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라이언트 파크. 나는 블루보틀이 맛이 없다!

이토록 세련된 곳이 심드렁한, 나는 진심 세련 여행자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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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가 안 되고 있다. 베이글, 피자, 샌드위치가 밥이다. 약해빠진 위장으로 추접하게 폭식했다. 여행 초반엔 끄떡없다. 설렘으로 위장과 창자는 유능해지고, 유산균도 늘어난다. 며칠 못 간다. 명치가 답답하고, 머리카락이 수챗구멍에 수북하고, 간헐적으로 몸이 뜨겁다. 이케아 가구 덕지덕지 방이 점점 더 좁아진다. 매트리스 두 개가 포개진 침대는, 하나일 때보다 두 배로 삐걱댄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푹 들어간다. 삼키려 든다. 매트리스에 적개심이 생긴다. 맨해튼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메마르는 중이다. 첫날은 집 앞 던킨만 가도, 크리스마스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눈만 안 왔지, 펑펑 함박눈이었다. 던킨이, 서브웨이가, 파리 바게트(뉴욕에서 인기 폭발이다)가 뉴욕이고, 맨해튼이었다. 소화가 안 되는데, 왜 이리 먹어댈까? 딱히 할 게 없다. 끼니를 기다리고, 끼니를 식도로 밀어 넣는다. 내 여행은 늘 그랬다. 먹는 게 유일한 ‘일’인 날이 많았다. 여행을 열심히 한다는 건, 열심히 ‘먹는다’이다. 새벽에 배가 고플까 봐 저녁엔 더 먹었다. 너무 배가 부르면 어떻게 하지? 말도 안 되는 고민이다. 배가 부르면 아프면 된다. 그렇게 내 위장을 학대하며 쏘다녔다.


일단 용주와 시응이가 내 입맛을 버려 놨다. 한식을 너무 많이 먹었다. 밥이 그립다. 오랜만의 감정이다. 시리얼, 빵, 파스타로도 쌩쌩했다. 빵이 싸고, 밥은 비싸다. 싸구려를 먹으며, 차근차근 가난뱅이 위장으로 개조해 나갔다. 개조의 과정이 날로 매끄러워져서, 잘 먹는 수준이 아니라, 빵을 찾는 침샘을 갖게 됐다. 빵이 고파서, 안절부절. 베트남의 반미가, 말레이시아의 로띠가, 콜롬비아의 엠빠나다가, 우즈베키스탄의 사모사가 최고다. 여기는 미국이고, 뉴욕. 던킨의 베이글과 2bros 피자가 내 밥이다. 밥이어야 한다. 코리아 타운으로 달려가고 싶다. 큼직한 깍두기를 설렁탕에 담아, 우적우적 퍼먹고 싶다. 김치찌개 부들부들 돼지비계를 떼어내, 굳이 따로, 질겅대고 싶다. 신경질적으로 먹고 싶다.



The city seen from the Queensboro Bridge is always the city seen for the first time, in its first wild promise of all the mystery and the beauty in the world.


퀸즈보로 브릿지를 거닐며 바라보는 뉴욕은 처음 그대로다. 세상의 모든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태어난 태초의 약속이다. - 위대한 개츠비 中


위대한 개츠비.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생 책, 내게도 인생 책. 미치광이 개츠비, 사랑에 인생을 거는 낭만 사기꾼. 나를 울린 개츠비가 여기에서 산다. 살았다. 퀸즈보로 브리지까지 51분. 몇 년을 그려왔다. 그런 맨해튼에 있다. 개츠비가 나를 깨운다. 일어나, 김치찌개 타령하지 말고. 얼른!


침대에서 기어 나온다.


결단이 필요했다. 거실로 나온다. 냉장고를 연다. 내 건 없다. 두부, 마르카포네 치즈, 겨자 드레싱, 유기농 베이컨, 유기농 새싹채소, 깐 마늘이 있다. 하우스 메이트 요리사 양반, 요리하는 꼴을 못 봤다. 먹는 꼴도 못 봤다. 밥도 방문 꼭 닫고 먹는다. 배달시켜서 먹는다. 설거지를 할 때도 서두른다. 소리로 다 안다. 냉장고 재료는 다 버리려나 보지. 박민우 입에다 버려 주세요. 포스트잇으로 먹어도 돼요. 붙여놓으면 좀 안돼? 내가 다 먹겠어? 베이컨 한두 조각만 있으면 되는데. 파스타 한 번 하는데 베이컨 한 봉지를 사야겠어? 녹색 아디다스 스니커즈가 없다. 그는 아침 8시쯤 출근한다. 화장실이 내 방과 붙어 있는데, 물 내리는 소리를 못 들었다. 물을 실제로 내렸다면, 소름 끼치는 인간이다. 극세사 소음을 조금씩 나누서 내는, 곤충 같은 인간이야. 나를 피하는 거야. 확신이 들까 말까 하는데, 나도 피하는 중이다. 마주치면 말만 길어진다. 그러니까 자존심은 상하지 않으며, 굴욕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이 새끼가 감히 날 피해? 그런 감정이 솟구칠 때는, 나 스스로에게 놀란다. 3층에는 쓰레기박스가 있다. 쓰레기가 모인 종이 상자다. 3층 사람만 버리는 건지, 5층에 사는 내가 버려도 되는 건지 궁금하다. 어차피 길바닥에 쓰레기통은 널렸다. 환경을 생각하는 태도가 무너지는 중이다. 근본 없는 미국 것들이 음식물 쓰레기, 1회용 쓰레기를 함부로 섞어서 버린다. 며칠 따라 했다고 해방감을 느낀다. 속이 다 시원하다. 또 3층엔 자전거 한 대가 있다. 체인으로 잠겨있지 않다. 퀸즈보로 브리지까지 타고 갈까? 용기가 안 날 뿐이다. 1층 조니네 파니니는 또 문을 안 열었다. 더럽게 게으르다. 굉장히 맛있을 것 같아서, 조니가 보고 싶다. 더럽게 생겼을 것이다.


블루보틀



오늘의 숙제다. 가장 궁금했던 곳이다. 온갖 맛을 상상했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봤자 커피 맛이지. 평소의 나는 냉소적이다. 급이 다를 거야. 미국을 과대평가해 보겠다. 미국의 커피는 대단할 거야. 스타벅스의 나라니까. 스타벅스보다 맛있다고 난리난리잖아. 로스팅하고 48시간 이내에 내려요. 블루보틀의 자랑이다. 최고의 커피, 콜롬비아 살렌토에서 갓 따고, 갓 말리고, 갓 볶은 콩으로 우려낸 커피를 마시던 내가 왜, 무엇 때문에, 목을 매지? 목을 매야 재밌으니까. 재미는 늘 부족하니까. 잘 안 오니까. 보통은 비행기를 타야 블루보틀을 맛볼 수 있다(지금은 성수동에, 삼청동에 생겨 버렸다. 제길!). 14분 걷는다. 14분 중 13분부터 즐겁다. 브라이언트 파크. 뉴요커들이 샌드위치나 뜯는 공원. 굉장히란 형용사를 붙이고 싶은 예쁜 공원이다. 웅장하지 않고, 대단하지 않고, 굉장하지도 않다. 굉장히에서 한 뼘 부족한, 공원에선 저글링을 하는 이들이 모여서 볼링 핀을 돌린다. 왜 저게 재밌지? 개가 공을 찾듯, 사람도 굴리면서 입이 헤 벌어진다.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늘 느낀다. 사람=개. 축구에 열광하는 이들은 다들 개다. 혀를 날름날름,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공을 핥고 싶은 개들, 사람인 척, 사람 소리로 짖어대는 개들(그래서 사랑스럽다). 블루보틀은 공원 건너, 리모델링 중인 건물에 입점해 있다. 철골 골조가 둘러싸고 있다. 심란하다. 블루 보틀은 편의점 크기다. 이렇게까지 작은 곳인 줄 몰랐다. 관광객들과 정장의 사무직들이 줄 서 있다.


-카페라테요


라테를 시킨다. 그냥 맛만 이야기하겠다. 충격적으로 맛이 없다. 맛없다가 아니라, 맛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유 거품이 두텁고, 풍부하다. 좋은 우유 거품이다. 거품을 꺼트리며 한참을 내려가야 커피가 나온다. 연하다. 싱겁다. 커피콩을 연하게 오래 볶았다. 그런 커피를 두터운 우유 크림이 덮었다. 이게 맛있으려면 백 가지 커피가 입에서 구별이 되는 귀신 미각을 소유해야 한다. 나에겐 이디야의 라테가 더 맛있다.


그러니까 블루보틀의 커피 맛을 알고자 한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적당하다. 뜨거워도 안 된다. 맛을 예민하게 느끼기 힘들다. 48시간 신선 커피를 도드라진 혓바늘로 감지해야 한다.


뉴욕 여행의 큰 이유가 그렇게 확인됐다. 황홀한 과정이었다. 맛이 어떻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기다림이 있었으니 됐다. 이젠 알라딘 뮤지컬을 기다리겠다. 피터 루거의 스테이크를 기다리겠다. 건너 방 섀프의 요리도 기대하겠다. 요리사가 내게 음식을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가 내게 다가온다. 나는 안다. 무모한 꿈일수록 즐거운 법이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박민우의 글이 읽히기를 소망합니다. 자, 여러분은 도서관,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십니다. 그렇게 박민우의 오체투지에 동참해 주시는군요. 미리 감사드려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찾아낸 단골 식당, 카페, 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즐겨 주세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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