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앞 정말 맛있는 비빔밥집

2018년 나를 사로잡은 배즙 간장, 단짠단짠의 거룩한 정석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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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 여름 인천에서 머물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게 가게 정보를 묻거나 그러면 아니 되옵니다.)


오목골 메밀 가락국수를 꼭 드셔 보세요.

두근두근. 아침에 인스타그램으로 날아온 메시지다. 메밀 가락국수란 게 있는지도 몰랐으면서, 두근두근. 가락국수 딱히 즐기지 않지만, 두근두근. 기다림이 있다. 그러면 이미 완벽한 하루!


인하대엔 자판기 식당이 많다. 커피를 뽑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먼저 자판기부터 찾아야 한다. 메뉴를 누르고, 신용카드나 현금을 넣고, 자판기로부터 종이 쪼가리를 받는다. 아침에 찾아낸 자판기 카페는, 무인 카페다. 메뉴를 정하고, 카드를 넣었더니, 기계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멋지게 뽑아줬다. 좋은 아메리카노였다. 콘센트도 충분하고, 실내도 쾌적하다. 여길 놔두고, 스타벅스를 왜 가지?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1,500원 커피를 안 뽑는다. 마우스만 깔짝깔짝. 남은 커피를 버리는 나를, 그는 본다. 나의 빈 컵을 본다. 그걸 혹시 가져가 올려놓으시려고? 나도 커피 엄연히 마신 손님이오. 슬픈 거짓말쟁이가 아니기를...


오목골 메밀 가락국수는 걸어서 36분. 덥다. 저녁에 가야겠겠다. 가시버시로 갈까? 식재료 소진으로 문을 닫습니다. 어제 입구에 그런 문구를 딱 붙여놨다. 반해 버렸다. 가시버시에서 닭개장을 먹을까? 어제 육개장 떡국을 먹었잖아. 메뉴가 겹쳐. 그럼 가시버시의 밀면을 먹을까? 저녁엔 메밀 가락국수를 먹을 건데? 건강하고, 푸짐한 거 없을까? 건강해야 해. 해괴한 섭씨 40도의 여름이다. 누구보다 건강해야 해. 누구보다 행복해야 해.


5,500원 선불. 취향껏 골라먹는 무제한 비빔밥


더 싼 곳도 있지 않을까? 과식하면 부대끼는데…. 나는 마흔여섯 살 여행 작가가 아닙니다. 인하대학교 새내기 박민우입니다! 어젯밤 전자레인지로 쌀 떡볶이까지 돌려먹었습니다. 밤만 되면 배고프고, 눈만 뜨면 배가 고파지는 스무 살 박민우 인사드립니다. 내가 스무 살이라고 하면, 나는 스무 살이다. 막 먹어도 된다. 많이 먹어도 된다. 과식은 된다. 허기는 안 된다.

5,500원. 자판기에 돈을 넣어야 하는 비빔밥 집이다. 나는 스무 살이니까 당황할 리는 없고, 약간 짜증이 난다. 있는 동전을 쓰고 싶어서 일단 5천 원 지폐를 넣는다. 동전 넣을 구멍이 없다. 허둥지둥. 천 원짜리를 찾아서 넣는다. 500원 동전이 하나 더 생겼다. 굉장히 화가 난다. 처음 오셨어요? 주인아주머니가 묻는다. 학생 아니죠로 들린다. 밥은 조금만 푸세요. 하라는 대로 해야지. 밥을 조금만 푸고, 버섯, 부추, 상추, 무생채, 볶은 당근, 어묵, 콩나물, 간 소고기, 김 가루를 넣는다. 매운 고추장과 보통 고추장, 간장이 있다. 보통 고추장을 고른다. 참기름 넣으셔야 해요. 참깨도요. 아주머니가 뿌려 주신다. 반숙 괜찮죠? 손목이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담긴 밥이 무겁다. 달걀 프라이까지 받아서, 자리로 돌아온다. 1인석 구석자리에 앉는다. 숨는 거 아니고, 학생 아닌 거 들킬까 봐 아니고, 배려다. 혹시 붐비기라도 해 봐. 거봐, 금세 자리 차잖아. 사람 지나다니기 좋게 바짝 의자를 당긴다. 17학번 선배가 옆자리에 앉는다. 폰 게임을 하면서 먹는다. 빨리 먹고 나가야지. 비빔밥, 거기서 거기. 허겁지겁. 일어선다. 밥을 또 담는다. 그새 잡채가 추가됐어. 버섯, 부추, 무생채, 볶은 당근, 어묵, 콩나물, 간 고기, 김 가루, 달걀 프라이에 잡채까지 올린다.


배 즙을 넣은 간장이에요.


배즙이 들어가다니. 이모님 달리 보이십니다. 어쩔 수 없이 간장을 밥에 뿌린다. 배즙이, 간장이 부추에 코팅되어서, 스밈스밈 달다. 대학가의 작은 5,500원짜리 가게에서 불필요하게 엄청난 요리를 먹고 있다. 백종원에게 발견되면, 이 집은 줄을 서고, 백종원도 울고, 사장도 울고, 원래 먹던 사람들은 너무 먹기 힘들어져 울고, 온통 눈물바다가 될, 그런 밥집이다.


-속이 편하시죠? 우리 조미료 안 써요.


18학번 새내기한테 설명이 과하시네요. 17학번 선배는 한 그릇만 비우고 일어선다. 게임에 미친, 본받고 싶지 않은 선배다. 달걀 프라이를 어떻게 하나만 먹어? 스물한 살이?


그래서

저녁까지 배가 안 꺼짐.

스무 살인데, 위장이 마흔여섯 살로 착각한 듯

그래도 감

36분 거리라는데, 50분 걸음(미쳐 돌아가는 더위, 스무 살은 걷는다)

메밀 삶은 물, 멸치 육수는 완벽, 완벽

지금까지 먹은 가락국수 육수 중 3등 안에 들 듯

더 달라면 더 줌, 국물도, 면도.

해 질 녘 용현동에서 80년대 서울을 봄

울컥했지만 최근 이틀 너무 무거웠음

발랄로 자체 발작 중

용현시장 건너편, 계단을 밝고 올라가세요.

은근 장관입니다. 울컥!


-2020년에 다시 보니, 진짜 배가 너무 안 꺼졌나 봐요. 막장 끝맺음이로군요. 이런 일기도 있어야죠. 어쩌겠나요? 매일 일기를 써요.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고 싶은, 못생긴 글쟁이가 매일 밤 머리를 싸매고 있어요. 뭐라도 하나 전하고 싶어서요. 제 글이 처음인가요? 반갑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연결로, 조금씩, 조금씩 길어지는 털실을 꿈꿉니다. 세상 끝까지 덮는 벙어리장갑 같은 글을 씁니다.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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