삶이거든요. 저 머리털 왕창 빠져서 남미 갔을 때 잊으셨어요? 저 녀석 사람 꼴로 살 수 있으려나. 눈물 펑펑 흘리셨잖아요. 그 머리털 다 났어요. 왜겠어요? 여행 덕이예요. 길에서 논 덕이예요. 다음 달이면 정말 괜찮을 것 같아요. 대만은 늘 따뜻해요. 우리나라 한 겨울이라고, 대만도 한겨울 아니에요. 아뇨. 정말 추울 때 가야, 대만이 더, 더 좋아져요. 이런 아들이 참 짠하다고요? 어머니, 세상의 아들, 딸은 다 짠해요. 어머니도 동생들 학비 몰래 대주는 짠한 큰 딸이었잖아요. 구박덩어리 며느리였잖아요. 어머니. 잠깐 쪼들리는 거예요. 여행이 도망가는 거 아니잖아요. 대만이 도망가는 거 아니잖아요. 한 달만 늦춰 주세요.

“안 된다. 성당 사람들한테도 다 자랑해 놔서 안 돼. “

단호하시네요. 그만큼 간절하다는 거죠? 어떻게든 가고 싶으신 거죠? 어머니, 그럼 갑니다. 저도 그냥 부딪혀 보겠습니다. 부딪히면요.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어머니, 까짓것 갑시다. 걸읍시다. 제가 어머니 몸에서 나왔어요. 어머니가 저보다 더 재미나다 하실걸요? 숙소는 1박에 5만 원짜리로 잡았어요. 너무 싸죠? 싸지만 평점이 90점이 넘더라고요. 그러면 됐죠. 대만 물가가 진짜 저렴해요. 너무 좋은데, 물가까지 저렴해요. 그러니, 대만은 열 번, 백 번 가셔야 해요.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다고요. 그러니까 5만 원짜리 방은, 우리나라 30만 원짜리 방일 거예요. 게스트 하우스 3인실을 예약했어요. 어머니는, 아들 잘 둔 덕에 전 세계 배낭족들과 어울리는 할머니 되신 거예요. 웃돈 주고서라도 묵어봐야 하는 곳이죠. 오붓하게 셋이 방 쓰니까요. 매일매일 얼마나 다정하겠어요? 얼마나 깨소금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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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창문이 없네요? 죄송해요. 어머니. 저도 오기 전까진 몰랐어요. 평점이 90점이 넘는데 창문이 없다니요? 이상한 냄새도 좀 나죠? 공기 청정기가 있네요. 이걸 틀면 좀 나을 거예요. 제가 약간 얼굴이 붉어지고, 말수가 줄었죠? 면목이 없어서요. 이런 곳으로 어머님, 이모님을 모시고 오다니요? 쥐구멍이 어디인가요? 이모님, 좋다, 좋다. 너무 자주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난달에 강화도에서 50만 원짜리 펜션에서 묵으셨다면서요? 억지로 제 기분 맞춰 주실 필요 없어요. 어떻게 어머니, 이모님을 5만 원짜리 방에 묵게 할 생각을 했을까요? 깨끗하고, 친절하다고 용서되는 게 아니죠. 창문이 없는 방은 너무 했어요. 저는 오늘 깊은 잠은 틀렸네요. 더러워도, 창문은 있어야 하거든요. 어머님, 이모님 죄송해요. 결국 추억이 되겠지만, 오늘 밤은 참회의 마음으로 잠이 들게요. 정말 즐거운 여행이 되어야 해요. 혼자 온 여행 아니잖아요. 이런 시간이 다시 안 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어머니. 이모님. 오늘만 속상해할게요. 우린 이제부터 한 팀입니다. 꼭꼭 붙어 다니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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