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알리딘을 보다! 눈물 펑펑

이 소중한 비참함, 나는 반짝인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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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신청을 받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벼랑 끝을 떠올렸다. 과장된 상황이어야 자극이 되니까. 위태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뻔뻔해질 수 있다. 실제로 위태롭다. 겁 없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올 생각을 했다. 땡전 한 푼 없을 때 세운 계획이다. 동대문 시장에서 싸요, 싸요. 글 쓰는 사람은, 한 장에 만 원 짝퉁을 파는 동대문 삼촌이 되면 안 되는가? 나는 아니고 싶다. 나는 탭댄서이고 싶다. 흠뻑 추었더니, 모자에 지폐가 수북. 댄서는 구걸하지 않는다. 비참한 건지, 비참하게 느끼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매일 글을 쓰고, 구독료를 받는 중이다. 씨티은행에 한 줄씩 올라가는 10,000원, 10,000원은 큰 의미다. 만 원 자체가 이미 큰 액수였고, 내 글을 기다리는 행렬이었다. 저는 뉴저지에 사는데요. 한국 통장이 없어서요. 미국 시티은행에서 송금하면 수수료만 3만 원이 넘어요. 뉴욕이랑 안 머니까요. 밥을 쏠게요. 여기는 LA인데요. 작가님 알카트라즈 감옥 아시나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탈옥하기 힘든 감옥이요. 섬에 있고, 배를 타고 들어가요. 구독료 대신 알카트라즈 투어를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작가님! 친구 8명 함께 신청해요. 기다렸어요. 다시 시작해 주셔서 감사해요. 10만 원을 보내준 독자도 셋이나 됐다. 계좌번호를 노출해도 되나? 괜한 걱정이었다. 자유롭게, 언제든 넣어 주세요. 봉투, 봉투 열렸네. 박민우가 불쌍할 때마다 계좌번호를 떠올려 주세요. 구걸인가? 이토록 많은 이들이 나를 응원한다. 나는 분명히 노동을 한다. 공짜로 보는 글과는 달라야 한다. 무서운 강박과 싸운다. 그래도 구걸로 보일까? 여행 경비 좀 줍쇼. 길바닥 라면 상자에 대충 휘갈겨 써놓은 여행 거지들이나 나나 뭐가 달라? 다른데, 분명히 다른데, 누군가에게는 같다. 나는 거지일 수도 있다. 누구나 다 여행하고 싶다. 허락이 안 되니, 못 하는 거다. 나는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다. 여행을 해서는 안 되는 가난뱅이가, 구걸로 연명하며, 뉴욕, 맨해튼에 있다. 집으로 돌아가, 일당을 한 푼 한 푼 모아 여길 와야 한다.


뮤지컬을 봐야만 하나?


오늘도 꽝.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인기 1, 2위인 라이온 킹과 알라딘은 복권이란 제도가 있다. 복권에 당첨되면 30달러에 볼 수 있다. 백 달러, 이백 달러 공연을 3만 원대에 본다. 8만 원 정도의 행운인데, 몇 십만 원 행운처럼 여겨진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신청한다. 아홉 시에 확인, 꽝. 언젠가 되겠지. 다섯 번 정도 꽝이 되고, 확신은 사라졌다. 꼭 봐야만 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봤다. 뉴욕은 또 다르겠지? 추잡한 욕망이다. 당연히 다르겠지. 다르겠지만, 극장마다, 연출가마다, 배우마다 다르다. 뉴욕이라서 다른 게 아니다. 어떻게든 안 보겠다. 안 봐야 할 이유를 백 개 만들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안 보겠다. 뉴욕의 황홀. 이걸 연재하는 이유가 뭘까? 황홀한 순간을 생생히 전달해야 한다. 그게 꼭 뮤지컬일 필요는 없다. 록펠러 센터 앞 길거리 가수에게 10달러를 쾌척한다. 10달러에 감동한 가수가 마이크를 준다. 전, 노래 못 해요. 물러선다. 그가 어깨동무를 하고 잉글리시맨인뉴욕을 부른다. 더 근사하다. 10달러로, 100달러, 1000달러의 황홀, 만들면 되잖아.


-작가님, 티켓 할인하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사시면 좀 저렴해요.


LA 독자의 메일이다. 티켓을 싸게 파는 곳이 있다는 건 알았다. 알고만 있다.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어떻게 사는 건지는 몰랐다. 복권으로 시도하다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면 아예 제일 비싼 표를 사겠다. 애초의 계획이었다. 포기할까? 지를까? 갈등 중에 메일을 받았다. 뮤지컬을 보라는 계시지. 티켓 할인 부스 TKTS. LA 독자가 보내준 주소로 걷는다. 세상의 모든 고마움이 절실하다. 여기구나. 구글에 Times square 이미지를 검색하면 홀쭉한 건물이 가운데 우뚝 서있다. 그 앞으로 계단이 있다. 지구인이 골고루 섞여서, 사진을 찍는다. 흥분한 얼굴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계단이다. 계단의 뒤쪽이 TKTS 할인 티켓 창구다. 계단이면서 티켓 창구인 건물이다. 줄이 길다. 뮤지컬 때문에 뉴욕에 오는 이들이 많다. 비행기 티켓 값 200만 원, 호텔 4박 5일 이백만 원, 가장 좋은 자리 30만 원. 5백만 원, 아니 천만 원을 쓰고 뮤지컬을 본다. 그들의 비싼 욕망에 나도 동참할 수 있다.


“알라딘 100달러요.”

“할인 가격인가요?”

“네, 30% 할인이에요.”


TKTS는 그날 못 판 떨이를 판다. 4,50% 할인을 기대했다. 100달러다.


-하루 만에 백만 원이 들어왔어요.


거짓말이다. 오늘 거짓말을 SNS에 갈겨댔다. 70만 원 정도가 들어왔다. 구독료를 뻥튀기해서, 덜 불쌍해 보이고 싶었다. 오늘 알라딘이 꼭 필요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나다. 램프에서 지니가 나오면, 나는 울겠다. 그냥 아무나였으면 좋겠는데, 지니니까 영광이라 생각하겠다. 남들이 웃을 때, 아늑한 어둠 속에서 멋지게 울겠다. 이미 공연은 감동에 절어서, 볼 필요조차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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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달러 자리는 무대에서 일곱 번째, 가장 왼쪽 끝. 잘 보일까 싶은 자리. 꽉 찬 관객들의 판에 박힌 흥분이 꼴 보기 싫다. 올랜도에서 온 일곱 명 대가족의 대화가 거슬린다. 너무 쉬워서 영어 못 하는 사람도 강추. 알라딘 뮤지컬을 먼저 본 이들에게 이 공연은 쉬운 공연. 도대체 어디가 쉽다는 걸까? 10%도 이해 못했다. 내용은 안다. 지니가 웃고, 울리는 각각의 대사는 전혀 안 들린다. 내 영어가 이 정도였나?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과대포장되었다. 무대는 생각보다 작은데, 극장 자체는 터무니없이 아름답다. 중세의 귀족이 눈만 가리고 오페라를 봐야 하는 극장이다. 장식들이, 벽화들이 내게로 떨어질 것만 같다. 무시무시하게 화려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알라딘을 가장 재미나게 봤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나는 디즈니 만화가 별로였다. 디즈니가 생각하는 미남, 미녀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모두가 반하는 주인공이, 내겐 찌그러진 돌배 같았다. 이딴 걸 돈 주고 보다니. 종로 3가 서울극장에서였다. 당시엔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 초등부 주일학교 선생님들끼리 알라딘을 봤다. 칠흑같이 어두운 스크린, 떠 있는 별, 푸르게 어두운 밤의 지니, 날아다니는 양탄자. 디즈니의 마법에 최초로 빨려든 날이었다. 더욱 진화된 애니메이션들이 계속 등장했지만, 알라딘이 처음이라서, 알라딘이 최고였다. 같은 내용이다. 획기적인 감동은 불가능하다. 주인공의 양탄자가 올라간다. Whole new world가 울려 퍼진다. 나는 약속했던 눈물을 흘린다. 작심하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엉엉 울 줄 알았는데, 찔끔, 찔끔. 양탄자가 날아다니는 내내 찔끔. 불신은 확신보다 세다. 세게 나를 단련시킨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감정은 나를 단련시킬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런 감정도 허락된다. 싸워라. 져라. 완벽하게 져라.


그날 밤 50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밤.


-딸에게 밥 한 끼 사주는 마음으로 보냅니다. 맛있는 거 사드세요.


뮤지컬이 끝나고, 내가 원했던 울음이 시원하게 터져 나왔다. 이 감정이 소중하다. 비루함도 엄연히 존재하는 감정. 그것만 피한 삶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 모든 이들과 공평하게 비참해야 하고, 함께 견디거나, 천천히 벗어나야 한다. 확신도 없는 주제에 글을 팔려고 했다. 그러니, 나도 오늘은 나를 조롱하고, 나를 껴안아 줘야 한다. 실컷 울어라. 지금 이 순간 맨해튼에선 뭘 먹어도 된다. 이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거품이 두꺼운 맥주를 찾아야겠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천천히 닿겠습니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습니다. 9년간 머물면서 행복했던 식탐의 기록이니까요.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PS 2018년 10월의 기록입니다. 그때의 감정을 지금 옮기려니, 좀 민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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