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오리새끼, 롱아일랜드, 외로움

나의 존재는 누군가의 환대로 증명된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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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지? 어둡다. 아이폰을 찾는다. 일곱 시. 아침? 저녁? 아침이다. 롱아일랜드 중학생들이 눈뜰 시간이다. 시차 적응을 하루 만에 해내다니. 타고난 여행자야. 사모님이 주신 수면제도 일정 부분 기여를 했겠지만, 그냥 내가 잘 나서다. 흔해 보이지만 주변에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능력. 안 퍽퍽한 간이 나오는 순대처럼 귀하다. 일부러 두 팔을 45도 유지하며, 기지개를 켰다. 미국 시몬스 침대에서는 다들 그렇게 일어난다. 줄무늬 파자마와 수면양말이 아쉽지만, 맥모닝을 이틀에 한 번 먹어야 나오는 하품을 했다. 기다랗고, 약간 어두운 방은 며칠 지나면 아늑해질 것이다. 창으로 롱아일랜드 잡초가 이파리들이, 레프트, 라이트, 레프트, 라이트한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자신감과 다정함, 장난기가 섞인 고시원 총무 목소리로 사모님께 인사했다. 주눅 들지 않고, 예민하지 않은 시골총각처럼 보이고 싶다. 사모님은 오븐에 덥힌 크루아상과 방금 내린 커피, 소시지, 삶은 계란을 접시에 담아주셨다. 크루아상은 아메리카 버터를 얼마나 빨아댔는지 즙 나올 듯 촉촉했다. 주방의 커다란 문을 열면 발코니가 나온다. 저기에 앉아서 무성한 뒤뜰을 보면서 먹어도 되지만, 성격 좋은 시골 총각은 사모님이랑 있는 게 좋다. 선생님은 아침부터 텃밭에서 깻잎을 따신다. 텃밭엔 깻잎, 가지, 고추, 상추, 토마토가 주렁주렁하다. 시골 총각은 선생님 곁에서 깻잎도 따야 한다.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아니, 아니요. 어차피 제가 또 해요. 식기 세척기로 삶으니까 놔둬요. 새벽 깜깜한 화장실에서 소변을 눴던 불편함이 스친다. 더 자고 싶다. 여긴 내 집이 아니다.


사모님 엉덩이에 종기가 커졌다. 괜찮겠지, 나아지겠지.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 많이 속상하신 표정이다. 늙은 몸은 종기도 상처도 잘 안 낫는다. 지금은 남 일이지만, 곧 내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은 종기를 짜내는데도 피검사, 소변검사까지 해야 한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모님은 선생님께 미안하다고 한다. 고맙다고 한다. 병원에 데리고 가줘서 고맙고, 곁에 있어서 고맙고, 돌봐줘서 고맙다고 한다. 마누라면 이렇게 안 하지. 예쁜 아가씨라 이러는 거야. 선생님의 답변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에 머물러도 되는 걸까? 나를 항구에 내려주고, 두 분은 병원으로 향한다. 포트 제퍼슨. 포트(Port)가 항구라는 뜻이지. 포트 제퍼슨에서 배를 타면 코네티컷에 닿는다. 코네티컷이 어딘지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는 내가 멋져 보인다. 항구를 중심으로 상가와 집들이 몰려있다. 한국인 기준으로는 북적이는 것도 아니지만, 선생님 댁에서 느끼지 못한 활력이다. 항구는 커다란 배, 작은 배로 가득하다. 청년 둘이 자전거를 세우고,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야, 여기군. 바퀴 옆으로 짐들이 뚱뚱하다. 자전거로 미국을 일주 중인 모양이다. 땀을 식히고, 텐트 칠 곳을 찾겠지. 이런 풍경을 기대하며 지옥 같은 오르막을 올랐을 것이다. 그들은 옳았다. 살아보고 싶고, 더 오래 살고 싶어지는 냄새가 롱아일랜드 파도를 빌려 전해진다. 백인 노부부가 카메라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앞으로 나가려는 건지, 서로의 손을 꼭 쥐려는 건지 분명치가 않다. 흰 의자가 잔뜩 나와 있는 식당에선 고기와 새우를 굽는다. 와인까지 곁들이면 20만 원은 나올 것이다. 사모님이 싸주신 생수 두 병 중 한 병을 꺼낸다. 한 병은 새 거고, 한 병은 정수기로 담은 물. 목마를 때 드세요. 사모님에게 나는 손님일까? 불안한 아이일까? 여행자들의 들뜬 표정에 비해, 나는 담담하다. 담담하니까, 내가 이겼다. 뭘 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월감이 중요하다. 오늘은 어쩐지 좀 덜 못 생겼다. 아이폰 카메라가 그렇다고 한다. 프렌치 불독을 끌고 가는 선글라스 백인 여자가 내 얼굴을 힐끗 본다. 좀 더 노골적으로 봐줬으면 한다.

2


“제 카페라테 나오나요?”


책을 읽던 백인 남자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는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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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617.JPG LOCAL CAFE 나빴엉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local이란 카페다. 신한비자카드는 과연 될까? 카드가 읽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곤두선다. 띠리릭, 띠리릭. 카드를 긁은 기계를 내 쪽으로 돌린다. 15%, 18%, 20% 얼마를 팁으로 줄래요? 카드 기계는 스크린이 달려 있다. 10%는 없다. 18%를 클릭한다. 미국은 팁을 카드 단말기로 요구한다. 18% 팁까지 받아 처먹고, 책에 몰두하다니. 책이 재밌어서겠지. 혹시 내가 동양인이어서? 인종차별인 건가? 여기다 싶은 카페를 찾아냈고, 내 딴엔 유창하게 주문도 했다. 카페라테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금까지 중 가장 행복했고, 커피는 오지 않았다. 25분 만에 나온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여기 있을 줄 알았죠. 선생님이 카페로 들어오신다. 어떻게 아셨어요? 박 작가가 올만한 곳이 여기밖에 더 있어? 나는 커피를 들고 도요타 SUV에 탄다.


“아, 커피 냄새 좋다.”


사모님이다.


“드실래요? 제가 사 올게요.”

“아니에요. 향만 맡을래요. 잠 못 자요.”

“성민(가명)이가 곧 오네요.”

“그러니까요. 죽기 전엔 꼭 봐야지 했는데, 고맙게도 오네요.”


나 죽으면 올 건가요? 사모님의 이 한 마디가 나를 오게 했다. 나에게만 했던 이야기가 아니구나. 성민이는 나도 잘 아는 친구다. 교대 초밥집도 성민이가 데리고 갔다. 성민이와 선생님의 인연이 나보다 먼저다. 더 깊다. 성민이 덕에 선생님과의 인연도 시작됐다. 성민이가 추석 연휴 롱아일랜드로 온다. 지금까지 내가 들은 성민이 이야기. 성민이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를 드린다. 선생님 내외의 안부를 묻는다. 성민이가 묵게 될 방은 선생님 부부의 바로 옆방이다. 성민이가 잘 먹는 봉골레 소스가 있다. 미리 만들어 놓으면 더 맛있어서 냉장고에서 순조롭게 숙성 중이다. 성민이는 고기 굽는 솜씨가 예술이다. 성민이가 오면 바비큐 파티를 열 것이다. 지금까지 네 번 왔다. 한 번은 성민이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선생님이 길을 잘 못 들어섰다. 비행기를 거의 놓칠 뻔했다. 비행기 놓치는 게 뭐 대수인가요? 우리 아버지 늙었어. 길도 잃고, 속상해. 성민이가 그랬다고 한다. 물론 선생님은 성민이의 아버지가 아니다. 성민이는 정말 보기 드문 청년이지. 사모님 말씀에 나도 동의한다. 우슬이라고 하는 이름도 낯선 약초의 뿌리를 성민이가 한국에서 부쳐준 덕에, 사모님의 무릎 관절은 굉장히 좋아지셨다. 우슬 뿌리차를 드셔야 해서, 내가 가져간 설록차는 입에 대지 않으셨다. 성민이가 결혼을 하면 색시는 꼭 롱아일랜드에 와서 며칠 있어야 하고, 인생에 꼭 필요한 지혜를 알려주고 싶어 하신다. 나에게는 꼬박꼬박 존대를 하시지만, 성민이는 아들이다. 필요한 게 있으면 성민이에게 연락하면 된다. 음식도, 약도, 책도 득달같이 국제소포로 보내온다. 성민이가 오면 선생님은 선생님 동창과 함께 골프를 치러 가실 거고, 선생님의 두 딸은 성민이를 보기 위해 오게 될 것이다.


“박 작가보다는 성민이가 편하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건데, 차 속에서 굳이 사모님의 입을 통해 듣는다. 카페에서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존재는 누군가에 의해서 증명된다. 현명한 자는 ‘누군가’가 필요 없다. 나는 필요하다. 성민이가 온다. 이란에서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이란에서 내 오랜 여행 친구 카즈마는 스타였다. 잘 생겼다. 일본인이다. 이란 사람들이 연예인처럼 떠받들었다. 나는 못 생겼다. 한국에서 왔다. 한국은 이란의 무역제제에 동참한 못된 나라다. 푸대접 왕따였다. 이란에서 터키로 넘어가는 기차에서 카즈마가 승객들에 끌려다니며 질문 공세에 시달릴 때, 나는 할 게 없었다. 억지로 카즈마와 승객들을 카메라로 찍었다. 승객들의 성화로 카즈마가 기차 통로에서 춤을 출 때, 나는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잘 나온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성민이가 오기 전부터 성민이는 롱아일랜드에 있었다. 내가 더 사랑받을 줄 알았다. 내 책의 열혈 독자라고 자부하는 부부였다. 롱아일랜드에 오면 성공한 큰 딸이 와서는, 뉴욕 시내를 구경시켜줄 줄 알았다. 동네 한국인 이웃들을 초대해서, 당혹스럽지만, 떠들썩한 파티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소란은 성민이 거였다. 감히 대적할 상대가 아니다. 존재가 작아지면, 화낼 일이 많아진다. 너라도 내 카페라테를 제때 줬어야지. 차 속에서, 사모님과, 선생님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나는 탈출을 꿈꿨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세상 끝까지 닿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도서관에 자주 가시나요? 박민우의 책들이 있나요? 없다면 신청해 주실래요?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싶어서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애정했던 단골 식당, 카페, 태극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채웠어요. 즐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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