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똥 좀 치운 아이, 선필이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너를 몰랐겠지. 나는 모든 인연이 참 신기해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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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의 기록입니다)


“작가님이 룸피니 공원 쪽으로 운동을 다니시잖아요. 공원에 가서 종일 있으면 작가님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방콕 가려고 했어요. 작가님 보려고요.”


과하지 않나? 매일 똥을 누고, 삐져나온 코털을 벌름거리며 뽑는 하찮은 인간 박민우가 그 정도였나요? 넘치는 호의는 불편해요. 그래도 선필이가 아니었으면, 인하대 대학가에서 이토록 황홀한 며칠은 없었겠죠. 선필이네 건물 중에 원룸만 있는 다세대 주택에 빈방이 하나 남아서요. 제가 이렇게 지내고 있는 거니까요. 공짜는 없다는 걸 알아요. 어떻게 홀가분하게 신세를 질 수 있겠어요?


저의 팬덤은 가수 조용필에서 시작합니다. 아니다. 마이클 잭슨? 아니, 혜은이? 팬덤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조용필뿐이네요.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사랑타령을 해야 노래가 되는 줄 알았어요.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나 나와야 할 표범과 하이에나로 노래를 만들다니요? 조용필은 제 사춘기를 지배합니다. 전영록이, 이문세가, 변진섭이 조용필을 밀어내려 할 때마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요. 조용필은 언제나 1등이어야 했어요. 빤한 발라드로 조용필의 시대가 막을 내려야 해요? 콘서트를 가고, 앨범을 사고요. 앨범 전 곡의 가사를 열심히 외웁니다. 조용필 노래의 가사를 언젠가는 내가 쓸 거야. 꿈이 됩니다. 조용필 노래의 작사가로 이름을 올리는 것.


이제는 아닙니다. Bounce(바운스)란 노래를 냈을 때, 너무 애쓰는 거 아닐까? 오히려, 그의 도전이 살짝 힘겨워 보이더군요. 저는 의리 없는 ‘한 때의’ 팬입니다. 어젯밤에 선필이를 잠시 만났어요. 선필이가 나를 보자마자 달려오는데,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의 표정이에요. 맹목적인 반가움, 믿음, 사랑. 정말 열심히 뛰어 옵니다. 혹시 덥석 나를 안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너무 맑아서, 밝아서 그 어떤 의도도 없는 것 같아서, 더 불편합니다.



“작가님, 제가 대접해드릴 수 있다고 항상 대접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작가님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제 장염 걱정은 마시고요. 거의 다 나았어요.”


아, 불편합니다. 그래도 얻어먹습니다. 아시잖아요. 먹는 거 앞에서, 기꺼이 불편해져야죠. 초밥에 가츠동 먹습니다.


“작가님, 제가 너무 시간을 뺏었죠? 저 때문에 글 못 쓰시는 거죠? 지금 글 쓰셔야 하는 거 맞죠?”


“오늘의 황홀 박민우, 오늘부터 못 나가는 건가요? 쓸 거 없는데, 억지로 아무거나 쓰시면 안 돼요. 작가님은 그런 글 쓰시면 안 되는데….”


“10점 만 점 중 몇 점 정도로 행복하세요? 전 9.8점이요. 최근에 네 살 어린 여자애한테 차여서 0.2점 뺐어요. 완전 이상형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집안일은 제가 다 했어요. 네 살 위 형은 공부를 잘했어요. 형은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요.”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네 기억에 없을 땐 네 형이 다 했다. 그땐 믿었죠. 거짓말인 것 같아요. 형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집안일은 제가 했어요. 저한테 시키니까, 제가 했어요.”


“그렇다고 왜 싸워요? 우애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행복해요. 얼마 전에는 일본 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어요. 형에게 깜짝 선물로 줬어요. 형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형도 저한테 주죠. 가끔 5천 원, 만 원 밥 먹으라고 줘요. 형도 저에게 잘해 줘요.”


“대학 때는 돈 벌었어요. 여름이면 을왕리에서 생수를 팔았어요. 겨울이면 학교 졸업식장에서 꽃을 팔고요. 긴 코트 입고, 팔았어요. 손가락이 얼어서 끊어지는 줄 알았죠. 그래도 장갑 안 끼었어요. 꽃을 파는 남자는 멋있어야죠. 그래야 팔려요. 생수는 200만 원 넘게 남겼죠. 꽃은 70만 원 넘게 손해 봤어요. 비가 쏟아져서요. 꽃이 다 시들고, 얼고.”


“아버지가 시계는 돈 낭비라고 그러시더니 백만 원짜리 시계를 사시더라고요. 저한테 들켰는데, 반품하시더라고요. 괜히 창피하셨나 봐요. 그래서 돈 모으고 있어요. 아버지 롤렉스 시계 사드리려고요.”


“저, 엘리베이터에서 똥 싼 여자도 봤어요(선필이네는 규모가 꽤 큰 모텔을 한다). 그 똥 제가 치웠어요. 작가님, 그래도 그런 이야기는 쓰지 마세요.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로 어떻게든 채우는, 그런 글은 쓰시면 안 돼요. 작가님의 똥 이야기랑은 다르죠. 저는 괜찮아요. 저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나 쓰셔도 돼요. 그런데 재미가 없을까 봐요. 제가 뭐라도 해야 할까요? 저, 아가씨한테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요? 아, 어쩌죠? 24시간 동안의 박민우, 잘 나와야 하는데”


면도기처럼 가벼운 진동이 느껴져요. 선필이의 호의가 불편해야 하는데, 따뜻해요. 그 진동이로군요.


“작가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딸이 있다면 저를 소개해주실 건가요? 괜찮은 남자로 보이시나요?”


선필아. 지금 여기서 답할게. 내게 딸이 있다면, 너와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다면, 그 딸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아. 선필이와 한 끼 식사를 해보는 건 어때? 선필이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얼굴 근육이 하회탈처럼 일그러지는 병이 있어. 그래서 처음엔 겁나 못 생기게 보일 거야.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어. 잘 생긴 게 지겨워서 저러나 싶었지. 우물쭈물,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병도 있고,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 병도 있어. 얼굴이 고추장 색으로 빨개지는 병도 심각하지만, 어른들이 보기엔 보기 좋게 뽀얘. 손을 잡으려 할지도 모르겠는데, 볼, 입술, 손, 다리 다 떨 거야. 네가 먼저 잡아줘. 물론 너도 호감이 있다면 말이야. 선필이가 너를 사랑하게 된다면, 온갖 이벤트를 꾸밀 거야. 1년 전부터 돈을 모아 선물을 살 거고, 1년 전부터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 아이야. 너와 여행 딱 한 번을 위해서, 1년을 쓸 아이야. 손해를 당연해하는 애라서, 크게 싸울 일은 없을 거야. 희생적인 사람, 어쩌면 자기의 여자를 외롭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 그런 부분에선 단호해져야 해. 외로우면 다 쓸모없으니까. 딱 한 사람만 행복하게 해주는 남자가, 누구든 행복하게 해주는 남자보다 백 배 천 배 나은 남자야. 너를 외롭게 하지 않으면서, 베푸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마. 9.8점 행복한 사람이야. 0.2점만 채워주면 나머지는 다 너에게로 갈 거야. 네 점수가 낮더라도, 빠르게 채워줄 거야. 아빠 말 믿고, 딱 네 번만 만나 봐. 최근에 세 번 만나고 차였다니까, 넌 기회를 한 번 더 줘. 네 번째에 아니다 싶으면 그냥 차. 남녀관계, 아빠가 어쩌겠니? 인연은 훨씬 더 힘이 세서, 아빠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선필아, 이게 나의 답이다.


“작가님 죄송해요. 내일까지 그 방을 비워주셔야 해요. 대신, 제게 계획이 있어요. 작가님은 인천에 더 계셔야 해요.”


아, 이 새끼가. 좋은 말까지 남겼더니. 짐 싸랍니다. 저, 짐 쌉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왜죠? 모르겠어요. 때론 오기인가 싶기도 하고. 때론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해요. 춤, 좋네요. 카페에서 글을 쓰는 건 안 이상하지만, 춤추는 건 이상하잖아요. 매일 어디서든 춤을 춰요. 그게 누군가에게 울림으로 전해지기를 바라죠. 반갑습니다. 저와 오늘 처음인가요? 오늘부터 1일입니다. 찌찌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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