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도 좋고, 송도 홀리데이인도 좋아!
(2018년 여름 인천의 이야기입니다)
어제 일어난 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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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쪼르면’이라는 곳에서 쫄면과 돈가스 세트를 시킨다. 쫄면집이 ‘쪼르면 집’이 되기까지 많은 이름이 탈락했을 것이다. 이름 좋다. 나는 웃기다. 주방에 있는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검은 셔츠를 입었다. 등판에 한우물만 파는 분식 장인이라고 쓰여 있다. 죄송한데 오뚜기 진짜 쫄면과 여기 쫄면은 99% 같다. 또 모르지. 이 집 사장이 오뚜기에 가서 우물을 파준 건지도. 인하대 후문에서 먹는 마지막 점심이다. 나는 왜 세트메뉴를 시킬까? 양도 많고, 맛도 많으니까. 사춘기 때부터 이어진 취향이다. 식탐이 강하면 성욕이 강하다는데, 나는 아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급속히 줄고 있다. 결국엔 무성애자가 되겠지. 사춘기 때, 나는 무성애자를 꿈꿨다. 간절했다. 생각처럼 기쁘진 않지만, 생각보다 편하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눈을 맞출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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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껴도 먹는다. 최악의 식탐이다. 더부룩하지만, 빨간 쫄면, 두꺼운 돈가스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다 먹어야한다는 생각뿐이다.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카드가 어디 있더라. 캐리어 안에 있다. 짐을 줄이려고 노트북도 노트북 가방도 캐리어에 밀어 넣었다. 신한 카드는 노트북 가방에 있다. 멍청아, 따로 빼놨어야지. 분식집에서 캐리어를 눕히고, 지퍼를 내린다. 안 내려간다. 타월이 걸렸다. 지퍼를 더 세게 내린다. 지퍼가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숨을 고른다. 이마에 땀을 닦는다. 에어컨 빵빵한 분식집에서, 난 운동한 사람이 된다. 깨끗이 포기. 주머니 꼬깃꼬깃 만 원짜리를 낸다. 현금 영수증 할게요. 내 번호를 꾹꾹 누른다. 현금영수증이란 걸 해보는 중이다. 일주일 정도 됐다. 악착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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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기로 한다. 캐리어 때문에, 흥분한 상태다. 지하철은 무슨. 다, 귀찮아! 송도도 어쨌든 인천. 많이 나와 봐야 만 원이지. 택시 운전사는 중년 여성이다. 50대 후반? 홀리데이 인 호텔로 가 주세요. 일단 타세요. 일단 탔다.
-손님, 대충 어디인지는 아시죠? 네비가 영어로 쏼라쏼라해서 못 써요. 1교를 탈까요? 2교를 탈까요? 3교로 가나요?
1교, 2교, 3교 다리 이름인가 본데, 내가 어떻게 아나요? 그냥 내리고 싶다. 지도 어플을 켠다. 직진이요. 좌회전이요. 내가 말하면, 아주머니는 성실하게 핸들을 돌린다.
-홀리데이인 정도는 아셔야죠, 작은 호텔도 아닌데요.
착한 척, 누그러뜨리며 말한다.
-홀리데이이이잇? 영어죠? 영어는 힘들어. 이 나이에. 홀리 뭐? 히히히히.
꼬불꼬불 파마머리로 알파벳과 담쌓은 여인이 택시 운전을 한다. 나는 세상을 엉터리로 보며 살았다. 내 상상 속엔 없는 운전사다. 귀여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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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가 있으신가요?
19층 홀리데이인 리셉션. 신용카드를 달란다. 보증금 대신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일단 방에 짐만 놓고 오면 안 되나요?
-죄송합니다. 카드가 있으셔야 합니다.
-그럼 가위 있나요?
캐리어를 눕히고, 받은 가위를 한 손에 들고 지퍼를 내린다. 여전히 지퍼는 안 내려간다. 가위를 들고 열린 캐리어 틈으로 타월을 자른다. 빨리, 빨리! 사람들이 더 몰리기 전에. 타월을 잘라내고, 자크에 낀 타월 조각을 신경질적으로 뜯는다. 열렸다. 하나도 기쁘지 않다. 카드, 카드? 노트북 가방 앞주머니에 있어야 할 신한 카드가 없다. 어디 있지? 캐리어 내용물을 다 꺼낸다. 없다. 잃어버린 건가? 기대 없이 주머니로 손이 간다. 지폐들 사이에 신한 카드가 있다. 쫄면 가게에서, 택시에서 없던 카드가 나타났다. 그 카드가 쫄면 가게에서 있었을 리 없다. 그때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충분히 뒤졌다. 충분히 뒤졌고, 없었다. 나는 여전히, 갑자기 나타난 카드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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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다 돼서 호텔 헬스장엘 갔다. 밤에 먹은 팔뚝만 한 두 개의 롤 샌드위치를 소화시켜야 한다. 열심히 뛸수록 내일 먹을 수 있는 접시의 양이 많아진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뛰었다.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오늘, 정확히는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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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홀리데이인 호텔은 실용적인 호텔이다. 간단한 조식이겠거니 했다. 방콕 홀리데이 인 조식도 나쁘진 않다. 있을 거 다 있고, 기본은 한다. 그 정도면 된다. 연어와 초밥, 육개장과 비빔밥, 갈릭 버터와 통밀 바게트가 있다. 이러면 곤란하다. 좋다. 너무 좋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한다. 섣불리 달려들면 두 접시다. 얼마나 어른이 되었나?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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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한 잔 비우고 시작하려 했다. 공복에 물개처럼 미끄러지는 커피로 내장을 씻고, 세팅된 위벽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상황이 달라졌다. 물배를 채우면 안 된다. 빵과 버터도 줄이기로 한다. 갈릭 버터가 맛있다. 이 맛있는 갈릭 버터를 질릴 때까지 먹으려면, 팔뚝만 한 바게트를 다 먹어치워야 한다. 갈릭 버터 앞에서 빵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토록 어렵다. 갈릭 버터만 따로 쪽쪽 빨아먹는 걸로 대신한다. 오믈렛도 생략한다. 달걀 따위로 배를 채울래? 대신 연어의 비중을 늘린다. 양상추와 적근대도 일부러 더 먹는다. 섬유질과 미네랄이 빠르게 흡수된다. 밥은 단 한 톨도 안 건드린다. 빵 몇 조각이면, 탄수화물은 충분하다. 결국 먹은 건 채소와 주스와 연어, 커피와 연어, 바게트와 갈릭버터와 연어와 갈릭버터 쪽쪽이다. 방으로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를 종이컵에 담았다. 커피는 총 세 잔을 마신 셈이다. 커피를 아껴 마신 건, 절묘한 한수다. 알파고도 이보다 나은 방법은 생각 못했을 것이다. 네 접시를 비웠다. 대학생 때나 가능했던 네 접시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 해낸다. 총 걸린 시간은 1시간 40분.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뉴스와 인스타 댓글을 보며, 속도를 조절했다. 아이폰6s와 라마즈 호흡이 좋은 결과를 있게 했다. 한 끼로, 많은 성장이 있었다. 명상은 과식이다. 총 30만 원에서 15만 원을 썼다. 나머지 15만 원으로 이틀을 더 묵고자 한다. 다시 짐을 싼다.
소래포구
이제 소래포구에서 낭만낭만 바닷바람을 쐬고자 한다.
물론, 나의 예상은 개처럼 빗나갔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숨을 쉬듯이, 촛불이 흔들리듯이, 그냥 저란 존재의 존재 방식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린 이렇게 만나는군요. 새삼 신비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