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인천, 선필이

그때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인천까지 갔을까?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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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어디가 제일 좋았나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이왕 갈 거, 제일 좋은 곳만 가고 싶어요. 누가 모를까 봐.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이라든지, 파키스탄의 훈자라든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나 런던의 햄스테드 공원이라든지, 중국의 청두나 대만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냥 골목이라든지. 대답은 많다. 그때그때 요령껏, 적당한 이유를 댄다.


그냥 골목이라! 골목인데, 오후, 오후인데, 흐림, 흐린데, 사람, 사람……사람. 그때쯤, 빗줄기가 또르르, 또르르, 쏴아아, 처마 밑 빗줄기를 바라보는, 나는 아늑한 카페. 타이베이다. 글쎄 열 중 둘이나 공감할까? 좋다. 너무 좋다. 대단한 것에 대한 반감? 너무 웅장하면 안 되고, 너무 유명해도 안 되고, 너무 외떨어져도 안 된다. 사람과 담벼락에 숨어서는, 곧 사라질 고양이처럼, 보드랍게 곤두서기.


인천, 인천 인하대 앞이라고 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성당 형이 졸업할 때, 인하대 중국집을 간 게 전부. 탕수육이 산처럼 쌓여서는, 어쩔 줄 몰라했다.


-비는 방 있어요.


선필이가, 나의 오랜 독자, 선필이가 인하대 후문에 빈방이 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세를 주는 작은 방. 내가 묵어도 되는, 하필 빈방.


데리러 오겠다는 걸 굳이 괜찮다고 해놓고는, 와달라고 했다. 이불까지 꾹꾹 눌러 담은 트렁크니까, 40도의 바깥에 이미 졌다. 인천에서 경기도 광주로 선필이가 왔다. 밥부터 먹자. 장지리 막국수는 한 시가 넘었지만, 바글바글. 72번 대기표를 받고, 우린 가끔씩 떠든다. 선필이는 물막국수를 나는 육개장 떡국을 시켰다. 하루 40그릇만 판다는 육개장 떡국. 집 근처지만 나도 처음, 선필이도 처음. 우리가 밥을 같이 먹는 것도 처음. 군대에서 내 책을 읽었다는 선필이는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됐다. 똘아이 같은 느낌의 훈남인데, 그냥, 차분하고, 성실하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친구는 내겐 기적이다. 인천의 인하대 앞은, 늘 꿈꿔왔다. 굉장히 시시한 꿈, 이루지 않아도 되는, 꿈.


이루었다.


이루지 않아도 되는데, 왜 이렇게 좋지? 아이가 될 거야. 모든 건 다 처음. 신입생이 되어, 선배에 이끌려 여기저기, 이게 대학교구나, 그랬던 스무 살이 된다. 인하대 앞은, 이미 설렌다. 매운 것도 못 먹고, 많이도 못 먹는 스물다섯 살이 있어? 선필이는 내 육개장 한 술에 얼굴이 빨개진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빨갛게 질려있다. 대한민국이 시작된 이래도 가장 더운 날. 이런 날, 나는 선필이를 만났다. 그러고 보니 육개장 떡국도 처음. 처음이 많은 하루다. 선필이는, 내게 물 막국수를 담아준다. 맛이라도 보세요. 실망이 이만저만, 너무 선해!


-영화 향수 있잖아요.

-아, 나는 책으로 봤어.

-영화는 그냥 그랬는데요. 보는 내내 작가님 생각이 났어요. 좋은 거, 나쁜 거, 멋진 거, 구질구질한 거. 그 모든 것들을 섞어서요. 결국엔 향수가 되잖아요. 최고의 향기, 작가님 글이 그래요.


원래 계획은 짐을 풀고,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순간, 오늘의 황홀로 선정합니다. 그 순간을 기가 막히게 묘사할 참이었다.


좋은 거, 나쁜 거, 지질한 거, 멋진 거. 다 섞여서, 결국 향수. 최고의 향기. 박민우가 쓴 글이, 덕지덕지, 섞인, 엉망진창, 어쨌거나


향수


이 새끼가, 나를 울려?


‘어디’에 대해 고민하다, ‘누구’를 여행한 날. 오늘의 황홀은 장지리 막국수, 대기표 72번. 선필이의 기가 막힌 문장들. 소개팅할래? 이모 딸 사진을 보여줬다. 선필이가 또 한 번 붉어졌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그 끝은 무엇이 있을까요? 모르죠. 막막해야죠. 그래야 오체투지죠. 당신에게 다가가는 길입니다.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나 만나고 싶었습니다. 글로 허망하게, 곧 잊혀질 이름으로 당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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