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교수된 내 친구 성재 이야기

우리는 이렇게 만나야했어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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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 늦으면 안 돼! 늦고 싶지 않다. 일단 자전거부터 세워야 한다. 30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어. 이 근처라며? 야, 구글맵 ! 이 방향이 아니야? 뭐가 잘못된 거야? 28분이 넘었다. 2분 안에 자전거를 세워야 한다. 바이크 스테이션(Bike station), 나와라. 30분이 넘으면 3달러를 더 내야 해. 수수료까지 생각하면 4천 원 돈이다. 한 손엔 아이폰, 한 손엔 자전거. 제발, 나와라, 제발 나와라. 아아, 나왔다. 자전거를 세워두는 곳. 바이크 스테이션.

29분 00초.

바이크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운다. 스마트폰에 반납이 안 됐다는 메시지가 뜬다. 정말 가지가지한다. 신경질적으로 자전거 거치대에 밀어 넣는다.

-철컥

거치대의 파란불이 켜진다. 됐다. 바이크 스테이션에 갖다 놔도, 제대로 ‘철컥’하지 않으면 분실로 처리한다. 자전거가 잘 반납된 줄 알았는데, 1200달러(130만 원) 고지서가 날아왔어요. 이런 엽기적인 피해사례의 주인공이 될 순 없다. 29분 27초. 33초를 남기고 반납에 성공했다. 삶이 무료하고, 자극이 자극으로 안 느껴지는 사람은 뉴욕에서 시티 바이크를 타고 28분에 스테이션을 찾아 헤매는 걸 추천한다. 시티 바이크는 뉴욕의 자전거 서비스다. 하루 12달러(세금 붙으면 13달러 20센트다). 만 사천 원에 24시간 동안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살인적인 뉴욕 물가에 비하면, 수상하게 저렴하다. 대신 30분까지 만이다. 30분 타고, 바이크 스테이션에 반납해야 한다. 더 타고 싶다면, 스테이션의 다른 자전거로 갈아타면 된다. 스테이션은 뉴욕 어디에나 촘촘히 있다. 촘촘히 있다고, 바로 찾아지는 건 아니다. 마음이 급한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30분을 넘기지 말 것, 벌금으로 3달러를 내지 말 것, 약속 시간에 늦지 말 것. 이 생각만 하며 페달을 밟았다. 어마어마한 몰입감이다. 어떻게 사고가 안 날 수 있었지? 팔이라도 부러졌어야 했다. 차가 갑자기 서고, 운전자가 내게 쌍욕을 하며 차 문을 열었어야 했다. 내 몸뚱이가 트럭 밑으로 빨려 들어갔어야 했다. 운동 신경 전혀 없는 글쟁이가 한 손에 아이폰, 한 손에 자전거로 뉴욕 시내를 질주했다. 이 멍청이는 3달러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신념뿐이었다. 3달러의 함정은 인생 곳곳에 있다. 작은 가치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 빠져나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3달러를 내는 것이다. 치명적인 위기는 3달러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33초를 남기고 반납했다. 목숨 건 질주였다. 삶을 뒤흔드는 쾌감이다. 바이크 스테이션에 걸어서 10분. 또 뛴다. 온몸에 크고 작은 허파가 들숨날숨을 다 받아 마신다. 늦지 않겠다. 죽어도 늦지 않겠다.


세상에, 성재가 뉴욕에서 대학교수가 되다니.


민우야. 반갑다. 나는 뉴욕에서 지내. 페이스북으로 안부를 남겼을 때 놀랐다. 뉴욕에서 밥이라도 먹자고 했다. 성재가 교수가 됐구나. 대학교 2학년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는 극도로 불편하다. 25년간 늙은 나를 갑자기 보여주는 게 싫다. 공평히 늙었을 텐데도, 상대방에게 관찰되는 게 두렵다. 그 와중에 나의 더 많은 머리숱이나, 안 나온 똥배로 우쭐해하는 것도 비참하다. 뉴욕에서 30일을 있으면서, 성재를 어떻게 안 만나? 심지어 먼저 연락이 왔는데.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한다. 제길, 너는 왜 뉴욕에서 살아가지고.

뉴욕의 소호엔 감각적이고 화려한 가게들이 많구나. 서른 살의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분위기다. 걸어서 십 분 거리를 뛰는데, 숨이 안 쉬어진다. 잠시 빈혈 증세도 온다. 그래도 뛴다. 왜 조금도 늦으면 안 되지? 모르겠다. 눈살 찌푸리는 일은 없어야지. 교수 성재는 내가 모르는 성재다. 정색하는 성재로 변했는지 또 누가 알아?

-이야, 하나도 안 변했네. 그대로야.

성재가 가게 앞에서 환하게 웃는다. 나를 보자마자, 안 변했다고 했다. 야, 성재 너도 그대로인데, 뭐. 재빨리 맞받아쳤다. 성재는 더 멋있어졌다. 학생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는 인기 많은 교수의 모습이었다. 내가 안 변했다니. 나는 그런 말만 곧이곧대로 믿는다. 열심히 자전거를 밟았으니까, 약간 붉어졌을 테지. 동안의 포인트, 목욕탕 효과가 살짝 나온듯했다.

-민우야, 얼굴 좀 보면서 이야기해!


천하의 수다쟁이 박민우는 깜짝 놀랐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줘. 익숙해지려면 10분 정도 걸려.

25년간 나는 이렇게 모자라졌다. 숨을 고르고, 땀을 닦고,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마르게리따 피자도 먹어야 한다. 맞다. 숨도 쉬어야 한다. 눈 까자 마주치라니. 식탐이 많은 나는, 당장은 이 피자가 좀 귀찮다.

-퀸즈에 살아. 학교는 소호에서 두 정거장이야. 매일 기차 타고 출퇴근해. 뉴욕은 주차비도 비싸. 뭐든 안 비싸겠어? 그래서 기차 타고 다녀. 그렇게 살아.

우리는 고대 방송국 아나운서였다. 고대 방송국은 자부심이 대단한 조직이다. 학교 방송국일 뿐이지만, 공중파에서 일하는 선배들도 많았다. 끼 많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부류들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겉돌았다. 인기와 권력을 쥔 선배들을 무시하는 게 낙이었다. 성재도 겉돌았다(고 생각했다). 우린 조직이 안 맞아. 개인주의자로서 우리의 가치를, 서로 인정해 줬다. 꽤나 붙어 다녔다. 2학년 2학기가 되면서 방송국을 그만뒀다. 선배를 같잖게 보다 보니, 후배가 무서워졌다. 나 같은 후배가 나를 같잖게 볼 걸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나운서로서도 어중간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재주가 있었는데도, 열등감에 절어 살았다. 나보다 확실히 잘하는 애가 한 명 있었다. 사이가 안 좋았다. 걔가 대놓고 나를 싫어해서, 나도 걔를 싫어했다(걔는 그 반대라고 우길 것만 같다). 방송국에 마음을 붙이기가 이래저래 어려웠다. 성재는 군대도 안 가고, 3학년 때까지 아나운서로 남았다. 그 이야기를 뉴욕에서 처음 들었다. 몰랐다. 성재도 부적응자라고 생각했다. 아나운서(혹은 아나운서부)에 대한 애정이 차원이 달랐다. 성재는 제대하고 뒤늦게 공부에 뛰어들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됐다. 아내가 교포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인이었다. 한국인 가족이 통째로 미국 사람이 된 것이다. 굉장한 추진력이다. 내가 기억하는 성재는 훨씬 순한 인간이다. 내 생각이 틀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이민자들에게 더 각박해졌어. 인종 차별도 심해지고. 어떤 미친놈이 수업시간에 총 꺼내 들지도 모르고. 미국 사람이 된 거, 솔직히 후회돼!

성재는 25년 만에 만난 내게 ‘후회’라는 단어를 썼다.

25년 전 고대 축제. 우린 무대에 올라야 했다. 축제 때 열리는 고대 방송국 방송제는 길게 줄을 서는 인기 행사였다. 한 달을 합숙하며 방송제를 준비한다. 1학년인 우리에겐, 울고 싶은 무대였다. 그런 거대한 세상에 대한 면역성이 전혀 없었다. 2층 객석까지 가득 채운 인촌 기념관. 무슨 방송제에서 연기까지 하냔 말이야. 성재는 무대에서 춤을 추다가 한 줄의 대사를 하면 끝. 나는 무대에서 축구공을 객석으로 차면 끝. 연기라기보다는 구성에 필요한 일종의 연결고리였다. 그게 우주적 두려움으로 팽창했다. 성재가 먼저였다. 춤을 추다가 멈추고, 대사!

……

객석과 무대는 모두 진공이 되었고, 달나라가 됐다. 잠깐의 진공이 끝나고, 지구로 돌아왔다. 무대 위에는 한 줄의 대사를 못 해낸, 가장 슬픈 지구인이 서있었다. 꼴랑 한 마디를 까먹은 성재 때문에, 축구공이 악마의 저주가 됐다. 발등에 맞고, 공이 날아가면 끝인데, 발등에 안 맞을 것 같고, 공중으로 안 날아갈 것 같았다. 차라리 죽여주세요. 차라리, 사라질게요. 나는 아무에게나 빌고, 탈출을 허락받고 싶었다. 창백해져서는 무대에 올랐다. 발등에 공을 댄다. 힘껏 찬다. 이 간단한 공식은, 가장 어려운 것이 되었다. 이게 다 성재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공처럼 보일 뿐인 악마에게 다가간다. 공에 발등을 댄다.



힘이 너무 들어간 공은 직선으로 날아갔다. 직선으로 날아간 공은 고대신문 기자의 카메라를 갈겼다. 카메라가 떨어졌다. 카메라 기자는 씨발 했다. 성재의 큰 실패에 이은 나의 작은 실패였다. 그때의 우리는 방송국 대표 바보였고,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했다. 우린 누구보다 확실히 의심했기 때문에, 단짝이 될 수 있었다. 과거는 과거라고 잡아떼던 나는, 빠르게 연대감을 회복했다. 성재는 25달러 피자 값이 부족해서, 내 돈 몇 달러를 가져갔다. 우린 여전히 멍청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25년이 걸렸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다. 방송국에서 서로를 찾고, 안심하고, 밥을 먹던 두 명의 루저. 우리는 여전히 의심하지만, 의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란 걸 안다.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함보다 못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우리의 가치를 찾다가 뉴욕까지 왔다. 찾아낸 가치마저 의심하지만, 의심이 사라진다고 해서 마냥 행복해지는 것도 아님을 안다. 우리는 만나야 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이 즐겁습니다. 학교, 도서관,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이 있나요? 없다면, 도서관을 더 좋아질 수 있겠네요. 제 책들을 신청해 달란 소리죠. 헤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애정 듬뿍 품었던 단골집, 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소한 즐거움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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