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불고기 베이크

우리 삶에 코스트코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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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혹독한 여름의 기록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작가님 죄송해요. 방이 나갔어요.


선필이네는 원룸을 임대한다. 잠깐 비어서 묵을 수 있었던 거다.


아침이면 길 건너 정석항공 과학고등학교에서 턱걸이를 한다. 젖은 빨래를 철봉에 걸어두기도 한다. 말라라. 말라라. 염치도 없는 더위야, 빨래라도 말려줘.


‘커피에 반하다’에 매일 간다. 아메리카노 1,500원. 박민우는 싸구려에 미쳤어. 무슨 말씀. 대로변 쎄븐 가이스는 770원이다. 내 인생 아메리카노 최저가가 또 한 번 깨졌다. 분당 수내역 waliter가 800원이었다. 인하대는 아메리카노가 수돗물 값과 경쟁하는 성지다. 770원 배수진을 친 쎄븐 가이스 주변엔 800원, 900원, 천 원 아메리카노가 힘겹게 맞서고 있다. 900원 커피 coffee man의 man은 사람의 man이 아니다. only란 뜻이다. 백 원 만, 너만 좋아해. 할 때 그 ‘만’이다. 컵 홀더엔 ‘물보다 커피’란 문구가 박혀있다. 베네수엘라는 휘발유가 물보다 싸다. 컵홀더에 ‘물보다 커피’가 ‘물보다 휘발유’로 대체되는 나라다. 베네수엘라 커피도 맛있다. 내 주거래 카페 ‘커피에 반하다’는 무인 카페다. 주인 눈치 볼 필요 없다. 콘센트도 곳곳에 있다. 싸구려 노트북, 구형 아이폰을 소유한 가난뱅이 글쟁이에겐 콘센트가 호흡기다. 호흡기 달고, 그르릉 그르릉, 사투를 벌인다. 내 새끼들, 레노보 노트북, 아이폰6S.


아침에 철봉을 할 때면, 커피에 반하다가 떠오른다. 그곳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이면 이 여름이 덜 혐오스러워진다. 기계가 뽑아주는 커피다. 신기할 정도로 맛있다. 특히 카페라테 우유 거품은 알프스 젖소의 건강 요들송 맛이 난다. 집에 있으면 커피 안 마신다. 건강에 썩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서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래? 최후의 날만 눕고 싶다. 눈 뜨는 내내, 두 발로 걷고, 뛰고 싶다. 여행 왔다. 모든 원칙은 무너지고, 내게 관대해진다. 하루에 두세 잔, 커피를 마신다. 잠도 잘 온다. 여행은 나를 과감하게 만든다. 보호한다. 벌써 낯이 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삼총사가 있다. 매일 모의고사를 푼다. 42점 받았어. 좆 됐다. 나도 씨발. 이런 소리가 오간다.


내 방이 나갔다. 잠시 내 방이었다. 커피에 반하다도 끝이다. 5,500원 ‘비빔밥상’도 끝이다. 아쉬움이야말로 여행이다. 좋은 여행을 하고 있다.


작가님. 우리 집이 숙박업을 해요. 지금 주무시는 원룸 말고, 모텔이 하나 있어요. 숙박업 어플 ‘여기 어때’ 아세요? 거기서 매달 30만 원 무료 숙박권이 나와요. 30만 원 안쪽에서 며칠을 묵으셔도 돼요. 원하는 곳 찾아보세요.


오늘 아침 정석 항공 고등학교에서 마지막 턱걸이를 하는데, 토미가 된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나를 미치게 했던 최고의 드라마는 말괄량이 삐삐였다. 괴력을 지닌 삐삐와 이웃에 사는 토미, 아니카의 이야기다. 삐삐는 주근 깨 말라깽이지만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다. 집에는 금화가 넘쳐난다. 토미와 아니카를 데리고 초콜릿 가게로 데리고 간다. 마음껏 골라봐. 금화 한 개면, 가게 안의 모든 걸 살 수 있다. 신데렐라의 요술 할멈은 거짓말이지만, 삐삐는 진짜다. 저런 친구는 어딘가 있을 거야. 민우야, 초콜릿을 마음껏 담아 봐. 너무 좋아서, 오줌이 다 마려웠다. 30만 원은 금화다. 금 한 돈의 시세가 16만 원 정도니까, 금 두 돈이 내게 생겼다. 선필아, 마음껏 골라볼게. 저 작렬하는 태양 새끼가 오늘따라 눈부시다.


여기 어때 어플로 들어가 숙소를 검색한다. 오렌지 주스와 커피와 오믈렛과 크루아상이 있어야 해. 홀리데이인에서 첫날을 묵겠어. 1박에 15만 원이나 하지만, 삐삐가 친구인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다. 호텔 조식은 가난한 여행자 박민우에겐 근사한 환상이다. 송도는 미래의 도시답게 독특한 고층건물과 꽤나 훌륭한 공원이 있다. 아침 커피는 꼭 두 잔을 마실 거고, 주스도 두 잔, 혹은 석 잔을 마실 거다. 오믈렛 말고, 반숙 프라이로 먹겠다. 노른자를 깨서는 빵을 톡톡 찍어 먹고, 버터를 조금 녹여서 그걸 빵에 바르고, 잼을 덧바르고, 꿀도 좀 발라서 바삭-씹겠다. 창밖으로 잘난 송도의 공원을 지그시 바라보겠다.


2


홀리데이인 주변은 내 기대보다 더 황량했다. 김밥천국 하나면 되는데, 없다. 그저 고층건물이고, 그저 공사장이고, 벌판이다.


그리고


저게 뭐지? COSTCO. 코스트코? 코오스트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양재동에만 하나 달랑 있던 그 코스트코? 코스트코에선 불고기 베이크를 판다. 보들보들 소불고기가 가득가득 들어있는 롤샌드위치다. 저거면 된다. 아니 저거여야 한다. 신호등조차 확인 안 하고, 마구 뛴다. 다가가면 사라지는 신기루여도 된다. 뛰는 내내 기뻤으니까, 그렇게 돌아서도 후회 없다. 가만! 코스트코는 회원제잖아. 33,000원 가입비를 내고, 불고기 베이크를 먹는다고? 김밥천국을 가야 하나? 오늘 저녁밥은 편의점인가? Payco 어플로 CU 천 원 할인이 가능하다. 5천 원 짜리 도시락을 4천 원이면 먹는다. 아냐, 아냐! 누군가에게 부탁이라도 해보지 뭐. 이라크 참전 미군이 불고기 베이크를 택배로 받고, 사막에서 펑펑 울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있을 것이다. 아니 수백 명일 것이다. 황량한 송도의 벌판에 우뚝 코스트코도 낯선데,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서 또 놀랐다.


-푸드코트는 회원 아니어도 이용 가능하십니다.


포기를 안 했더니, 어떻게든 먹어야 한다고 활활 태웠더니, 운명은 내게 불고기 베이크를 허락했다. 불고기가 들어간 것, 닭고기가 들어간 것. 각각 3,700원. 길이가 내 팔뚝만 하다. 정확히는 내 팔뚝보다 약간 길었다. 점심에 먹은 쫄면과 돈가스가 위장 한가운데에 딱 버티고 있다. 하나도 다 못 끝낼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나를 사서, 반만 먹어야 한다.


치킨 하나, 불고기 하나요.


유튜브에서 본 암호랑이가 떠오른다. 굶주림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다. 가시가 많은 고슴도치 류의 동물을 발견한다. 달려든다. 결국엔 물어뜯고, 삼킨다. 며칠 후 암호랑이는 시체로 발견된다. 가시가 온몸을 뚫고 나와 있었다. 알루미늄 포일로 감싼 뜨끈한 두 덩어리를 꼭 안고는, 암호랑이가 되어 홀리데이인으로 14층으로 뛰어간다. 이 두 덩어리가 몸을 뚫고 나와도 된다. 내일의 내가 배를 잡고 구른다고 해서, 오늘의 내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죽어도 좋아.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겐 작은 기쁨이고, 작은 두려움이고, 어려움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온전히 여러분께 다가갈 생각만 합니다. 그렇다고요. 바람직하지 않아요. 대견하지 않아요. 그냥 그렇게, 진동하고, 반짝이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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