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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눈물 나는 기사식당 코르동 블루

저도 다시 오는 날은 엄청 찡할 거예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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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작다.’

맛있는데 저렴한 식당이니까, 소박한 곳이려니 하긴 했어요. 작아도 너무 작네요. 그래서 불만이냐고요? 아뇨. 그래서 재밌죠. 상상과 현실의 거리감이 좋아요. 상상은 무게가 없으니, 마음껏 날아도 돼요. 날렵하게, 실체의 바닥에 착지하죠. 이 식당의 모든 손님들은, 조금 전까지 마음껏 날았어요.


베트남 식당이에요. Cordon bleu? 베트남 음식점인데, 식당 이름은 프랑스어네요. 참 뜬금없죠?

뭐가 연상되시나요? 전 치즈 돈가스가 떠올라요. 일본식으로는 코돈브루. 유럽풍의 돈까스죠. 고기에 치즈를 넣고 튀긴 거요. 세계 3대 요리학교인 르꼬르동블루도 떠오르네요. cordon bleu는 블루리본이란 뜻이래요. 최고의 음식을 칭하는 불어예요. 1578년 프랑스 국왕 앙리 3세는 성령 기사단을 창단했대요. 성령기사단은 푸른 리본으로 만든 훈장을 달고요. 늘 호화로운 만찬을 즐겼대요. 푸른 리본이 최고의 음식이란 의미를 가지게 된 이유죠. 저도 인터넷 사전, 뉴스 뒤져서 알려드리는 거예요. 평소에도 알고 있는 것처럼 으스대고 싶지만, 들킬 게 뻔한데 잘난 척을 어찌 하겠어요? 이곳은 치즈가스 코돈브루는 일단 없어요.


식당 안에선 연기가 막 피어오르고 있네요. 매캐할 정도는 아니고요. 숯불에 고기를 굽고 있네요. 중년과 할머니 중간쯤인 동양인 아주머니 두 분이 보이네요. 한 분이 딱 봐도 사장님이네요. 또 다른 동양인 남자가 왔다 갔다 하고요. 보이지 않는 안쪽에 또 하나의 주방이 있어요. 보이는 주방에서 대부분의 메뉴가 나와요. 닭고기, 돼지고기가 바싹 구워지고 있어요. 큼직한 냄비에는 걸쭉한 소스가 담겨 있고요. 오후 두 시가 넘었어요.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왔다면요.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했을 거예요. 전 그렇게까지는 못 기다려요. 꼭 먹어야 한다. 꼭 해야 한다. 즐거운 욕망이죠. 저를 피곤하게 하지 않을 때까지만 즐거워요. 시달리는 욕망은 단호하게 뿌리칠 줄 알죠. 이걸 먹어야만, 이걸 가져야만, 이걸 해야만 행복하다. 이건 거짓말이거든요. 그런데 왜 맛 집을 찾냐고요? 알면서도 속아주러 가요. 잠깐의 불꽃, 잠깐의 환희. 그 ‘잠깐’을 사러 가요. 배가 안 찰 걸 알지만, 솜사탕을 뜯어 먹는 마음이랄까요? 그러니까, 너무 정색하고 달려들지는 않으려고요. 너 아니면 안 된다. 그런 사랑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건 없어요. 너였으면 좋겠다. 이 정도여야죠. 너여야만 해. 언뜻 아름답고, 들여다보면 폭력적이죠. 상대를, 나를 끝까지 몰고 가요. 아, 또또. 생각을 놔두면 이렇게 진지해져 버리네요.

“여기 자리 있나요?”


주방 주위로 여섯 개인가, 일곱 개인가 의자가 있어요. 딱 하나가 비었군요. 그냥 앉아도 되는데, 물어요.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제 친구 자리에요.”

백인 중년 남자가 말해요.

"농담이오. 농담. 웰컴, 웰컴. 어서 앉아요. 당신 자리요.”

잠깐 철렁했어요. 재빨리 회복되었지만, 굳이 안 느껴도 될 감정이잖아요. 잠깐 다녀온 그곳이, 또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서요.

메뉴에 누들 샐러드가 있네요. 뭔가 싶었는데 분짜로군요. 베트남 음식 중에는, 쌀국수보다도 맛있는 음식이 있죠. 분짜가 그래요. 베트남식 불고기와 쌀국수, 거기에 새콤한 소스를 착착착 뿌린 음식이죠. 베트남 사람들은 고기꾼들이죠. 기가 막히게 구워요. 이웃 나라들, 심지어 태국도 고기를 잘 못 구워요. 동남아시아 소고기는 평균적으로 질겨요. 엄밀히 말하자면 소고기가 아니라 물소고기죠. 그거보다 좋은 소고기는 일부러 찾아가서 먹어야 하고요. 베트남으로 가면 거짓말 처럼 부드러워져요. 팍팍한 살코기마저도요. 양념과 육즙의 황금 비율을 본능적으로 알아요. 숯 향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새로운 무언가로 부활하죠. 누들샐러드 7.6달러. 고기가 군데군데 거뭇거뭇, 과하게 구워졌군요. 부끄럽지만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 구별 못하겠어요. 분짜는 보통 돼지고기니까, 돼지고기겠죠. 지방이 없는 살코기를 얇게 구우면 저는 구분 못해요. 못하겠어요. 한국에서는 탄 부분은 잘라내죠. 발암물질 어쩌구, 저쩌구. 여기의 그 누구도, 그딴 식으로 먹지 않죠. 잘 먹겠습니다. 팔뚝만 한 튀김 만두가 턱 올라와 있네요. 베트남식 튀김 만두, 짜조라고 하죠. 김밥처럼 뚱뚱한 짜조까지 한 그릇이 가득하네요. 양은 미쿡 기준으로 뻥튀기가 됐습니다. 고작 7.6달러에요. 물도 공짜로 줘요. 둘이 반반씩 나눠 먹는 사람은 뭐죠? 서양 사람이 1인 1메뉴가 아니네요? 그럼 1인당 5달러. 5천 원 정도로 한 끼를 해결하는 셈이군요.

“내가 두 명 분 일을 하니까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SFweekly라고요. 샌프란시스코 주간지에서 8년 전에 여사장님을 인터뷰했었군요. 그녀는 8년이 지나서도요. 여전히 두 명분의 일을 하고 있어요. 가난한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을 위해서, 천사가 내려온 거죠. 8년 전 가격에서 거의 오르지 가 않았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래도 사실만 한 거죠?

“저 기억 못 하시죠? 20년 만에 왔어요. 어쩜 다 그대로죠?”


선글라스를 쓰고, 남자처럼 옷을 입은 할머니가요. 식당 사람 모두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해요. 한참을 먹다가요. 먹다가 울컥하셨나 봐요. 말 안 하려다가, 도무지 못 견디겠는 거죠. 저처럼 뜨내기도 울컥하는데요. 식당은 그대로예요. 자신만 늙었어요. 심지어 주인도 하나도 안 늙었어요(이건 제 추측이지만요).

“그럼요. 기억하죠. 기억해요. 당신도 하나도 안 변했어요.”


여사장님도 활짝 웃습니다. 놀랍게도 사장님은 베트남 한 번 가본적 없는 홍콩 사람이에요. 가게를 인수했어요. 베트남 사장에게서요. 요리법도 전수받았죠. 양은 늘 푸짐하게 냈어요. 가난한 사람들은 용기 내어 접시 하나를 더 달라고 합니다. 비슷한 처지니까요. 그 마음 아니까요. 사장님은 둘이서 십 달러만 내는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그 사람들이 늙어서 아이와 함께 와요. 2인분을 시켜요. 어차피 다 못 먹겠지만, 2인분을 시켜야 해요. 이제 늙어가는 사장을 도울 차례인 거죠. 이 식당은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하니까요.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또 올까요? 언제나 여행지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와요. 또 오는 건 우주에서 지구를 찾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져요. 오고 싶어요. 다시 오고 싶어요. 샌프란시스코는 그런 도시가 되었어요. 코르돈블루부터 와야죠. 서두르는 마음으로 뛰어야죠. 늦으면 빈자리가 없으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오체투지죠. 지구 어디서든 읽히고 싶어요. 반갑습니다. 저를 하루라도 먼저 알아 주셔서요. 조금씩 알아가요. 천천히, 오래오래. 평생 알아가고, 지켜보는 우리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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