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는 맛있고, 인간 관계는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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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 시 집 앞 던킨, 아홉 명이 줄 서있다. 비싸지만 스타벅스로 간다. 스타벅스는 더, 더 줄이 길다. 그 옆 그레고리 커피도, 또 다른 던킨도 커피를 못 마셔 환장한 사람들뿐이다. 노트북을 끼고 와서는 글을 써보시겠다? 지구에서 가장 비싼 맨해튼에서 커피 한 잔 값으로 두세 시간 죽치고 있어 보겠다? 내 방에서 립튼 티나 마시라는 건가? 싫다. 방에 들어가기 싫다. 비에 흠뻑 젖어도 안 들어갈 거고, 졸려도 안 들어갈 거고, 글을 쓰기 위해서 더욱 안 들어갈 거다. 들어가기 싫은 방이다. 맨해튼 내 방이 싫은 게 아니라, 방이 싫다. 힐끗거릴 곳이 없다. 내 방 창 이파리는 열심히 흔들리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스릴이 없다. 아무리 힐끗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맨해튼 8번가 파리바게트로 기어들어갈 때, 비참했다. 홍대에도, 부천에도, 정읍에도 있는 파리바게트다. 참고로 정읍에는 무려 7개가 있다. 블루보틀은 앉을자리가 없다.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CIA를 졸업한, 찬웅(이름을 알아내는데 일주일 걸렸다)이가 추천한 커피 La colombe도 앉을자리 없다. 커피 좀 마실만하면 의자를 빼버린다. 8번가 파리바게트는 5점 만점에 4.6점. 구글맵 이용자들의 점수다. 맨해튼의 그 어떤 스타벅스도 4점을 넘기지 못한다. 퍼마실 땐 오로지 스타벅스지만 돌아서면 욕하기 바쁘다. 이렇게 의리 없는 뉴요커들을 상대하며 스타벅스는, 외롭게 떼돈을 번다. 4.6점의 파리 바게트는 줄도 안 서고, 앉을자리도 있으며, 심지어, 심지어 전원을 연결할 콘센트가 있다. 똥 멍청이들이 그냥 퍼 준 4.6점이 아니다. 2층 텅텅 빈 테이블 중 마음껏 고르면 된다. 단팥빵 때문에 뉴욕에서 굳이 파리바게트를 찾는 이들과 분명히 선을 긋고 싶다. 그렇다고 단팥빵을 안 먹었다는 건 아니다. 뉴욕에서 프랑스 빵 이름 파리 바게트를 간판으로 내건 한국 가게에서 파리에는 없는 단팥빵을 사 먹는 게 말이 돼? 말이 안 될 건 없지만, 아름답지가 않잖아. 파리바게트 점원이 내 카드를 여러 번 긁는다. 쏘리. 괜찮아요. 안 괜찮지만, 안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 빵을 먹으면서 신한카드 어플로 이용내역을 확인해볼 때까지, 초조해하면 되지. 단팥빵을 씹으면서, 확신한다. 난 글 한 줄 안 쓸 것이다. 글 쓸 장소를 찾았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 안 쓸 일만 남았다. 원하는 걸 찾는 순간, 원하지 않게 된다. 한심하다는 걸 알지만, 반성은 뼈저리지 않으니, 이 한심함은 유지될 것이다. RA(Rainforest alliance)에서 인증한 아다지오 커피가 블부보틀보다, La colombe보다 더 맛있다. 천기를 누설해도 정도가 있지. 뉴욕 수돗물로 끓인 파리 바게트 커피가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걸 어쩌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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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났다. 맨해튼에서 롱아일랜드. 기차로 두 시간. 뉴욕에서 3주 이상을 머물면서 한 번은 찾아봬야지. 뭘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요? 용주는 찾아뵈어야 한다는 내 말에 이렇게 반응했다. 내가 선생님 댁에 머문 것도, 마음을 쓰는 것도, 다시 찾아가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싸가지 없는 용주가 이해 안 되는 일. 그러니까 해야 한다. 박찬웅. 오래 서른이 되는 박찬웅과 함께 간다. 맨해튼의 하우스 메이트. 한 때의 하우스 메이트. 나는 이미 방을 나왔다. 뉴저지로 이사했다. 갑자기, 뉴저지? 살인적인 방값을 감당할 수 없어, 뉴저지로 이사했다. 뉴저지에서 맨해튼까지는 버스로 30분. 뉴욕에서 7시 49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 굳이 네 시 반에 일어났다. 혹시 버스를 놓칠까 봐, 혹시 역을 헤맬까 봐, 모르는 ‘혹시’가 더 있을까 봐, 잠을 설쳤다. 제때 못 일어난 실수는 평생 한두 번? 전전긍긍의 노예로 산다. 여전히 어둑한 아침이어서, 깍듯이 인사하는 찬웅이가 낯설다. 찬웅이는 참깨로 만든 과자를 사 왔다. 나는 빈손이다. 이 아침에 뭘 사갈까? 사갈 게 있을까? 전날 샀어야지. The best bagel & cofee. 아침 여섯 시부터 여는 베이글 집이다.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에게 베이글 선물? 공감능력이 뛰어난 작가 박민우가 왜 이런 짓을? 한국에 있을 때도 선생님은 뉴욕의 베이글 맛을 그리워하셨다. 뉴욕에서 가장 평점이 높은 베이글 집이다. 그냥 베이글이 아니라, 진짜 베이글이다. 선생님만은 이 맛을 알아주실 것이다. 모든 곡물이 알알이 박힌 Everything 베이글에 연어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두 개 샀다. 크림치즈와 마늘맛, 참깨 맛 베이글도 더 샀다. 하나는 우리의 아침. 양이 많아서 반쪽이면 충분. 나름 고민 끝에 정한 선물이다. 먹어본 이들의 후기도 꼼꼼히 봤다. 잠이 부족해서인지, 계속, 억울하다. 냉정하고, 경우 없는 나란 인간이 도리를 찾고 있다. 선생님 내외가 아니었다면 미국 여행은 없었다.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 덕에 미국행을 결심했다. 불편해서 며칠 만에 나왔지만, 그건 엄연히 내 탓이다. 불편함을 못 견디는, 글쟁이의 지랄 맞은 예민함 탓이다. 인사 없이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순 없다. 곧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찬웅이 너는 누구니?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한 번 말을 꺼낸 것뿐인데, 가겠다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적극적이면 평소에 살갑게 굴던가. 매일 방으로 숨더니. 선생님은 요리사, 찬웅이도 요리사. 둘이 요리 이야기로 꽃을 피우겠지? 나 편하자고 너를 데리고 간다. 어떤 빵으로 고를까요? 크림치즈는 따로 더 살 건가요? 싸갈 건가요? 여기서 먹을 건가요? 베이글 점원의 속사포 질문에 당황했다. 찬웅이가 능숙하게 다 답했다. 정말 짜증 나는 인간이다. 자기가 계산한다고 했다. 짜증 나서 기어이 내 신한카드를 긁었다. 기차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놓을 자리가 없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커피 홀더가 안 보인다. 정말 짜증 나는 미국 기차다. 기차 바닥에 뜨거운 커피를 내려놓는다. 이걸 발로 차 버린다면, 죽어버리고 싶겠지? 그런 순간이 묘하게 기다려진다. 샌드위치에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과장이 아니라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는 팔운동이 되는 무게다. 샌드위치를 반으로 가를 때 분홍색 물체가 포착되는데, 베이글보다 더 두툼하다. 그게 다 연어다. 싱싱하고, 뽀얀 연어. 입을 벌린다. 아, 내 턱. 베이글을 입에 집어넣어야 할 때가 되자, 턱을 의식한다. 나는 턱이 나간 남자다. 입을 크게 벌리면, 전기로 지지듯 얼굴 아래쪽이 경련부터 일으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벌린다. 입에 닿는 빵이 미지근하다. 차갑지 않다. 아침의 베이글은 데울 필요가 없구나. 미지근하고, 바삭하다. 빵 속은 결이 올올이 살아있다. 촉촉한 것까진 아니지만, 퍼석하지 않다. 내 불편한 턱으로도 감당이 된다. 무겁디 무거운 빵이 나의 씹음으로 갈라지고, 곱디 고운 연어를 들이민다. 어처구니없이 부드러운 연어가 허물어진 잇몸을 깃털처럼 감싼다. 농경, 수렵, 채집. 유목민에서, 머무는 인간으로. 인류의 역사가 한 입에 쏙, 탐욕의 역사가 한 입에 쏙. 알래스카의 폭 좁은 냇가에서 훌륭히 펄떡였다. 내 입에 들어오려고 그리 애를 쓰진 않았겠지만, 영원도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우와, 이거 굉장한데요. 자주 사 먹어야겠어요.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CIA를 졸업한 찬웅이가 감동한다.
“나, 연어 싫어하는 거 몰랐어?”
연어 초밥의 달인은, 연어를 싫어하신다. 내 신중한 선물은 천덕꾸러기가 된다. 롱아일랜드를 탈출할 때 긴박함이 떠올랐다.
찬웅이 이야기부터 하겠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세상 모두와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매일의 글은 작은 오체투지인 셈이죠. 가까운 도서관, 다니는 학교, 군부대에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저의 오체투지에 동행해 주세요. 2019년은 9년간 머문 방콕 단골집, 음식 이야기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소소하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