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규성아 - 행복하자!

뭔가 뭉클하고, 따뜻한 이별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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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음식점 옥류 식당에서 만나기로 해요. 예전부터 북한 식당이 궁금하긴 했어요. 방콕에도 있는 건 알았지만, 혼자서 갈 용기는 안 생기더라고요. 팁을 노골적으로 달라고 한다더라. 생각보다 맛이 별로더라. 그런 후기를 봤거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북한식 김치를 따로 팔아요. 북한 식당에 온 이유는, 궁금해서니까요. 야박하다 생각 안 하고, 통김치도 시켰죠. 깔끔, 상큼해요.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 같진 않은데, 기분이 꽤나 좋아지는 맛이었어요. 평양냉면, 회냉면도 괜찮았어요. 남한에는 없는 맛, 그렇다고 너무 이질적이지도 않은 맛이었죠. 또 먹고 싶네요. 찐만두도 무난하게 좋더라고요. 북한 소주까지 한 잔씩 해요. 일본 라면집을 갈까, 뷔페를 갈까 하다가 왔는데요. 맛도 괜찮고, 색다른 느낌도 들고요. 잘 왔네요. 팁 달라고도 하지 않고요.


규성이가 떠나는 날입니다. 2박 3일 짧은 여행이었죠. 사실 저는 이별 전문가죠. 워낙 많은 친구들이 방콕에 오니까요. 인도에서 충동적으로 날아온 후배. 기억 속 날라리, 사실은 모범생. 뜻밖의 모습이 놀랍고, 재밌었어요.


규성이는 사실 약간 어려웠어요. 페이스북으로 보는 규성이는 목표가 확실한 열정맨이었어요. 진취적이고, 앞만 보며 달리는 성공 지상 주의자. 그런 면도 있지만, 냉정한 열정이 아니라, 따뜻한 열정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사람은 만나봐야 해요. 여의도에서 자란 규성이는 미아리에서 자란 저와는 하늘과 땅 차이죠. 서울 사람이지만, 절대 같은 서울 사람 아니죠. 80년대 국민학교 다닐 때요. 여의도 컴퓨터 박람회를 간 적 있어요. 삼보 트라이젬, 대우 아이큐 1000, 삼성 SPC 컴퓨터 보러 갔죠. 컴퓨터보다 놀란 게 여의도 아이들이었어요. 미아리 아이들은 겨울만 되면 볼도, 손등도 다 터서요. 째지고, 붉었죠. 거칠고, 더러웠어요. 여의도 아이들은 손등이 눈처럼 하얀 거예요. 볼도 붉지가 않고, 하얘서요. 천사들 같았어요. 아역 탤런트 같았죠. 규성이도 그런 천사였겠죠.


- 재수는 안 된다.


아버지가 규성이의 재수를 허락하지 않았대요. 이놈이 외고에 들어갔는데, 너무 잘난 애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서요. 공부를 아예 놓은 거예요.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단칼에 손절하신 거죠. 돈가스, 비프 가스 썰어먹는 경양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대요. 할 게 없으니까요. 같이 일하는 형들 여자 친구가 자주 놀러 왔는데요. 호피무늬 바지가 기억에 생생하대요. 호피무늬 누나가 규성이를 부르고, 놀리고 하는 게 그렇게 무섭더래요. 그냥 무서운 게 아니라, 평생 이 삶에서 탈출할 수 없겠다. 그런 공포였대요. 어떻게든 대학에 가야 한다. 호피무늬 이전의 규성이는, 호피무늬 이후의 규성이로 새로 태어난 거죠. 아버지를 끝내 설득해서 대성학원에서 재수생활을 시작해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합격해요. 한 달 반, 경양식집 아르바이트가 인생을 바꾼 거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학원, 일어학원, 중국어 학원을 다니고요. 그 와중에도 보육원에서 부모 없는 아이들을 가르쳤대요. 일산에서 학교까지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과감하게 중고차도 장만하고요. 자투리 시간엔 도서관에서 살았대요. 저도 분당 살았어요. 일산보다 더 멀었죠. 학교까지 두 시간 반이 걸렸어요. 그 시간이 하나도 안 아깝던데요. 자투리 시간도 놀고, 수업 시간도 놀았죠. 강의는 안 들어가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죠. 저도 재수했어요. 고3을 연달아 두 번 했잖아요. 더 놀아야죠. 제가 상식적인 거 아닌가요? 규성이는 결혼하고도, 입양을 진지하게 고민했대요. 보육원에서 봤던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요. 결국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대한 시선이 그렇게 따뜻한 친구랍니다.


사람을 만나면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이에요. 밑도 끝도 없고, 어떤 틀도 없어요. 길을 잃은 느낌도 들고, 길을 찾아낸 느낌도 들어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다가, 묵직한 인연으로 되돌아왔어요. 떠나는 규성이에게 뭉클한 뭔가를 느껴요. 규성이가 교환학생으로 방콕 왕립대학에서 6개월 공부한 적이 있대요. 어제는 혼자 거기를 가서 종일 있었대요. 그때의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를 찬찬히 둘러보면서요. 과거에 머무르는 사람은 매력이 없지만, 과거를 사랑하는 사람은 멋있네요. 짧다면 짧은 2박 3일. 규성이처럼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규성이는 크게 될 거야.


이런 생각을 했네요. 규성이가 잘 됐으면 좋겠다. 요게 더 괜찮네요. 네, 규성이는 잘 될 거예요. 지구의 온기를 0.1도 정도는 높일 재목이라 봅니다. 규성이를 여행한 2박 3일이었습니다. 규성아, 잘 가고, 많이 웃으며 살자.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저를 낮추고, 세상 멀리멀리, 다가가고 싶습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여러분의 방콕이, 일상이 조금 더 재미나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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